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
"공공병원 수익에 의존한 독립채산제 기반 관행은 이제 그만해야"

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
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

한때는 희망이 있었다.

코로나 19(COVID-19)의 공포가 휩쓸기 시작할 때, 공공병원은 절박한 심정으로 병상을 비웠다.

부족한 인력과 시설에 두렵고 힘에 부쳤지만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사명감만으로 2년이 넘도록 코로나 전담병원의 임무를 수행했다.

코로나 전사로 불리며 국민을 지키는 공공병원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나고 일반진료에 나섰지만 남은 것은 혹독한 현실뿐이다.

일상회복 후 병원 정상화는 예전처럼 부채가 쌓이고 체불이 일상화된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었는지, 한 때의 일장춘몽이었나 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기간 병원을 비우고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운영한 지방의료원에 제공한 손실보상금은 전체 1조 5천억 원 남짓이지만 2019년 대비 지방의료원의 순수 손실규모는 그보다 크다.

단순 매출액 기준으로 그렇지 그간 급속히 증가한 인건비, 관리비 등 제방 비용을 고려하면 실제 손실액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코로나 전담병원 기간 동안 망가진 정상진료수준을 회복하는 데 드는 비용은 사실상 전무하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공병원이 정상기능을 회복하는 데 4년이 넘게 걸릴 것을 예상했지만 책임지는 이가 없다. 

팬데믹 3년은 의료 환경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의료기관의 영리적 쏠림이 가속되고 보편화하는 와중에 사회안전망으로서 공공병원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운영에 대한 걱정 없이 코로나 진료만 매진하라던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많은 전문가는 수년 주기로 위세를 더하며 올 재난적 감염병의 반복적 창궐을 경고한다. 감염병 대응은 정부만이 대비할 수 있는 공중보건과 공공의료의 영역이며, 공공병원의 강화가 그 기본이다. 국민을 위해 헌신한 공공병원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외양간은 다음에 고쳐도 되지만 잃은 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위태로운 공공병원을 위해 정부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선, 흔들리는 지방의료원을 안정시켜야 한다.

코로나 환자만을 돌본 기간 동안 줄어든 환자는 공공병원의 재정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공공병원의 운영을 수익에 의존한 독립채산제 기반으로 운영해온 관행을 이제 거두어 들여야 한다.

공공병원 운영 전체를 예산으로 지원하고 공공적 목적에 합당한 진료 형태로 바꾸도록 유도할 일이다. 수익을 올려야 운영되는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지역의 필수의료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기는 불가능하다.
 
둘째, 의사 인력의 체계적 공급이다.

수십 년간 누적된 의사부족 문제가 팬데믹을 통해 분출돼 필수의료를 붕괴시키고 있다. 거대한 대학 병원조차 응급 뇌수술을 못하고, 병실이 있으나 치료할 의사가 없어 소아 중환자가 입원을 거부당하고 있다.

필수의료서비스는 공공의료의 핵심이고 필수분야 의사 부족은 공공의료 붕괴의 다른 표현이다. 부족한 의사인력은 공공병원의 역할을 황폐화하고 있다.

공공병원의 의사인력 공급을 시장원리에 맡기는 나라는 없다. 공공적으로 선발하고 훈련할 새로운 의대를 설계하고, 권역별 대학병원을 묶어 공공병원 의사 공급을 위한 체계마련에 나서야 한다.

지역에서 환자를 돌보는 공공임상교수제가 시범운영 중이지만 여전히 지원자가 없는 이유는 정부의 적극적 의지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셋째, 공공병원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다.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는 공공병원에서 좋은 공공병원으로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좋은 인력이 모여 보람을 느끼고, 시민을 위한 헌신과 창의적 제안이 넘치는 멋진 공공병원을 만들기 위한 약속이 필요하다.

참전 군인에게 명예와 예우가 "손실보상"보다 중요하듯 지금 공공병원에 보여줄 것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진심어린 지지와 신뢰다.       
 
공공병원이 위기에 처해있다. 공공병원의 위기는 안전한 사회의 위기이고 대한민국 미래의 위기이다. 위기는 항상 기회를 품고 있지만, 가만히 있는 자에게 기회는 오지 않는다.

외양간은 다음에 고쳐도 되지만 잃은 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정부가 빠른 결단과 정책적 개입을 통해 공공병원의 안정적 정상화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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