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공부하는 만큼, 신뢰 쌓이기 마련"



 전라남도 광주시 월곡동 한정렬내과의원에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면 코너에 한 해 동안 강의했던 목록이 주욱 나열된 플래카드가 세워져 있다. 눈이 휘둥그레지고 어리둥절한 사이 나머지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의원 안에 또 다시 강의 날짜와 주제가 눈에 띄게 걸려있다. 지난해에만 76번의 강의를 진행했다. 동료 의사들을 대상으로 골다공증·고혈압·당뇨·만성비형간염 등에 대해 강의한 것이었다.

 한정렬 원장은 관련 학회를 찾아다니는 것으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이다. 게다가 현업 개원의로서 강의를 하는 횟수에 있어서도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학회에 참석하고 학회를 이끌기도 하다 보니 제게는 두 개의 잡(job)이 있습니다. 의사와 강사 말입니다. 평일에는 환자들을 만나고 주말에는 의사들을 만납니다. 강의를 하기 위해서죠."

 우리 원장님은 강의하는 선생님
 1992년 개원 후 환자들을 위한 한 원장의 노력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각 질환별 진단과 치료 지침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기 위해 많은 학회에 참석해 세계적인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환자에게 이를 제공하는 것이다.
 환자들은 스스로의 공부는 물론 강의까지 꾸준히 하고 있는 한 원장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 원장님은 강의하는 선생님"이라며 환자들도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환자들에게 의사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는 지식, 환자를 전체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최신 지견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의사로서 어떤 질환에 대해 선택과 집중을 했다면 그 질환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진료해야 한다.
 그래서 개원 후 일차의료학회 광주전라지회를 만들어 뜻이 같은 이들과 매달 한 번씩 모이고 있다. 주제를 선정해 강사를 초빙하고 강의를 듣는다. 어느새 17년째이다. 매 회 30여명이 모여 꾸준히 공부하는 모임으로 자리를 잡았다.

 미개척 골다공증 분야에 많은 노력
 한 원장은 여러 질환 중 골다공증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개원 후 주로 노인 환자를 접하다가 골다공증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어요. 당시만 해도 의과대학에서나 수련과정에서 전혀 배우지 못한 분야였죠. 그래서 일차의료학회 광주전라지회 모임에 서울 삼성제일병원 한인권교수님과 아주대병원 이득주 교수님을 초빙해 수차례에 걸쳐 강의를 듣다보니 질환의 중요성이 느껴지더라고요. 골밀도 검사가 아직 보험이 되지 않던 시절에 덜컥 고가 장비를 구입했어요. 안전하고 정밀한 골밀도 측정기를요."

 골밀도 검사에 대한 환자의 인식이 낮아 초기에는 거의 검사가 없다가 차츰 골다공증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검사를 받는 환자가 늘었다.
 그런 가운데 이득주 교수의 추천으로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SF) 내과에서 3개월 간 골다공증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골다공증의 세계적 대가인 Steven Cummings와 Steve Harris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이후 국제임상골밀도학회(ISCD)가 인정한 국제임상골밀도 측정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이 분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를 진료에 십분 발휘하고 있다.

 섬마을 주민들로부터 감사패 받다
 한 원장은 1984년 전남의대를 졸업하고 광주기독병원에서 내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이후 진도 하조도에서 공중보건의사 1년을 보냈다.
 "하조도 공보의 시절,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의사라고는 저 한 사람 밖에 없는 섬에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어요. 결국 두 달 후에야 그것도 아내가 섬으로 아들을 데리고 와 볼 수 있었어요. 공중보건의 2년째에는 완도 노화도라는 섬에서 근무했는데 하루 24시간 토요일 일요일도 쉼 없이, 그야말로 365일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을 주민들이 감사패를 만들어 주더군요. 그 어떤 상보다도 가치 있고 보람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에 대한 책임감과 진료실에서의 성실함은 개원 후에도 이어져 19년을 한결같이 환자들과 만나왔다.
 아이들은 "원장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진료실에 들어온다. 머리카락이 하얘 이미 10년 전부터 할아버지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원장 할아버지라는 말이 친근하게 느껴져 듣기 좋기만 하다.

 매주 수요일 야간산행으로 건강 챙겨
 한 원장은 산행으로 건강을 관리한다. 바쁜 일정 속에 잠시라도 틈이 나면 집 뒤편에 있는 금당산에 오른다. 그리고 매 주 수요일엔 동료들과 야간산행을 한다. 한 시간 반 정도 각자 산행을 하고 9시에 식사 장소로 모인다. 이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계절 내내 해오고 있다. 한 주의 피로를 풀어주는 시간이니 말이다.
 "원래 기계체조를 잘 했어요. 의대에서 공부하면서 건강을 위해 시작했는데 프로급 수준까지 올랐었죠. 그런데 어깨를 다친 이후로 못하게 됐어요. 하지만 이젠 등산을 통해 심신의 건강을 얻고 있습니다."

 한 원장에게는 환자 진료에 있어서 철칙이 있다.
 개인적인 경험이 아닌 각 질환에 대한 진단과 치료 지침에 따른 진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의사들은 치료 가이드라인을 계속 공부해야 한다. 계속 업데이트 해 놓지 않으면 진료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 중 절반 정도만 학회에 나옵니다. 공부 안하는 의사가 절반이라는 뜻이죠. 물론 학회에 나오지 않고 공부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공부는 하는 사람만 하죠. 환자들이 평가를 안 하는 것 같아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성실한 의사들은 생활태도에서 공부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니까요. 환자들에게 선택받는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의사도 환자에게서 선택을 받는 것이잖아요. 평생 주치의처럼 생각할 수 있는 의사가 되도록 노력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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