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염성 질환의 한 해, 과제 제시의 한 해

새옹지마. 올해 감염성 질환 관리 현황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신종 인플루엔자 H1N1(신종플루)를 비롯해 A형간염, 수족구병 등 다양한 전염성 질환이 발생해 사회의 경각심을 한 껏 높였지만, 우리나라 사회의 예방 인식도 함께 높아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신종플루의 그늘에 가려있던 A형간염의 창궐은 애초 예상보다 많이 감소된 규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들은 남아있다. 신종플루 대유행(pandemic)은 끝나지 않았고, A형간염 예방접종 등 국내 대비책도 한 걸음 내딛었을 뿐 세부적인 시행까지 가야할 길은 멀다.

▲신종플루 - 호들갑보다 지속적인 관심 필요  

올 한 해 가장 큰 전염성 질환 이슈로는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신종플루의 대유행을 꼽을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6월 대유행을 발표한 이래 이제까지 사망자는 12월 6일 현재 9596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10월말부터 신종플루 백신이 생산되면서 감염자와 사망자의 발생 추이가 서서히 감소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는 있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1차 치료제인 오셀타미비어(oseltamivir, Tamiflu)에 내성을 보이는 신종플루 사례는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고, 최근에는 국내 돼지가 신종플루에 감염된 사례까지 발생했다.  

아직까지 치료전략이나 변종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없다. 하지만 계절성 인플루엔자가 유행할 시기에 변종이 나타날 가능성이나 앞으로의 변화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또 백신에 대해서도 세계적으로 안전성을 강조하며 접종을 권고하고 있지만, 소아를 중심으로 접종 후 부작용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A형간염, 수족구병 - 신종플루 "때문", 신종플루 "덕분"  

하지만 신종플루로 인해 그 심각성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 바로 A형간염이다. 한창 기승을 부리다 감소세를 보인 7월에 집계된 감염자는 1만1146명 이상으로 작년 대비 2.1배의 환자를 발생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A형간염의 주요 감염 연령대는 면역력이 취약한 20~30대로, 소아의 경우 감기처럼 지나갈 수 있지만 이 연령대에는 전격성 간 부전 등이 올 가능성도 있다. 사망률도 1000명 중 1명꼴로 신종플루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A형간염은 치료제 없이 예방접종이 유일한 대안이다. 특히 환자들과 대면하는 젊은 의사나 간호사들은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는 시간이 긴 만큼 감염 가능성도 높아 의료진은 물론 환자도 예방접종을 필수적으로 해야한다는 내용의 홍보를 통해 경각심을 강조했지만 신종플루의 그늘에 가려져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이는 수족구병도 마찬가지. 작년에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던 수족구병 중증 환자는 올해 최고 환자수를 기록했던 5월까지 사망자 1명, 뇌사자 1명을 포함해 37명이 보고됐다. 5살 미만의 영유아가 주요 감염층으로 어린이집, 유치원 등 보육시설에서 단체로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예방이 필수적이지만 사회적으로 신종플루에 밀려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나가고 있는 지금 신종플루 "때문"에 비교적 관심이 적었던 A형간염이나 수족구병으로 인한 피해가 크게 나타나지 않은 것도 신종플루 "덕분"이다. "신종플루 포비아"라 불릴만큼 사람들이 예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신종플루와 함께 이들의 전파도 예방됐는 것.  

종류는 다르지만 전염성 질환의 특성 상 손씻기, 마스크 사용의 습관화,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등 기본적은 예방법은 같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신종플루에 사람들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지만, 이로 인해 예방에 대한 인식이 향상된 것은 좋은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겨울철 감염성 질환인 아폴로 눈병과 유행성 결막염 환자수도 작년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MRSA, 감염학계의 숙제  

전염성 질환의 유행이 병원 유입 인구를 증가시키면서 감염학계에서는 원내 감염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평소에도 주요 이슈로 논의됐지만, 신종플루 환자가 중증일 경우 집중치료실(ICU)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ICU 내에서 박테리아 감염이 일어날 경우 바로 합병증 또는 사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문제가 강조된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원내 감염에서 주요한 이슈로 꼽히는 것은 역시 메타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을 비롯한 내성 박테리아다. MRSA에 대해 특별한 치료법이 없는만큼 사전 예방에 무게중심이 많이 실렸다. 대한감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도 MRSA와 관련한 주제발표들과 함께 "감염관리 워크샵"을 진행해 MRSA 관리에 비중을 뒀다.  

특히 워크샵에서는 항균·생제 사용 현황과 사용량, 이에 따른 내성 발생률을 제시하며 항균·생제의 오남용을 막는 것이 우선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항균제 선택 흐름도 공유, 약물 사용 양상에 대한 분석과 피드백, 약물사용 적절성 평가 등의 대안이 제시됐다.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이상오 교수는 워크샵에서 "이런 대안들에서 나아가서 의료진의 처방 후 관리에서 처방 단계에서부터 의료진이 개입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염학회, 발전의 기틀을 닦다  

전염성 질병으로 사회가 시끄러웠지만 이런 상황은 감염성 질환의 치료와 예방에 있어서 감염학의 역할을 인지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일련의 사태들로 인해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가족부가 신종플루을 비롯해 연구비 지원을 시작했다는 점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구비가 지원되는 사업은 기초연구부터 역학, 진단 및 치료 가이드라인 등 전반적인 부분으로 앞으로 국내 감염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외부의 지원과 함께 학회 자체적으로 발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한국전염병사 편찬사업도 의미있는 결과로 꼽을 수 있다. 학회는 오는 2011년이 우리나라 전염병 연구 60주년이 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전염병 역사에 대해 정리한 서적이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성인백신, 항생제, 신종플루 등 새로나온 질환 및 연구 내용들을 더한 감염학 교과서의 최신 업데이트판 사업도 시작했다.

▲내년의 과제를 짚어보다  

하지만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신종플루 대유행이 지속되고 백신 부작용이 어떻게 나타날 지에 모르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고심할 필요가 있다. A형간염도 신종플루의 영향력에 밀리기는 올 겨울도, 내년도 마찬가지다. 내년 봄 A형간염 대유행이 예상되고 있지만 아직도 A형간염 예방접종은 필수접종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연구를 통해 A형간염 집단예방접종이 비용-효과면에서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지만 내년 A·C형감염관리 예산도 올해와 크게 틀리지 않을 뿐더러 제1군 전염병으로 포함되는 안이 이제야 국회를 통과해 공포 후 1년이 지나야 효력이 발휘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예방사업 수행이 내년 안에는 시행되기 힘들 것으로 보고있다.  

감염학회 측면에서도 과제는 있다. 우선 해결해야 할 부분은 현실에의 적용이다. 학문에 대한 인식은 개선됐지만 아직 현실적인 개입정도는 높지 않다. 대한감염학회 우준희 이사은 이번 신종플루 대처에 있어서도 감염학회가 전문가 집단임에도 이에 대한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어떤 사람에게 약물을 투여해야 하는지, 백신 부작용은 어떤 사람에게 나타나는지 등에 대해 임상의 의견이 전혀 수렴되지 않아 아직도 일반 감기 환자에게 신종플루를 투여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 이사장은 기초와 임상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초 역학의 경우 질병의 전파와 이에 대한 억제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임상에서는 환자 개개인의 치료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두 방향 사이에서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감염학회는 앞으로 대한병원협회에 의견 제시, 질병관리본부와의 가이드라인 워크숍 등을 통해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데 초점을 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도움말 대한감염학회 우준희 이사장(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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