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보건의료학회 김신곤 이사장
"개성공단을 코로나19 프리존으로 만들자" 주장

통일보건의료학회 김신곤 이사장
통일보건의료학회 김신곤 이사장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코로나19(COVID-19)와 같은 감염병 팬데믹은 이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개성공단을 '코로나19 프리존'으로 만들고, 새로운 팬데믹을 대비하기 위한 방역물자와 백신, 치료제를 생산하는 기지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될 수만 있다면 아직도 反생명의 상징인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에서 인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남북이 협력한다는 역설적 메세지가 세상에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통일보건의료학회 김신곤 이사장(고려대 안암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의 말이다.

언뜻 들으면 당황스러운 이 주장을 김 이사장은 강의 때는 물론 언론과 접촉할 때마다 강조한다. 지금과 같은 남북의 적대적 불통 상황에서 한반도의 위기를 극복하고 대북협력을 현실화하려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개성공단을 코로나19 프리존을 만들자는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 식량이나 약품 등 당장 필요한 것을 북한에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지원하고 도와준다는 고전적인 방식은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자존심이 강한 북한도 이제 원하지 않는다. 당장은 식량이나 약품을 보내더라도, 중장기적으론 방역장비, 의료장비, 백신 등을 생산하는 개발협력을 해야 한다.

개성공단을 바이오-메디컬 콤플렉스로 전환하면서 인류의 감염병 위기극복에 기여한다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외부지원을 받는다는 부담도 적어지고, 보건의료 영역에 국한한 유엔제재 유예도 가능하다. 이를 매개로 북한이 국제사회와 소통할 수 있다면 현재의 강대강 대립구조를 완화하며 비핵화 로드맵 협상까지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은 그 어떤 제재보다도 강력한 자발적 국경봉쇄로 코로나19 시기를 버텨내며 한편으론 핵개발을 고도화해 왔다. 대북제재만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기 어려운 이유이다. 언젠가 대북협상이 시작되면 북한의 비핵화 실천 수준에 상응해 유엔제재의 완화, 경제협력, 평화협정 등 단계별 로드맵의 조율이 필요하다. 이런 복잡 방정식이 풀리려면 상호 간의 신뢰가 필수적인데, 팬데믹 위기에서의 보건의료 협력이 그런 신뢰 형성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 북한과 통일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평소 통일 문제에 관심은 있었지만 전공의 때는 바쁜 일상 가운데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2004년 스리랑카에 쓰나미가 닥쳤을 때 긴급구호에 나서면서 다시 자각하게 됐다. 스리랑카는 외세의 오랜 식민지를 거쳤고, 내전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거기에 자연재해로 또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이때 북한의 상황이 떠올랐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식량이 없어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는 일이 생겼는데, 멀리 스리랑카에까지 와서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바로 이웃에 있는 북한 문제에 둔감했던 것에 반성하게 되었다.

존스홉킨스대학 난민센터 Courtland Robinson 교수가 중국에 거주 중인 탈북 여성들의 건강 실태와 사망률을 조사해 Lancet에 게재한 논문을 읽었을 때, 그리고 고려대 사회학과 윤인진 교수의 2005년도 탈북자 전수 건강실태 보고서를 보았을 때도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의사도 아닌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하고 말이다.

통일보건의료학회 김신곤 이사장
통일보건의료학회 김신곤 이사장

- 통일보건의료학회에서 한반도 건강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 건강공동체란?

우리 민족은 70년 넘게 분단돼 있지만, 불과 22만 Km2 불과한 한반도라는 작은 땅을 공유하고 있다. 바이러스와 세균이 남북을 가리겠는가? 분단 이후 서로에게 너무도 큰 상처를 주고 이미 이방인 돼 버린 남북의 사람들에게 보건의료는 같은 문법으로 소통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시키는 가장 따뜻한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 공동체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건강공동체 회복하는 것이다. 건강공동체는 경제, 사회, 문화, 더 나아가 최종적인 통일의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정치, 군사 공동체에 우선되어야 하고, 다른 공동체의 형성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 통일보건의료학회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우리 학회는 '사람을 위한 건강한 통일'을 꿈꾸며 2014년 7월 창립했다. 국내 유일의 민·관·학·연을 아우르는 통일보건의료 연구와 네트워킹의 플랫폼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분단으로 인해 남북한의 보건의료제도나 의료 문화, 의료인력 체계 등이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따라서 북한의 보건의료를 이해하고, 건강 격차를 줄이며 의료문화 이질성을 극복하는 등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우리 학회는 다양한 통일보건의료 전문가들을 연결하며, 통일을 대비하기 위한 미래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

- 북한 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진행해온 코호트(NORNS) 진행 상황은?

NORNS는 2008년부터 북한 이탈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하면서 추적 관찰하고 있는 코호트다. 남북한 주민은 유전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오랜 기간 다른 환경에 노출돼 왔다.

70년의 분단이 남북 주민의 건강 양상에 미치는 영향을 잘 분석해 그 차이에 대한 병인론적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의학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연구결과가 될 수 있다(Lancet 388(10063), 2989-2990, 2016).

6월 24일 열리는 통일보건의료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는 북한 이탈주민 만성질환 관리 중재 서비스 개발 및 효과, 북한 이탈주민을 위한 맞춤 영양 상담 서비스 등 관련 연구 결과들이 논의될 예정이다. 또한 통일부 용역으로 진행된 비감염성, 감염성 질환 대북협력 로드맵이 발표될 것이다.

우리 학회는 건강보험연구원과 함께 북한 이탈주민 전수인 3만 5000명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질병의 양상과 사망자료들을 분석하는 남북 주민 건강비교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결과가 정책적 반향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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