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이 병원균의 지배 하에 있던 때가 있었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의학은 세균과의 전쟁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임상의학의 혁명이 일어난다. (중략…) 항생제 오남용은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는 만큼 의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항생제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건 전쟁에 나가는 군인이 자신이 다루는 무기에 대해 잘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백여 가지가 넘는 그 많은 항생제를 전부 숙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비록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만화를 통해 항생제를 리뷰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만화 항생제" 중에서

 의사, 만화로 의학지식 전도사 되다
 의사 만화가인 박성진 원장(춘천 하나내과의원)은 이렇게 만화를 통해 의학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첫걸음을 내딛었다.
 2005년에 출간된 이 책은 모 신문에 2년 여 동안 연재됐던 것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렇게 정식으로 나온 책은 "만화항생제"가 처음이지만 박 원장의 만화는 이미 의대 재학시절부터 유명했다. "제한구역"이라는 만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며 벽보(대자보)에 만화를 그려 넣기도 했고 그가 수업 시간에 교수의 강의를 만화로 그린 노트는 학생들 간에 인기가 높아 "만화 강의록"이 발행되기도 했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던 박 원장은 면역학 시간에 강의 노트를 글로 하지 않고 만화로 그렸던 것이다. 이것을 본 학우들이 너무 재미있다며 아예 만화 강의노트를 만들어 보라고 권했다. 친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면역학 강의노트 만화"를 발행했다.
 그런데 이 만화가 시사만화가 박재동씨와의 인연을 만들어주었다. 그가 레지던트 생활을 하던 박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당시 전화를 받고 어찌나 얼떨떨하던지요. 비판적인 시각과 뛰어난 감각은 물론 속 시원한 필치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그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으니 말입니다. 그는 강의 만화를 한 장 한 장 펼쳐보면서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고, 세균과 항생제의 전쟁을 무림 고수끼리의 대결이나 게릴라전에 비유해 어려운 면역학을 쉽게 이해하게 만드는 신선한 볼거리였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전문성 있는 만화의 부재가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의학 만화의 시도를 보고 우리나라 만화의 발전 가능성을 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우면서도 뿌듯한 순간이었죠."
 박 원장은 내과전문의가 된 후 의무중대장으로 3년 간 군복무하면서 질병예방교육 만화를 그렸다. 덕분에 포상휴가와 표창을 받기도 했다. 또한 군복무 중 서부사하라에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돼 7개월을 사막에서 보내며 유엔군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줬다. 이후 모 일간지에 한 칸 만화 "진료실 엿보기"를 1년 동안 연재했고 모 신문에 만평과 만화(학습만화 antibiotics)를 그려내며 만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직접 만화를 그리기 보다는 실력이 더 출중한 만화가를 통해 일반인들도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의학전문만화가 만들어지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문학소년, 글감 찾으러 의대가다
 박 원장이 의대를 간 것은 오로지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문학 소년이었던 그는 글이라는 것이 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인데 고등학생의 글은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정신과 의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써보리라 마음먹었던 것이다.
 의대에 입학 후 정신과 실습을 돌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랄까? 결국 자연스럽게 다른 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소화기 내과가 눈에 들어왔다. 피를 토하면서 들어온 환자를 내시경으로 지혈시켜 살리는 모습이 그를 매료시켰고 결국 소화기내과를 택했다.
 환자와의 소통에 고민하다
 하나내과의원은 2005년 개원했다. 2년 후 절친한 동료 박영수 선생을 초빙해서 공동진료를 하고 있으며 검진센터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우리병원 내시경검사의 특징은 최고의 장비를 쓰고, 위생상태를 최우선으로 신경쓰며, 검사 시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 참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내시경 장비는 최신 펜탁스 EPK-i 기종이고, 검사 시 소독은 물론 일회용 마우스피스 일회용 수술장갑을 사용합니다. 검사할 때는 보호자도 들어오게 해서 설명을 해드립니다. 시술에 보호자가 동참하는 것은 의사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껄끄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환자나 보호자를 안심시키고 정확한 설명을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소통의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진찰할 때도 재미있는 비유로 환자 이해 도와
 지역사회에서 오래 버티는 병원은 치고 빠지는 병원이 아니다. 어차피 내원하는 환자에 대해 최선을 다해 볼 뿐, 환자를 많이 끌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지도 않고 유난스레 친절 교육을 하지도 않는다.
 단, 환자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데는 최선을 다한다. 더욱이 박 원장은 누가 들어도 재밌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비유로 질병을 설명하고 왜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도 알려준다. 만화가로서의 재능이 이럴 때도 발휘되는 것이다.

 "화물차가 아스팔트를 누르는 압력에 비유해 혈관 압박을 설명합니다. 무거운 화물차가 지나가면 그만큼의 압력으로 도로가 망가지겠죠? 무게를 줄여줘야 도로가 성하다고 이해시킵니다. 당뇨병은 휘발유가 새는 차에 비유합니다. 포도당을 세포 안으로 넣어주는 것이 인슐린인데 인슐린이 문을 두드려도 자동문이 안 열리면 병이 되는 것이라고. 몸 속의 장기들도 너무 많이 일을 시키면 파업한다고 말하면 환자들은 완전 몰입돼 몸을 돌볼 자세가 되어 돌아갑니다."
 하나내과는 PACS 시스템을 도입해서 모든 검사 기록 및 이미지를 디지털로 저장한다.환자에게 방금 끝난 내시경 검사의 고해상도 사진이나 초음파 흉부방사선 사진 이미지를 진료실 데스크에서 보여주며 설명해줄 수 있고, 원거리에 있는방사선과 전문의와의 협진도 가능하다. 작지만 실력 있는, 그러면서 문턱이 낮은 병원이 박원장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의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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