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정(사단법인 인문학당 달리 소장)

인문학당 달리 박선정 소장
인문학당 달리 박선정 소장

그리스 신화 속 무녀 시빌레는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무엇이든 하나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그녀는 모래 한 움큼을 쥐고는 “내 생일이 모래알 수만큼 되게 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소원은 현실이 된다.

그러나 그녀는 수명이 늘어난다고 해서 노화가 멈추지는 않는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시빌레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새 우리도 100세가 더 이상 꿈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다.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 인구의 약 40%가 65세 이상이 될 거라고 한다.

그러나 오래 산다는 것이 반드시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곧, 인구의 절반은 만성질환이나 노령으로 인한 다양한 형태의 돌봄과 요양을 필요로 할 것이다.

보건 의료 체제에도 시대에 맞는 변화가 병행돼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보건 의료의 현실은 70년 전에 만들어진 법에 묶여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44년 일제는 의사규칙과 치과의사규칙, 그리고 조선간호부규칙으로 존재하던 것들을 한데 묶어 ‘조선의료령’을 제정했다.

이것이 1951년 ‘국민 의료법’으로 1962년 ‘의료법’으로 명칭만 변경된 채 현재까지 보건의료의 중심이 되는 법으로 적용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과 함께 하고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사회의 각 분야의 규제와 법규들과는 달리, 의료 분야만큼은 의사들 중심으로 만들어진 ‘의료법’이라는 견고한 캐슬 안에서 70년 세월을 버텨 왔다.

일본은 1948년에 이미 간호법과 의사법을 분리해 제정했음에도 우리나라는 일제가 식민지 의료 체제를 위해 만들어 놓은 그 법을 한결같이 준수하고 있는 셈이다.

현 ‘의료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의사업무’와 ‘간호사 업무’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간호사의 업무는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의 보조’라는 한 줄로 요약돼 있다.

‘간호학’이라는 학문과 영역이 따로 연구되지도 않았고 독자적인 역할조차 없었던 시대에 걸맞은 법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 사이 의료 분야에서 뿐 아니라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엄청난 변화를 거듭했다. 간호 영역은 점점 더 확대됐고 간호의 대상자 수와 범위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가장 근원적 원인은 인간 수명의 연장일 것이고, 부차적인 것은 예기치 못한 다양한 질병과 재해 등으로 인한 간호 대상자들의 증가일 것이다.

이에 따라 간호의 대상자는 단순히 병원의 환자가 아니라, 지역사회 곳곳으로 확대되었고, 의료는 단순히 질병 치료의 범위를 넘어, ‘예방’과 ‘교육’이라는 범위로 확대되었다.

굳이 의사의 진료가 아닌 전문적 ‘돌봄’이 필요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간호’가 요구되기 시작했다. 이제라도 ‘간호’는 ‘의사의 하위 체제’로부터 구분되어야만 할 때다.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노인 장기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예로 들어 보자.

소위 ‘방문간호사’들의 업무다. 환자가 장기간 누워 있다 보니 ‘욕창’이 생긴다. 당장 상처 부위를 치료하고 약을 도포해야 하지만 ‘의사의 지도 하의 진료 보조’라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하다.

의사에게 전화를 하든지, 연락이 닿지 않으면 우선 치료를 하고 나중에 ‘처방’을 받아야 한다. 아니면 간호사는 불법 의료 행위를 한 것이 된다. 법을 지키려면, 처방 없이는 치료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병원 환경에서는 ‘의사의 지도 하에’ 수많은 의료 행위가 간호사가 대신 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법적인 분쟁이 생기면 간호사는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다. 그러니 현행 의료법은 말 그대로 간호사는 의사가 시키는 일만을 그대로 행하던 일제시대의 ‘간호부’를 위한 법에 그대로 멈추어 있는 셈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간호의 영역과 범위를 법적으로 명확하게 정리하고, 그에 따른 합법적인 처우도 개선해 달라’는 것이다. 그 범위 안에서 ‘권리’와 ‘책임’을 함께 지고 가겠다는 의미다.

간호법 제정에 대한 요구는 이미 1977년부터 터져 나왔지만, 의협의 반대에 부딪혀 그동안 제대로 이뤼내질 못했다.

그러던 간호법 제정이 올해 5월 17일 드디어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의협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간호사 업무 범위 역시 기존의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를 그대로 적용했고, 간호법을 기존 의료법보다 우선 적용한다는 규정도 삭제했으며, 간호법 적용에서 요양보호사와 조산사도 제외했다.

그런데도 왜 간호법을 제정해야 할까?

간호의 영역에 대한 법령은 ‘학교보건법’, ‘가정간호관련법’, ‘노인장기요양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국내 90여 개 각 법령에 흩어져 있다.

그런 법령들을 ‘간호’라는 이름으로 한 데 묶어 통합 관리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행 의료법으로는 시대에 따라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의료현장의 다양한 사안들을 전혀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호법’은 간호사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받아야 하는 ‘간호’를 받을 국민들을 위한 법이다.

국가가 인정하는 ‘간호사 면허’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간호사가 할 수 있는 법적인 역할은 ‘바이탈을 체크하고 투약하고 침대 시트를 교체하고 환자들 이동시키는 일’ 뿐이라면, 도대체 간호사는 왜 필요한가?

현행법 범위 안에서의 간호사의 역할을 고집한다면 간호대학과 간호사 제도는 전 국민의 낭비일 뿐이다. 현행 의료법의 가장 근원적인 시작은 ‘의학’은 대단하고 신뢰할 만하지만, ‘간호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독자적인 권한을 부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는 의사 고유의 영역을 침범할 생각이 전혀 없다. 간호사의 역할만 하기에도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다. 점점 더 증가하는 간호 본연의 영역을 제대로 법적으로 정리하고 간호사의 권리와 책임을 제대로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생애주기에서 언젠가는 한번 쯤 간호를 받을 국민들을 위해 ‘간호법’이라는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법질서 하에서 보다 안전하고 수준 높은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준비하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간호법’은 간호사들만을 위한 법이 아님을 국민들이 제대로 알고 함께 해 주시길 거듭 당부 드린다.

간호법은 대학에서 간호학을 배우고 국가시험에 합격함으로써 국가로부터 국민들의 건강을 돌보라는 권한을 부여받은 간호사들의 ‘독자적인’ 권한과 영역을 법으로써 정하자는 것이다.

양보와 타협에도 불구하고 간호법을 간호사만을 위한 법으로 왜곡시키고 있는 의사협회와 간호조무사협회는 다시 한 번 ‘간호법’ 제정의 필요성을 가슴으로 읽고, 고령화 시대로 치닫는 세상의 요구에 맞는 국민 건강을 위한 발걸음에 동참하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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