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날씨가 쌀쌀해져서 몇가지 옷을 샀다. 더 아저씨가 되기 전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마음에 자주 입지 않는 색을 골랐다. 그런데 배송 온 제품은 다른 색이었다. 고객센터에 연락하고 반품 후 다시 온 제품은 또 사이즈가 한치수 작았다.

두어번의 상담원과 통화하며 겨우 내가 원하던 색과 사이즈의 옷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죄송하다 혹은 미안하다는 사과는 받을 수 없었다. 그저 형식적인 반품과 교환 과정이었다.

사과를 받는다고 이 과정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사과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의 불편감을 덜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아쉬웠다.

최근 뇌기능 개선제 아세틸엘카르니틴은 한국 시장에서 퇴출됐다. 국내에서 1994년부터 28년여 동안 환자가 복용해온 약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재평가에서 효능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다. 의사가 처방해주는 대로 약을 복용해왔는데 효능이 없는 약을 먹어온 셈이고, 이를 위해 국민들은 건강보험료까지 납부했다.

그런데 이 사태를 사과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약을 만든 제약사도, 이 약이 효능이 있다며 허가해준 식약처도, 국민건강보험에서 급여가 타당하다고 결정한 보건복지부도 말이다. 식약처는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만 했고, 복지부는 건강보험급여 중단을 안내할 뿐이었다. 

이번 문제는 불순물 사태와는 또 다른 문제다. 

불순물 사태야 정부도 제약사도 알지 못한 무방비 상태에서 발생했다면, 이번 시장퇴출 건은 정부가 이미 문제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2013년부터 품목갱신제 해당 의약품들이 건강보험 재정 손실로 이어질 것이란 걸 충분히 알고 있었다. 단편적인 예로 뇌기능개선제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다.

만일 2013년 품목갱신제 도입 당시 아세틴엘카르니틴에 대한 임상재평가를 진행했다면 지금같은 피해는 조금이나마 줄어들었을 것이다.

사실 사과라는 건 생각보다 힘들고, 복잡하며, 어렵고, 예민한 문제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간단해보이지만, 다양한 조건과 절차, 전략이 담긴 고도의 행위다. 사과를 통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는 전략적 판단이 담겨있다.

모욕감으로 받은 상처와 피해를 치유하고 줄이는 데 있어 사과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전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가 있다면 이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공통된 미래를 위해, 양극화된 사회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이 거만한 태도를 버리고 겸허한 자세로 상대의 존엄성 회복을 돕기 위해서는 "죄송합니다" 한 마디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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