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 진료 하지 않으려면 시스템화 절실

1950-60년대 우리나라는 해외 선진국 등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가난한 국가였다. 그러나 2010년 우리는 경제적으로든, 의학적으로든 약소 국가를 지원하는 나라로 급성장했다. 과거 우리가 받은 것을 이제 국제사회에 돌려 줘야 하는 여러모로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의료는 세계적 수준으로 괄목상대한 발전을 거듭하며 국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최근 세상을 등진 수단의 한국인 슈바이처로 불려진 이태석 신부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한국의 의술은 세계 어디를 가듯 환영을 받고 소외된 지구촌 이웃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로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아졌다.

이번 아이티 지진에 있어서도 연세의료원, 서울아산병원, 고대의료원, 의협과 대한적십자 등 국내 의료기관과 협회들은 빛을 발했다. 지진으로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한 아이티 현지의 의료는 턱없이 부족했고 한국의 의료기관들은 이같은 사정을 인지하고 앞다퉈 의료진을 파견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 의료진을 재난국가에 파견하는데 명확한 구심점이 없어서인지 한국의료의 인술과 위상을 보다 크게 보여주지 못했다.

시스템의 부재가 문제다. 국가 차원의 관리와 체계성이 없이 해당 의료기관의 계획만으로 이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를 시스템화했다면 아이티 지진 참사에서 한국 의료를 보는 세계의 눈은 한층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이를 담당하는 곳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있다.

그럼에도 국립 의료기관이나 연관 단체로 팀을 꾸려 의료진을 파견했을 뿐 국내 의료기관을 총망라해 이른바 해외재난 코리아 메디칼 캠프를 구성하지 못했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설립 취지 등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한 탓이다.

더불어 담당 부서조차도 없는 정부의 무관심도 한 몫하고 있다. 그나마 의협과 대한적십자의 의료진 파견에 가톨릭중앙의료원이 함께 했던 게 해외 긴급 구호 활동의 시스템화에 대해 작지만 희망을 갖게 했다.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이 1일 국회에 제출한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희망적 부분이다. 이 안에는 의료인력, 의료장비, 진료체계, 해외 운송체계, 긴급의료구호와 관련된 국제협력 체계 등이 명시돼 있다.

해외재난 시스템 내지는 네트워크 움직임은 의협에서 5-6년전 처음으로 일었으나 아직도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아이티 참사 국내 의료진 파견"을 보고 새삼 이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일본이나 미국의 해외재난 시스템에 회자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일본과 미국 같은 경우 재난국가 의료진 파견시 원스톱 처리가 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해당 의료기관별로 행정부터 현지 진료까지 모두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으로 불편과 낭비적 요소가 많다는 지적이다.

조인성 의협 대외협력 이사는 " 현재 의료긴급구호활동은 예산은 물론 행정 편의조차도 지원되지 않는 등 거의 민간에 의존하다시피하고 있으며 시스템의 부족으로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것 등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 일본과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조직 구성 및 예산 확보를 통해 사전에 준비, 이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의협내에 의사, 정부 산하 단체, 시민단체 등 범의료계가 참여하는 위원회 구성을 제안해 놓은 상태로 평시에는 사회 봉사를, 비상시에는 긴급 의료 구호를 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신상진 의원은 "제대로 된 장비하나 없이 아이티 긴급의료구호활동을 하는 국내 의료진을 보면서 나라의 격에 맞지 않고 있다고 느꼈는데 이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으로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면 민간 위주로 이뤄졌던 긴급의료는 국가차원의 민관합동 긴급의료지원 중심으로 확대되는 등 긴급 구호의 틀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막 진료가 아닌 태극기 아래에서 나라의 격과 국제화된 국내 의술 수준에 맞게 우리나라 의료진들이 인술을 베푸는 그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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