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암 진단 대란 "후폭풍 예고"
병리과 전공의-복지부 입장상이…장기전 가능성

병리과 전공의 집단파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의료계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파업이 확산될 경우 전국적인 암 진단 대란은 불가피하다.

건정심의 병리조직검사 수가인하로 임상과에 비해 홀대 받는다는 심정을 지울 수 없는 병리 전공의나 일선 교수들의 박탈감은 말할 것도 없고 병리조직검사 수가 인하에 대해 개원의들이 피부로 느끼는 위기감은 암담할 정도이다.

수익의 많은 부분을 조직검사 판독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병리수가 인하는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병리과 교수들은 이번 수가인하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수년째 미달되고 있는 병리과 전공의 지원이 더욱 하락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병리학회에 따르면 현재 조직병리검사 수가는 미국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수익이 담보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공의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병리과의 전공의 지원율은 2006년 68%, 2007년 58%, 2008년 63%, 2009년 49%, 2010년 64%로 외과, 흉부외과와 함께 대표적인 비인기과이다. 계속되는 전공의 지원 미달은 병리과 전문의들의 업무량을 과중시키고 이는 병리과에 대한 선호도를 떨어뜨려 또다시 지원율이 하락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것이다.
대안 못 만들면 파업 강행

병리과는 소위 "잠수과"로도 불린다. 환자를 직접 진료하지도 않고 수술을 하지도 않지만 그야말로 수면 아래서 소임을 다하며 치료 방향을 결정짓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경남, 전북 지역에서 시작된 병리과 전공의 파업은 들불처럼 번져 전국으로 확대됐으며 전공의 비대위는 회의를 통해 학회 측의 대응 여부에 따라 향후 행동방향을 결정하기로한바 있다.

그러나 학회 측 비대위는 10일 마라톤 회의 끝에 "파업은 성급했다"는 결정을 내리고 일단 업무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교수들의 의견을 확인한 전공의들은 11일 다시 회의를 소집해 파업 지속 여부를 논의하는 등 긴박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믿어달라 정부와 협상하겠다"

학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비대위도 전공의들의 돌발행동에 당황하면서도 격양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결론은 전공의들의 행동이 너무 성급했다는 것이다.

대한병리학회 서정욱 이사장은 "전공의 파업이 전국으로 퍼질지 이 상태에서 마무리 짓고 창조적인 재구성으로 갈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라며 "병리학회도 책임을 질 것이고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의 성급한 파업으로 정부와의 대화의 장이 좁아졌다는 것이 학회 측의 중지로, 일단은 파업을 철회하고 업무에 복귀한 뒤 학회를 믿고 기다려달라고 호소할 방침이다.

서 이사장은 "정부와 효율적인 협상을 위해서는 업무에 복귀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면서 "이사장으로서 전공의 전체회의에도 참석해 그 간의 경과를 설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비대위는 병리수가 인하로 인해 촉발된 전공의 파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정부 협상안을 제시했다. 우선 병리검사 상대가치점수 인하안을 철회하고, 원상 회복하라는 것이다.

비대위는 "과거의 불합리한 병리검사 분류체계 개선, 국가 암 검진 사업 활성화 등으로 유발된 병리검사 수가 총액 증가분을 병리검사 수가 인하로 해결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일단 현 수가를 유지하면서 병리진단 관련 진료행위의 재분류 및 상대가치 점수의 재평가를 통해 장기적인 개선 계획 수립 연구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검체검사로 통합돼 있는 현 수가코드 분류 체계에서 병리진단료 항목을 분리 신설할 것, 병리진단 과정에서의 판독료, 자문료, 종합판정료 등을 합리적으로 신설·개선할, 병리진단을 위한 적정진료가 이뤄지도록 환경을 개선해 줄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수가인하 아닌 재조정

정부는 일단은 대화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겠다는 내부 원칙을 정했으나 건정심 결정을 번복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9일 병리과 전공의 파업을 두고 "긴급 관련부서 회의"를 개최, 대응 방안을 논의, "건정심 결정은 지난 2008년 5개에서 13개로 늘린 병리조직검사 수가 재분류 및 적출범위 산정기준개선 당시 1년 동안 청구현황을 모니터링해 자연증가 수준 이상으로 재정소요가 증가한 경우 수가를 재조정키로 한 것에 대한 후속조치였다"며 "수가인하가 아닌 합의된 재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미 결정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며,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며 "전공의들이 파업한다고 해서 이번 병리조직검사 수가 인하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전공의들과 학회, 복지부의 입장이 상이한 상황에서 전공의들이 파업이라는 초강수를 계속 둘 지, 학회의 권고에 따라 업무에 복귀할 지도 중요한 문제지만 이번 사태를 해결할 열쇠는 정부다.

복지부가 병리과의 현실을 직시하고 진정성을 갖고 문제해결에 나설지, 끝까지 원칙을 고수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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