살릴수 있는 환자 33%가 죽음의 길로…
적자 커지는 "중증 외상센터" 병원들 외면

병원들 수익문제 해결 수가인상만으론 한계
센터 건립·치료시스템 국가적 지원 있어야

 
지난 20세기 후반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른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고 의학분야에서도 선진국 수준의 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전문의나 분과 전문의 제도의 정착이 각 임상분과의 영역에만 국한되어 깊이를 더해감에 따라 의사들간의 유기적인 협진 체계를 어렵게 만드는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 들어 많은 병원에서는 의사들 위주의 진료과목 중심의 운영에서 벗어나 아직은 초기단계이긴 하지만 환자들의 불편을 일시에 해결하는데 목적을 둔 센터 중심(one-stop service)의 병원 운영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이 가운데 외상센터나 중환자실, 응급센터 등은 인력과 시설 등 투자가 많이 필요한데 반해 수익은 적어 병원 경영 측면에서는 꺼려할 수밖에 없는 국가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분야다. 이에 필자는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를 통해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한해 1만명 예방 가능한 사망
 
우리나라 외상환자 사망실태에 대한 1999년도 조사 결과 예방 가능한 외상환자 사망의 비율 (preventable death rate) 이 40.5%며, 최근 수년간의 조사에서도 아직 33%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미국 등 선진국과 30년 이상 격차를 보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외상환자 발생은 2004년의 경우 23만7906명, 이중 9만9178명은 생명이 위험한 상태로 추정된다. 선진국 수준의 체계를 갖추었다면 이들중 상당수는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이 분야 전문의들의 판단이고, 그 중심엔 중증외상센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방가능한 사망률이 30%가 넘는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서 현재 국내에서 해마다 중증외상으로 인해 사망하는 환자는 5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 중 1만여명의 환자들은 실제 사망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증 외상센터는 외상체계에서 삼차 진료기관(tertiary care facility)의 역할을 하게 되며 이곳에서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모든 환자들이 언제라도 반드시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외상센터에는 병원에 상주하는 외상외과전문의 및 유관 임상과 전문의들이 필수적이며 이 외에도 모든 다른 임상과목의 전공의 상주 및 전문의들도 짧은 시간 내에 병원에 도달할 수 있는 당직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외상센터의 운영을 위해서는 일정수의 환자 내원이 지속되어야 하며 너무 환자가 많을 경우에는 적절한 진료가 불가능한 반면 환자가 적은 경우에는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한 외상센터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
 
이에 따른 중증 외상센터(Level I trauma center)의 설립기준 중 환자수 기준으로는, 주로 인구밀집지역등에 위치하면서 년간 1200명의 외상관련 입원환자를 입원시키고 그 중 20%는 중증의 환자로서 Injury Severity Score (ISS) 15이상으로서 연간 한명의 외상외과 의사당 ISS 15 이상의 중증 환자가 최소한 35명 이상 배정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외상환자진료의 중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의사는 외상외과 전문의로서 현재 국내 여건에서는 신체 전반에 대한 위기상황에서의 진료가 가능한 외과(General Surgery) 의사 중에서 외상외과를 세부전공으로 이수한 외과의사가 담당하게 된다.
 
즉, 여러 임상과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다발성 외상환자들의 경우에는 단편적으로 각각의 임상과 만의 문제만을 해결해서는 생존할 수 없고, 환자를 주도적으로 치료하면서 타과와의 협진 체계를 구성하는 주치의 개념의 의사가 필수적인데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외상외과 의사의 양성은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외상외과 의사는 응급실에서부터의 소생술 뿐 아니라 빠른 시간 내에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요구되며 배치등에 관한 중요점으로는 연중 365일, 하루 24시간 언제나 외상외과의사의 공백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고년차 전공의로 대치될 수 없게 하며 반드시 외상외과 전문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상환자의 치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는 연속성이며 외상외과 의사는 소생술에서부터 수술, 중환자실 진료 및 일반병동 치료와 함께 재활치료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주치의로서 이끌어야 한다.

