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영역엔 분단과 이념의 경계 없죠"

 "북한의 의료 환경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했습니다. 남한에서는 벌써 버렸을 무딘 칼로, 마취제도 없이 말린 쑥을 태워 연기를 피우며 수술하는 모습은 실로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수술을 하는 의사와 환자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며 그동안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지요."


홍경표 원장(광주 홍경표내과의원)은 지난 2004년 5월 처음 평양을 방문했을 때, 물자를 허투루 쓸 수가 없어 평양 호텔에서 묵으면서 물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홍 원장은 그 이후 지속적으로 북한의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해 활동해 오고 있다.

북 의료환경 열악…지원 사업 앞장
 
홍 원장이 대북 지원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가 북한 병원의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지원본부는 대북 협력 사업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맡은 북한 병원의 현대화 사업이라 준비를 충실히 할 필요가 있었고 사업을 진두지휘할 의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특히 평양을 방문해 북한 보건의료인들과 수시로 만나 기술이전을 추진 할 수 있는 의사가 필요했다. 하지만 병의원을 비울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의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던 차에 홍 원장이 나선 것이다. 이때부터 병원 현대화 사업 단장을 맡아 8년 동안 전반적인 계획 수립부터 평양 현지 방문을 통해 북측과 협의하는 등 사업을 총괄했다. "대동강구역병원", "철도성병원",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의 현대화 및 신축 건립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이러한 홍 원장을 보며 지원본부 측은 "광주광역시에서 개원의로 활동 하면서도 서울까지 올라와 회의에 참석하고 한 회당 200만원의 방북 비용을 여러 차례 자비로 부담하면서, 북한 주민의 건강 개선을 위한 일에 크게 기여했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공이 인정돼 지난달에는 한국일보와 한국NPO공동회가 주최한 제3회 한국나눔봉사 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국내 소외계층 배려 없어 안타까워
 
"G20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고 빠르게 경제가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빈부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여기에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도시와 농촌 간 격차이다. 홍 원장에게는 소
외계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 환자들이 있었다.
 
개원 전 종합병원에 있을 때의 일인데 응급실로 4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실려 온 것이다. 30대 중반인 이들은 신변을 비관해 제초제를 나눠 마셨고 결국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1990년대 농촌문제는 심각하고 절박한 상황이었다. 도농간 격차는 더 벌어지고 농촌소득은 감소했고 농촌 총각들은 장가조차 들기 힘들었던 시절. 이를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이들을 보면서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해도 복지에 관한 개념이나 의식은 정리가 안 돼 있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들 농촌총각들을 보내며 경제 성장만큼 복지국가로서의 면모도 갖춰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진료에 최선 다하는 것이 최고의 친절서비스
 
홍 원장은 1991년 개원했다.
 
개원 전 여수성심병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여수 지역에서 개원을 하면 훨씬 수월할 터였다. 안면을 익힌 환자들도 꽤 있었고 건물을 주겠다고 하는 지인도 있었다. 하지만 홍 원장은 결국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고향인 광주를 택했다. 부모님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여수에 남는 것이 어찌 보면 유리한 점이 많았지만 좀 더 길게 내다보고 정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젊은 사람이 개원하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걱정도 됐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잘한 일이고 처음부터 터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홍 원장은 요즘 모든 병의원들이 친절을 외치며 환자들에게 다가가는데 그 모습이 사실 좋게 보이지 않는다. 병의원 홍보에만 신경쓰다 보니 진료 따로 경영 따로 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친절해서 나쁠 건 없지만 진료와는 무관하게 병원 홍보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정작 환자들에게는 그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성실하게 설명을 해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환자를 내 몸같이 생각하고 진료하면 형식적인 친절은 필요 없어진다. 많이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느끼는 것은 한결같다. 진료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의 친절 서비스가 될 수 있는데 그 밖의 것들에서 친절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형식적인 말들로 환자에게 환심을 사는 것보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원칙에 맞는 지침으로 잘 치료하면 환자는 늘어나고 그들의 주치의로서 곁에 남을 수 있게 된다.
 
"건강은 긍정적인 사고가 가장 중요합니다. 의사의 경우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안 좋은 쪽으로 얘기하는, 말하자면 최악의 경우에 포인트를 맞춰 설명하는 의사가 있습니다. 반면 나쁜 상황에 대해 미리 얘기하는 것 보다 별것 아니라고 말해주는 의사가 있죠. 저는 후자에 속해요. 긍정적으로 설명하고 미리 기운 빼지 않으려고 합니다."

의료전달체계 지켜져야
 
참여 민주주의는 사회 참여와 관여를 통해 이뤄나가는 것이다.
 
의사들이 사회 참여에 앞장서야 의사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지고 시민단체들도 의사의 편에 설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의약분업 파업 시 투쟁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100분 토론"에 나가봤는데 그 때 뼈저리게 느낀 것이 시민과 친하지 못한 의사상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게도 개인적으로는 자식들을 의사로 만들고 싶어 하면서 의사집단은 싫어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신자유주의 조류를 피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유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쟁력을 갖춰야하고 규모도 키워야 하죠. 그러다보면 대형병원만 살아남아서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의사도 죽고 환자에게도 피해가 돌아가는 일이예요. 대형병원으로 키우기 위해 투자한 만큼 돌려받으려면 과잉진료가 없을 수 없고 수가 등에서도 환자가 손해 볼 수도 있는 문제들이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따라서 1차 의료는 보호돼야 합니다. 의료전달체계가 지켜져야 의료계도 건강한 의료 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의료보험 수가 구조에 있어서도 너무 왜곡돼 있다. 소신 있게 최선을 다해 진료하면 보상받을 수 있는 체계가 아니기에 그렇다. 의사가 진료에만 충실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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