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 양영구 기자
취재부 양영구 기자

[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어릴 때 동네 공터에서 검은 비닐 봉지에 구슬을 가득 넣고 구슬치기를 했었다. 구슬을 다 잃을 때면 내 깜보(우리 동네에서는 깜보라고 불렀다)였던 지홍이에게 가 구슬을 빌리거나, 팀을 맺고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으로 나설 때가 있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 전 세계에서 유행한 오징어 게임에 깐부라는 단어가 나오는 걸 보고 그때 생각을 다시 하곤 했다. 힘을 합쳐 시너지를 낸다면 손실을 회수하고 자존심도 세울 수 있는 전략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요즘 나의 관심사는 국내 제약사의 인수합병(M&A)이다. 2018년 한국콜마와 CJ헬스케어가 M&A를 단행한 건 업계의 큰 이슈였다. 

사실 그때만큼의 관심은 아니지만 GC녹십자의 유비케어 인수에 이어 최근 CJ제일제당의 천랩 인수 등 굵직한 M&A가 이뤄지면서 또 다시 눈길이 간다. 대기업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규 사업 영역에 진출하는 등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약바이오 분야 벤처의 활발한 창업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창업자의 연구개발의 연속으로 여겨지곤 했다. 이와 달리 기업들은 M&A에 대한 투자 회수를 코스닥 상장이라는 방법만 생각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M&A 경향은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GC녹십자의 유비케어 인수는 국내 제약사가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에 본격 뛰어든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유비케어는 병의원 전자의무기록(EMR) 국내 시장 점유율 50%를 넘게 차지하는 기업이다. 

게다가 GC녹십자는 유비케어를 통해 만성질환 관리 플랫폼 기업 아이쿱도 인수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에 개인 맞춤형 플랫폼까지 더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실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국내 시장 상황은 아직 미비하지만, 해외에선 e커머스 시장과 어깨를 견줄 만큼 성장했다. 

CJ제일제당도 레드바이오로의 사업영역 확대를 위해 마이크로바이옴 전문기업 천랩을 인수했다. CJ제일제당이 레드바이오 기업을 인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람의 피를 의미하는 레드바이오는 건강·의학바이오를 칭하는 분야로, 최근 성장성이 부각되는 분야다. 연구개발 역량과 기술을 통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그러나 성장성이 높은 신규 사업 영역을 선점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사실 그동안 업계는 M&A의 목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가증권시장 상장이라는 쉬운 투자회수 방법을 사용해왔다. 이는 연구개발, 사업 개발에 집중하지 않았던 만큼 기업의 시장 퇴출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기업과 기업이 힘을 합하고 때로는 하나가 돼 성장하는 건 여러 산업군 전반에서 일반적인 일이다. 오너의 입김이 강했던 제약바이오 산업도 늦었지만 현재는 기회가 된다면 M&A를 적극 고려할 만큼 변했다.

M&A는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인수하거나 합병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크기야 어떻든 기업과 기업이 힘을 합치는 것이다.

올해는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계에서도 M&A, 이른바 '깐부'를 맺고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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