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임상역학연구센터장 조주희 교수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최근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유럽종양학회(ESMO) 등 외국의 내로라하는 학회에서 '환자자기평가결과(Patient-Reported Outcome, PRO)'가 주목받는 세션으로 등장하고 있다. 

PRO는 의사나 다른 사람의 개입 없이 환자가 직접 자신의 건강 상태를 보고한 결과를 말한다. 

그동안 의사의 판단이나 아웃컴에 집중됐던 치료에서 벗어나 환자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반영하겠다는 새로운 흐름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은 PRO 결과를 기반으로 환자 삶의 질을 높이고, 의료를 개선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PRO란 단어가 낯설 정도로 뒤떨어진 상태다. 

그런데 최근 PRO를 실천하기 위한 움직임이 삼성서울병원에서 시작됐다. 9월 16일 제 1회 SMC 환자자기평가결과 심포지엄을 열면서 PRO의 중요성을 알리는 포문을 연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임상역학연구센터장 조주희 교수 
삼성서울병원 임상역학연구센터장 조주희 교수 

물밑에서 논의되던 PRO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람은 삼성서울병원 임상역학연구센터장 조주희 교수다.

조 교수는 삼성서울병원 환자중심삶의질 연구소, 암교육센터 등의 수장을 맡으면서 PRO에 천착하고 있다.

조 교수를 만나 PRO가 무엇인지, 왜 의료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지 등을 물어봤다. 

- PRO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PRO는 환자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의사, 간호사 등의 개입이나 해석 없이 본인 스스로 평가해 보고한 결과를 말한다. 지금까지 X-ray, CT 등 의사가 평가한 아웃컴이 중요했다. 환자가 얘기하는 증상이나 건강상태 등은 소홀하게 취급됐다.

하지만 환자가 느끼는 증상이나 상태 등이 생존율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검사 결과의 보조자료로도 쓰인다. PRO는 의료진의 아웃컴 뿐만 아니라 환자의 아웃컴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PRO는 환자의 삶의 질을 넘어서는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 PRO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미국 존스 홉킨스 보건대학에서 역학/행동의학을 전공하다 대학에서 근무하던 중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암교육센터 센터장을 맡게 됐다.

암 환자들이 항암치료에 따른 탈모 스트레스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환자들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평가 도구를 만들었고, 그때 만든 도구는 미국암센터에서 사용하고 있다. 

-PRO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갑자기 이슈가 된 이유는? 

그동안 PRO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실천할 방법이 없었다. 환자들이 느낀 증상들을 쉽게 기록할 수 있는 표준 도구가 부족했고, 종이에 기록해야 하는 등 불편했기 때문에 세상의 중심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달라졌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쉽고 편리하게 기록할 수 있게 됐고, 정부도 시스템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되면서 속도가 빨라졌다. 

세 달에 한 번 의사에게 진료받는 당뇨병 환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병원에서 환자의 휴대폰에 평가도구 앱을 깔아주고 혈당이나 증상 등을 기록하게 하고, 세 달 후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 PRO를 활성화하려면 질환별 평가도구가 꼭 필요하다.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평가도구는 잘 갖춰져 있는 상태인가?

PRO를 평가하고 측정하기 위한 표준화된 도구를 환자자기평가도구(Patient-Reported Outcome Measueres, PROM)라 한다. 사용 목적, 대상, 평가 환경에 따라 알맞은 PROM을 선택해야 하는데, 국내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도구가 많지 않을뿐더러 간혹 있어도 미국 등 선진국의 도구를 그대로 번역해 사용하는 수준이다. 외국의 평가 도구를 번역해 그대로 가져다 쓰면 우려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무딘 칼로 빵을 자르면 잘 썰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나라에 잘 맞는 '0점 조정'을 해야 한다. 늦었더라도 모두가 인정하는 객관적이고 정량적 평가 도구를 만들어야 한다.

- PRO 활성화를 위해 의료진도 필요성을 인식해야 하는 것 아닌가?

최근 ASCO, ESMO 등 학회에서 PRO를 주제로 한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의사도 PROM을 활용하면 정확하게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 자연스럽게 PRO에 대한 신뢰가 생길 것으로 본다.  

미국은 정형외과에서 잘 사용하고 있는데, 기능평가는 물론 PROM 점수를 이용해 수술 여부를 평가하고 있다. 맞춤치료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PRO를 이용한 수치가 나온다면 더 세밀한 맞춤치료도 가능해진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PROMs와 지불보상제도를 연결해 병원에서 활성화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급성기병원 인증, 급여기준 등에 이를 활용하고 있다. 

- 앞으로 계획은? 

병원 내에 PRO 시스템을 안착시키는 일이다. 또 플랫폼을 원내에 도입해 필요한 환자에게 PRO를 적용하고, 각 진료과에 맞는 지원도 하고 싶다. PRO가 발전하려면 전문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인력을 길러내는 데에도 노력할 것이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