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양영구 기자
편집국 양영구 기자

[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100점이었다. 성적표를 받아들고 집에 갔는데 엄마한테 혼났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100점이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실 못했다기 보다는 안했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책상에 앉아있다 보면 침대에 눕고 싶고, 누워있다 보면 한숨 자고 싶고.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심정으로 잤다. 

시험지를 받아들었는데 모르는 문제가 몇개 있었다. 다지선다였기에 눈 딱 감고 찍었는데 우연찮게 다 들어 맞았다.

"내가 모르는 문제가 몇개 있었는데 찍어서 다 맞았어"라고 양심선언을 한 게 화근이었다.

내 주변 혹자는 아비규환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사리판이라고 한다. 지금 의대정원 증원 사태를 두고 말이다.

한 달이나 이어지고 있는 이 사태를 솔직히 지겨워하면서 보고 있는데 그렇게 어려울 것 같았던 의료전달체계가 착착 맞아들어가 신기했다.

정부도, 의료계도, 시민사회도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하는 게 우리나라 의료를 개혁하는 일이라고 십여 년 동안 외치고, 공감대를 갖고 머리도 맞대봤는데 안 되던 것이 자동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틈을 타고 정부도 전공의 이탈로 빚어진 의료 공백을 의료개혁의 초석으로 삼겠다며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한다고 했다.

상급종합병원 임상연구, 진료역량을 균형적으로 강화하고, 국립대병원은 권역 필수의료 중추기관이 될 수 있도록 육성하겠다고 했다.

2차 병원에는 전문병원으로 특화해 상급종합병원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의원급 의료기관은 예방과 건강관리 기능에 맞게 환자를 진료하면 이익이 커지게끔 인센티브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진료협력센터를 통해 환자를 이송하면 구급차 이용료를 정부가 전액 지원하고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경증 환자를 다른 기관으로 안내하면 해당 인력에게 인센티브를 준다. 회송료 수가도 20%p 높아지고, 응급의료행위 가산률도 150%로 인상된다.

이러다가 다 죽는다고 필수의료 분야에 수가 지원을 해달라고 의료계가 울부짖을 때마다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변명만 늘어놓던 정부였는데 예상치도 못했던 의대 증원 사태가 정부 주머니를 열게 했다.

행위별 수가제 전면 개편을 위해 상대가치점수 개편 주기를 단계적으로 단축하고, 소아 가산수가 적용 연령도 낮추고, 응급 대기나 당직 인력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도 신설하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은 "비상진료체계 가동 이후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집중이 완화되고 환자 중증도에 적합한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우리 의료체계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사실 이쯤되면 그동안 손 안대고 코 풀어보려고 일부러 하지 않은 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어쩌면 내 의심이 합리적인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100이라는 숫자가 적인 성적표를 들고 왔을 때 우리 엄마는 소 뒷걸음질 하다가 쥐 잡은 격이라며 얻어 걸린 100점보다 노력한 80점이 좋다고 했었다.

할 수 있었는데 일부러 미루다가 얻게 된 좋은 결과와 그 결과가 비록 미흡하더라도 최고의 결과를 위해 노력한 과정은 비할 바가 안 된다고 무릎 꿇은 내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도 기억난다.

그간 정부의 노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데 안 한 것과 할 수 없어서 못했던 건 천지차이다. 할 수 있는 데 하지 않은 건 미래에 행한 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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