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혈압·心부전·腎장질환 상호 위험인자로 동반이환↑
혈압·혈당조절 기전 복합제 개발되면 종합치료 가능
RAS억제제·ARNI·SGLT2억제제 주목

 

고혈압(高血壓)·심부전(心不全)·신장질환(腎不全)과 같은 만성질환의 국내 유병률이 각각의 강도는 다르지만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들 주요 만성질환이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동반이환되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어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대한고혈압학회의 진료지침에 따르면, 고혈압은 심부전의 가장 중요한 위험인자로 심부전 환자의 약 75%가 고혈압 병력자에 해당한다. 대한심부전학회의 ‘Korea Heart Failure Fact Sheet 2020’을 봐도, 2018년 기준으로 고혈압이 동반이환된 심부전 환자의 비율은 전체의 87%에 달한다. 심부전의 치료에 혈압조절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장질환도 고혈압과 상호영향을 주고받기는 매한가지다. 대한고혈압학회 고혈압 진료지침에는 “만성신장질환(CKD) 환자에서 흔히 혈압이 상승하고, 혈압을 조절함으로써 신장기능 악화의 속도를 늦춰 심뇌혈관합병증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동반이환 특성을 나타내는 고혈압·심부전·신부전 등을 하나의 전략으로 종합치료 또는 예방할 수 있는 병용·복합제 요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혈압조절 또는 혈당조절 기전의 약제들이 심부전과 신장질환 예방·치료 영역으로까지 적응증을 확대하고 있어 주목된다.

궁극적으로는 항고혈압제와 심부전·신장질환 치료신약을 하나의 정제로 혼합한 복합제(SPC, single pill combination)의 개발이 성사될지, 더 나아가 이를 통해 고혈압·심부전·신부전의 종합치료가 가능해질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고혈압

최근의 고혈압 동향은 목표혈압이 더 엄격해지면서, 가뜩이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조절률(140/90mmHg 미만조절)을 끌어 올리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는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를 위해 항고혈압제 병용요법, 더 나아가서는 복합제 전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적 선택이 움직이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는 지난 2021년 고혈압 팩트시트 ‘Korea Hypertension Fact Sheet 2021’을 발표, 우리나라 고혈압의 유병규모와 관리현황을 다시 한 번 업데이트했다. 업데이트판 팩트시트를 통해 2019년까지 대한민국의 고혈압 환자들이 어느 정도 규모였으며, 어떻게 치료를 받고 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혈압을 140/90mmHg 미만으로 조절하고 유지하는 조절률과 항고혈압제 병용처방 비율이다. 먼저 고혈압 관리지표를 보면 △(유병자 중 고혈압인줄 알고 있거나 의사로부터 고혈압 진단을 받은 경우를 나타내는) 인지율은 70% △(항고혈압제 치료를 받고 있는) 치료율은 66% △(혈압이 목표치 이내로 강하·유지되고 있는) 조절률은 44% 수준이다. 인지율·치료율과 달리 조절률은 여전히 50%를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항고혈압제 치료는 계속 강도를 더하고 있다. 항고혈압제 처방동향을 보면, 2제 이상 항고혈압제의 병용요법이 다수 선택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처방현장의 임상의들이 항고혈압제 단독치료만으로는 목표혈압 달성이 어렵다는 점을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자세히 보면 2019년 기준으로 한 가지 약제를 처방받는 경우(1제요법)가 40.6%였던 반면, 2제 이상의 항고혈압제 처방은 59.4%로 단독치료보다 우위를 점했다. 세부적으로는 2제요법이 43.4%, 3제요법 이상이 16.0%로 두 가지 이상의 항고혈압제를 병용하는 처방이 다수를 차지했다.

심부전

심부전은 지난 20여년간 유병률·입원율·사망률이 모두 증가하면서 국민보건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과거의 항고혈압제 치료와 더불어 심부전 예방·치료를 주목적으로 하는 신약들이 가세하면서 심부전 환자의 관리에 활력이 더해지고 있다.

