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보고 통한 체계적 연구 전무
병원들 비난 우려로 "쉬쉬"…의료기관 보호법으로 시스템 개선시켜야

몇년 전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뒤바뀌어 환자가 잘못된 수술을 받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이러한 사건은 환자 안전 문제라는 커다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학술원의 의학 분과에 해당하는 Institute of Medicine 산하의 Committee on Quality of Health Care in America가 미국의 보건의료의 질 개선을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1999년에 발간한 첫 번째 보고서인 "To Err is Human"에 따르면, 미국에서 의료 과오(medical error)로 인하여 매년 4만4000∼9만8000명의 환자가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덴마크, 영국, 캐나다,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등에서도 환자 안전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바 있으며, 전체 입원 환자 중 10% 내외의 환자가 병원 내에서 위해사건(adverse event)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일부 국가에서 최근에 시행된 조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환자 안전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세계보건기구가 2002년 5월에 개최된 제55차 세계보건총회에서 회원국들에게 환자 안전에 대하여 긴밀한 관심을 기울이고 환자 안전을 개선하는데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Resol ution WHA55.18)을 채택한 바 있다.

분쟁조정 기전 변화만으로 사고 줄일 수 없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환자안전에 대한 전국적인 조사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환자 안전에 관련된 문제의 규모나 심각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병원들이 외국의 병원들에 비하여 환자를 더 안전하게 진료하고 있으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기대를 뒷받침할만한 뚜렷한 근거는 없다.
 
모든 문제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은 현황 파악이라는 점에서 병원에서의 환자 안전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 연구의 시행을 환자 안전 개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의료사고 또는 분쟁이 증가함에 따라 최근 일부 병원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담자를 두거나 전담부서를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의료사고 또는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의료분쟁조정법", "의료사고피해구제법" 등 관련 법 제정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병원들의 이러한 활동이나 법 제정을 위한 논의들은 이미 발생한 사고 또는 분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외국에서의 경험에 따르면, 의료사고 또는 분쟁의 조정 기전의 변화만으로는 의료사고의 발생을 줄이는데 별로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류보고, 시스템 개선이 중요 요인
 
사고 발생을 매우 성공적으로 감소시킨 항공우주산업과 같은 다른 분야에서의 경험에 따르면, 오류의 보고 및 이의 체계적 분석을 통한 시스템 개선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의료기관들은 사건 또는 사고의 보고 및 분석과 같은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활동들이 외부로 알려지게 되는 경우, 의료기관의 신뢰에 손상을 입거나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여러 나라들에서 환자 안전을 포함한 의료의 질 개선을 위한 의료기관과 의료인의 활동에 대해서는 그 자료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조치를 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외국의 입법 사례를 참고하여 기존 법에 이러한 조항을 추가하거나 "의료의 질 향상 법(가칭)"과 같은 별도의 법을 제정하여, 의료기관들의 질 개선 활동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환자안전 개선을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병원이 사건 또는 사고 보고 체계를 가지고 있으나, 사건의 재발 방지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병원 외부 환경뿐만 아니라, 병원 내에서 이미 발생한 또는 발생할 뻔했던 사건이나 사고를 보고하는 경우 이를 비난하고 문책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직 문화에서는 문제를 숨기게 되고 이로 인하여 시스템의 취약성을 방치하게 되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이 반복되게 된다.

우리나라의 일부 병원을 대상으로 시행된 조직 문화 연구에서 이러한 현상들이 공통적으로 발견되었다. 비난의 문화
(culture of blame)에서 안전의 문화(culture of safety)로 조직 문화를 바꾸려면, 병원 최고경영층의 시각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

비난 문화 → 안전 문화로 바꿔야
 
환자안전의 개선을 위해서 사건·사고 보고의 활성화와 함께, 보고된 사건·사고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위험을 감소시키는 전략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활동에는 근본원인분석(root cause analysis)이나 사건유형 및 영향분석(failure mode and effects analysis)과 같은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최근 "한국의료QA학회" 또는 "환자안전연구회"와 같은 단체들이 이러한 기법에 대한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병원들의 환자 안전 개선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과거에 시행하였던 의료기관평가(앞으로 의료기관 인증제로 전환 예정)에서 도입한 환자 안전에 대한 기준이 평가 대상 기관들이 환자 안전 활동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계기를 제공하였고, 최근에는 일부 대형 병원에서 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의 인증을 준비하면서 환자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어 환자 안전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환자를 보다 안전하게 진료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 외부의 법적 제도적 여건 조성과 함께 의료기관들의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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