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교육의 탈식민지화 이뤄야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의 "의학교육제도 개선계획"이 되면서 대한민국 의학교육은 한 지붕 "의대-의전원" 체제는 막을 내리고 의대와 의전원의 두 교육체제가 공존하게 됐다. 이같은 변화 속에서 앞으로 우리나라 의학교육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안덕선 회장(고려의대)으로부터 특별기고를 받았다.
<편집자>




이제 의학교육학술대회도 참가자가 400명이 넘은 제법 규모를 갖춘 학술대회로 성장하였다. 학술대회가 성공한 이유는 의학교육학회를 비롯하여 의학교육 관련단체인 의과대학·의전원장협의회, 의학회, 의협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이 있었고 의학교육에 대한 대학의 관심이 증폭했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인증평가제도 역시 의과대학 교육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의사면허시험에서 실기시험이 도입된 것도 임상교육에 큰 파급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이제 일부 의과대학은 현대적 시설을 갖춘 대형병원을 갖추고 외형적이고 물리적인 시설 면에서 이미 선진국에 도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에서 논의되는 새로운 교육방법과 평가방법도 시대적 동시성을 띠고 국내에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도 우리의 교육제도와 교육의 실질적 내용과 절차는 물리적인 성장과 상당한 괴리를 보이기도 한다.

일제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을 무렵 유럽은 과학이 종교처럼 숭상되던 과학적 의학의 시대에서 인간 중심의 철학적 인간학으로 의철학의 사조가 이행하는 시기였다. 즉, 의학이 근대에서 탈근대로 이행하는 변화기에 있었다.

그 후 지속적으로 발전한 인간 중심의 사고는 1970년대 이후 생명윤리시대를 열었고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서양의 역사와는 달리 조선을 압도했던 과학적 의학은 해방 후 이어진 혼돈과 전쟁, 그리고 군사정권에 의한 독재시기를 거치면서 아직도 과학과 기술 편향적 의학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것은 의학이 보여주는 근대성의 정체된 모습을 설명하여 준다. 의학교육도 과학적 지식을 갖춘 의사양성이 주된 관심사였고 인간을 위한 교육과 인간 중심의 교육은 배제되어 있었다.

이는 연구윤리에 대한 무지와 줄기세포 사건을 유발시켰다. 이러한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있어서도 인간보다는 과학이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즉, 논문의 표절보다는 연구 수행 중 벌어진 반인륜적 행동이 더 중요한 사안이었으나 인간중심 사고의 결여는 사건의 본말을 전도된 것으로 보게 한다.

이제 한국의 의료수준이 세계적이라는 자화자찬적인 이야기는 거의 일상이 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의학교육 수준이 세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세계적이라고 대답하기에는 아직도 무엇인가 불편함이 느껴진다.

의료는 사회간접자본이다. 거대한 병원과 첨단장비의 구입과 사용은 실상 제조업의 선전으로 벌어들인 외화의 덕분이다. 의학교육을 위한 장비나 시설은 국민소득 2만 달러로 회귀한 금년에는 좀 더 나아질 것이다. 투자한 재원만큼 성과도 단기간에 가시적이다.

그러나 의학교육에서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아니 재원을 투자하여도 가시적인 성과가 쉽게 보이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바로 교육의 문화자산이다. 이런 자산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인 것들이다. 아직 우리의 의학교육에는 통제적이며 억압적이고 집단주의를 선호하는 가부장적인 요소가 매우 강하다.

우리사회는 근대, 전근대, 탈근대가 혼재된 양상을 보여준다. 가부장적인 교육은 전통적 사조인 유교적인 사상과 밀착되어 있다. 공자가 하지도 않은 말씀에 바탕을 둔 신유교적 사상이 왕조의 통치 권력을 위한 정치이념으로 이용되었고 세계에서 유교적 사조가 가장 강한 사회문화적 전통을 형성하게 되었다.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이 중국이 유교적이지 않은데 놀라워했다는 기록도 전하여진다. 최첨단 병원과 장비를 갖춘 사회에 원시농경사회의 가부장적인 교육이 최고의 상위학부 중 하나인 의학과 법학에 자리잡고 있다.

인간의 행동은 실존적이므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사르트르의 말보다는 인간의 행동이 과거의 기억이나 습관에 의존한다는 알튀세르의 말이 더 무게가 실린다. 이런 설명은 아직도 우리 의학교육에 남아 있는 식민지적 요소를 설명해 준다.

가부장적인 교육의 대표적인 모습은 전공의 교육이다. 의국이라는 명칭은 가족단위로 전공의 교육을 받고 성장하는 동안 마치 무술도장에 입국한 것 같은 교육 양상을 보여준다.

사회적 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가족적 도장의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가족적인 시각은 대도시에서 발전할 수 있는 도덕발달의 최고단계인 사회정의에 대한 시각마저 흐리게 한다. 최대 관심사가 가족적 범위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집단을 이끄는 수장을 따라하면 되기 때문에 별도의 교육목적과 목표도 불필요하다.

가족의 일원에게 온정주의가 따르듯이 전공의에 대한 엄격한 평가는 불가능하다. 직업적 생활, 사회적 생활, 개인적 사생활의 범위가 적당히 비빔밥처럼 얼버무려져 있다. 전공의 년차, 졸업년도, 직위 등이 복잡하게 얽히며 수직적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건설적 비판도 수직적 인간관계에서는 비난으로 들린다.

수직적 인간관계가 기본인 권위적 사회는 약자에 대한 취약성(vulnerability)을 야기 시키며 의학교육 내부의 비민주적 직권과 권력 남용의 현상을 보여준다.

가족적인 가부장제도의 교육이 더 인간적인가? 아니면 개인을 존중하는 사회적 교육이 더 인간적인가?라는 명제에 대한 대답은 가부장적인 제도가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가르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환원시켜 볼 수 있다.

사회의 보편적 가치란 비폭력, 민주화, 자유, 정의 등을 의미한다. 저명한 교육학자이며 전직 교육부총리가 의(醫)와 법(法)은 조폭교육이라고 서슴없이 발언하는 것을 보고 이미 전제적 요소가 몸에 배어있는 필자로서 매우 놀라웠고 공론의 장에서 발언을 펼치는 그 분의 용기가 부럽기도 하였다.

이제 우리 의학교육이 집단주의와 과학화를 지향하는 후식민문화의 사조에서 근대적 합리성과 인간중심의 탈근대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교육문화자산의 확보"라는 명제를 어떻게 실현하는가 하는 것이 바로 의학교육의 향후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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