외상외과 의사의 주요 역할을 정의하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연관되어 있는 다발성 외상환자들의 주치의가 되고 각 임상과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등의 보조 인력과 행정직까지를 포함한 외상팀을 구성하며 외상 환자치료의 표준을 개발하고 외상시스템에 대한 자체적 점검기구를 구성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료·교육·연구가 기본 역할
 
이렇듯 중증 외상센터의 역할은 단순히 환자 진료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닌 후학에 대한 교육과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중환자 치료의학 및 외상센터의 설립, 운영 기준등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야 하는 진료, 교육, 연구 시설인 것이다. 특히 지역 내 위치하는 작은 규모병원의 병원 들을 관리 감독 하에 이끌어 가며 지역 내 외상시스템의 최종 책임기관이 된다.
 
진료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외상 환자들의 병원 전 처치에서부터 급성기 치료, 응급 수술 및 중환자실 진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며 추후 재활치료 및 사회복귀까지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육부분에 있어서는 의사를 대상으로 한 전공의, 전임의 교육과 기초 과학자들, 간호사, 구급대원에 대한 교육까지도 이루어 져야 하며 이는 그 기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파견 근무제를 통한 다른 외상환자 취급기관에서 종사하는 근무자들의 교육까지도 포함한다.
 
이것에 대하여는 계속적인 의학교육(continuing medical education, CME)에 대한 각 유관학회 및 단체와의 협조가 필수적이며 국가적으로 의료인의 질 관리 개념이 도입 되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연구를 위해서는 기초 의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외상환자와 관련되는 부분인 쇽, 다발성 장기기능부전, 뇌기능 마비 등의 연구 뿐 아니라 행정가, 사회과학자들 까지도 포함된 국가적인 외상환자 관리 시스템의 운영을 위한 연구들이 매우 중요하며 이는 실질적으로 외상센터의 설립 및 운영체계의 지속적인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이에 대한 선진국형 국제적 기준과도 끊임없이 교류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각 외상센터의 운영효율성에 지침이 되며 감시체계(surveillance system)로서 작용하게 된다.
 
선진국 외상센터 중심 치료체계 자리잡아
 
선진국들의 잘 정비된 외상시스템은 이와 같은 노력들이 수 십년 간에 걸쳐서 축적된 결과로서 현 시점에서도 끊임없는 개선의 노력을 통해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중증 외상센터를 건립하고 외상환자 치료의 국가적 체계를 만드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보호를 위해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계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공공의료의 중요한 한 분야다. 미국, 영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들 뿐만 아니라 대만과 같이 우리나라와 소득수준이 비슷한 국가들에서 조차도 중증외상센터를 중심으로 한 외상환자 치료체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뚜렷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와 같이 중증외상센터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환자이송체계를 개선하려고 하거나 개별병원의 응급실 당직시스템에 대한 보조를 하더라도 중증외상환자의 치료성적을 개선할 수 없다.
 
일본같은 경우에도 1990년대 초반부터 기존 병원들의 응급실 운영을 보조하여 중증외상환자 진료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10여년에 걸쳐서 시행 해 왔으나 결국 실패하였고, 환자치료성적이 뚜렷이 개선된 시점은 2001년부터 Dr Heli 시스템 등을 도입하여 일본열도 내에서 중증외상환자들을 집중 치료할 수 있는 거점 외상센터들을 20여개가 넘게 운영하면서 부터이다.
 
또한 많은 인력과 장비를 항상 갖추고 많은 예비병상을 확보하여야 하는 중증외상환자의 진료 특성상 병원운영 측면에서의 어려운 점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의료보험 수가 인상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현실때문에 해외에서도 모든 외상센터의 운영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보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단 한 개의 외상센터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문제점들이 전문가 아닌 전문가들의 머리속에서 소설처럼 각색되고 포장되고 있다.
 
따라서 국내 외상체계설립의 시작은 시범 지역을 1개소 만이라도 선정하여 지역 내 위치한 3차 진료기관을 모태로 하여 그 시설과 인력 기준을 선진국 기준에 맞게 완벽하게 보강한 후 시범사업을 할 것을 제안한다.
 
병원이 위치한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환자 이송에서부터 시작하여 재활까지 포함하는 선진국 수준의 외상센터를 전국에서 단 1개소라도 정확히 시범 운영 한다면 외상센터의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인 표준화된 환자 치료의 지침 개발과 타 지역에 추후 건립될 외상센터의 인력 및 시설기준을 개발하고 인력을 훈련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함으로서 장기적으로는 대한민국 전체의 외상환자 관리 체계를 만들어 가는 시금석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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