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놓고 숨은 속뜻 달라 이견 해소 필요

의료기기조합-협회 10년만에 협력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위해 업계를 대표하던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와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이 손을 잡는다. 조합은 제조사를 대표하는 단체, 협회는 수입사를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협회가 창립하던 1999년 한차례 통합 시도 이후 10여년만의 성과다.

지난해 취임한 협회 윤대영 회장이 임기중 역점 사업으로 두 단체 통합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 대표단 미팅을 통해 지난해 10월 21일 급기야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의료기기 정책이나 보험 문제만큼은 조합이 협회로 창구를 일원화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그간 두 단체간 알력다툼으로 비춰져 의료기기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 것을 막고, 현재 각 부처별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의료기기산업 전체의 발전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취지다.

협회에 가입하는 조합 회원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협회 임원진을 제조사와 수입사 15인씩 동수로 재구성하고 조합 회원사의 협회 자동 가입을 추진한다. 또한 의료기기 업계 발전을 위한 가칭 "의료기기정책연구원" 설립에 협회의 가장 큰 수입원인 EDI 수입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원하게 된다.

조합의 숨은 속뜻은 식약청과의 관계를 공고히 다져 제조사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지난달 25일 열린 제31회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정기총회에서 문창호 이사장은 "협회가 식약청 산하기관이기 때문에 조합은 각종 의료기기 규제를 만드는 식약청의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오해를 사왔다"며 "식약청 역시 국내 의료기기에 대한 지원이 아닌, 수입사가 다수인 협회만을 지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조합 회원사의 협회 가입을 독려했다.

그러나 분명 조합 나름의 장치는 있었다. 협회 차기 회장은 조합에서 추천한 인사에 한해 협회의 승인을 거쳐 추대되게 했다. 의료기기정책연구원의 운영위원회도 조합 인사 3인, 협회 2인, 외부 1인 등으로 구성된다. 이날 협회와의 협조를 통해 의료기기산업이라는 공동의 이슈를 내세우면서, 지금까지 어려운 현실을 털고 앞으로는 주목받을 수 있도록 나아가자는 당부에 회원사들로부터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반면, 협회는 의료기기업계를 대변하는 단체로 거듭나게 됐다고 자축했다.

지난달 26일 열린 제11회 의료기기산업협회 정기총회에서 윤대영 회장은 "업계의 숙원이던 통합을 이루게 됐다"며 "협회가 업계의 진정한 대변자로써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필요조건인 업계의 통합을 위해 관련자들이 많은 대화와 노력을 한 결과"라고 역설했다. 바로 전날 조합 총회에서 단체 가입을 의결했고, 대표 제조사인 메디슨이 가입은 물론, 임원사를 맡아주기로 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통합을 더욱 기뻐하는 것은 식약청이다. 의료기기산업을 중점 육성하기 위한 갖가지 정책을 마련하면서 업계와 함께하는 전례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협회를 산하로 두고 있으면서 수입사 위주라는 한계 때문에 전향적인 정책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윤여표 식약청장은 "규모는 작지만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가 바로 의료기기로,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급성장하고 있다"며 "단체 통합으로 취약한 기반을 해소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정부와 산업협장의 가교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통합" 속뜻에 이견...또다시 분열?

눈에 띄게 차이가 났던 부분은 조합은 어디까지나 통합은 아니라고 못박은데 반해, 협회는 재통합을 강조한 것이다.
조합은 그동안 수행해 오던 제조산업 발전을 위한 모든 사업은 그대로 진행하되, 식약청과 관련된 인허가 또는 제도 개선 등의 사항만 협회로 창구를 일원화해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조합 문 이사장은 "조합 이사장과 협회장이 따로 존재할 것이며, 조합 회원사가 협회로 가면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며 "수입사에만 이득을 주지 않도록 하는 정책 방향으로, 제조사를 위한 심사숙고한 결정이었다"고 덧붙였다.

협회 윤 회장 역시 "제조사인 단체인 조합 본연의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며 "단지 의료기기 정책이나 보험은 협회가 대표성을 갖고 일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해뒀다.

그러나 조합 총회에서 회원사의 협회 가입을 권고한 수준이지만, 협회는 조합 전 회원사의 협회 가입이 의결된 것으로 해석하며 협회 중심으로 통합된 것처럼 연출했다. "통합으로 재도약의 원년"이라는 현수막을 내거는 이벤트까지 마련하는가 하면, 조합 총회에서는 참석하지 않던 식약청장이 협회 총회에 참석해 축하인사를 남겼다. 더욱이 부산식약청장 출신이 신임 상근부회장으로 부임하면서 식약청과 협회는 내내 축제 분위기로 장식했다.

이에 대해 조합 한 임원은 "통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협회는 마음대로 어겨가며 온갖 쇼를 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사이가 금방 다시 틀어진다"고 지적했다. 다른 임원도 "협회 회원으로 가입을 권유한 것이지, 강제 사항은 아니었다"며 "처음부터 두 단체간 통합을 위한 식약청의 압박이 있었던 만큼 식약청과 식약청 산하기관인 협회의 잔치"라고 토로했다.

조합이 불만을 제기하더라도, 자칫 실질적인 권한이 모조리 협회로 넘어갈 수도 있다. 조합에서 주력으로 내세우던 해외 전시회 지원사업에 맞서 협회 역시 국제의료기기전시회 공동참가에 대한 올해 예산을 대폭 할당한 것. 해외 단체와의 교류나 해외 선진업체와의 연계를 지원하고, 국산 의료기기에 대해 해외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나서는 등 제조사에 대한 지원에도 중점을 둔다.

협회 한 임원은 "조합 회원사 중 일부는 조합에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며 "메디슨 대표가 직접 참여하거나 이사진 구성을 동수로 하면서 협회 일을 시작한 것이 결국 의료기기업계를 대변하는 단체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의료기기업계가 한차례 통합을 시도하고 분열했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두 단체간 신경전보다는 진정한 협력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하는 시점이다.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기대감

의료기기정책을 추진하는 식약청은 당장 두 단체의 통합으로 의료기기 정책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제하고, 올초 마련한 의료기기 관리 선진화 방안인 "변화와 도약(Change & Jump) 2010"을 꾸준히 진행할 방침을 전했다. 다만,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두 단체의 일원화가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신성장산업, 녹색성장산업의 주축인 의료기기에 대한 중장기 발전방안 마련을 위해 산·학·연·관 전문가로 구성된 협력 네트워크에 대한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며 "두 단체의 자율적인 뜻에 의해 이루어진 일원화를 통해 제조 분야를 비롯해 모든 분야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조합과 협회가 발표한 올해 계획 역시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무게감이 실리기에 충분했다. 조합의 올해 활동 계획은 의료기기제도의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대응에 중점을 두고 의료기기산업 기술개발자금 획득 지원, 산학연 공동 연구 기반 구축 과제 발굴, 의료기기 IT 융합 지원센터 건립 등을 추진해 의료기기에 대한 분위기를 띄워 보겠다는 입장이다.

협회 역시 영세한 업체가 많은 의료기기업체 직원들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의료기기 전문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외국계 기업의 노하우를 국내 기업으로 활용 가능하도록 지원해 국내 업체의 선전을 돕는다.

조합 문 이사장은 "정부 각 부처에서 의료기기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주목하고 있다"며 "여기서 우리는 힘을 합쳐 이 분위기에 편승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협회 윤 회장도 "올해는 각종 정책에 협회의 단합된 목소리가 충분히 전달되도록 해서 의료기기업계의 위상이 높아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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