과거부터 심부전 치료의 주종을 이뤄오던 RAS(레닌·안지오텐신계)억제제 계열의 항고혈압제에 새로운 혈압조절 기전의 ARNI(안지오텐신수용체-네프릴리신억제제)와 혈당조절 기전의 SGLT-2i(SGLT-2억제제)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

항고혈압제·혈압조절

대한심부전학회의 ‘Korea Heart Failure Fact Sheet 2020’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심부전 환자의 62%가 RAS억제제 계열의 항고혈압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CEI)와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로 대변되는 RAS억제제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심부전 치료의 주종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팩트시트에서 심부전은 “심장의 구조적 혹은 기능적 이상으로 말초기관에 필요한 만큼의 산소를 전달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정의돼 있는데, RAS억제제가 혈압강하에 더해 심혈관의 구조·기능적 변화를 개선하는 만큼 심부전 치료에도 많이 사용되는 것이다. 대한고혈압학회의 고혈압 진료지침에서도 RAS억제제는 심부전, 좌심실비대, 관상동맥질환, 만성신장질환, 뇌졸중, 노인 수축기단독고혈압, 심근경색증 후, 심방세동 예방·당뇨병 등 광범위한 동반질환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RAS억제제 중 ACEI는 과거부터 일련의 임상연구를 통해 심부전이나 좌심실기능장애 환자에서 주요 심혈관사건 감소혜택을 입증받은 바 있다. CONSENSUS(NEJM 1987), SOLVD(NEJM 1991), AIRE(Lancet 1993), TRACE(Lancet 1999) 연구 이외에도 상당수의 임상근거가 심부전 환자에서 혜택을 뒷받침한다. 이들 연구에서 ACEI 계열은 심부전과 동맥경화증 진행을 지연시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심부전·좌심실기능장애 환자의 사망 및 합병증 위험을 감소시키는 혜택을 보였다.

ARB는 ACEI와 대등한 유효성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약제라는 점을 내세워 항고혈압제 처방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ARB 계열은 ONTARGET(NEJM 2008), TRANSCEND(Lancet 2008)를 비롯해 이 보다 앞선 CHARM(JAMA 2005), Val-HeFT(NEJM 2001) 연구 등에서 모두 비슷한 타깃환자를 대상으로 ACEI와 대등한가, 또는 ACEI를 대체할 수 있는가를 검증받았다. CHARM과 Val-HeFT 연구에서 ARB 제제 칸데사르탄과 발사르탄은 심부전 환자의 주요 심혈관사건 위험도를 위약군 대비 각각 약 13% 낮췄다. 특히 이들 연구는 ACEI 사용이 힘든 환자를 별도로 분석한 연구(CHARM-Alternative, Val-HeFT sub-analysis)에서도 위약군 대비 유의한 심혈관보호효과를 나타내 ACEI 대체제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혈압조절 기전

최근 새로운 심부전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는 약물은 ARNI 계열이다. 이 약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심부전, 특히 박출량감소심부전(HFrEF)의 약물치료는 대부분 혈압강하 기전에 심부전 임상혜택을 갖춘 항고혈압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제한적 영역에 머물러 있던 심부전 약물치료에 보다 폭넓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 바로 ARNI 계열이다. ARNI는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와 네프릴리신억제제를 혼합한 복합제(발사르탄/사쿠비트릴)로, PARADIGM-HF 연구를 앞세우며 심부전 치료제 시장에 새롭게 등장했다.

미국심장학회(ACC)는 지난 2021년 ‘심부전 치료 전문가합의문’에서 HFrEF의 첫치료에 ARNI를 우선 권고했다. ARNI·ACEI·ARB를 동시에 권고하면서도, 3개 계열 중에 ARNI가 선호된다(preferred)는 부연설명을 달았다. 이는 HFrEF 환자의 첫 치료에 ARNI를 먼저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심부전 치료에서 ARNI의 영역확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혈당조절 기전

심부전 치료선택을 넓혀주고 있는 약물로는 혈당조절 기전 또는 경구 혈당강하제에 속하는 SGLT-2억제제도 큰 몫을 하고 있다. ACC의 ‘심부전(HFrEF) 치료 전문가합의문’에서 SGLT-2억제제는 ARNI·ACEI·ARB·베타차단제 등의 첫 치료에 이어 추가할 수 있는 2차치료제 중의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심부전 치료전략 안내를 목적으로 하는 학계 보고서에 SGLT-2억제제가 심부전 치료제로 공식 권고된 것은 아직은 매우 드문 사례에 속한다. 이전까지 SGLT-2억제제는 미국당뇨병학회(ADA) 가이드라인 등에서 심부전 병력자 또는 고위험군인 제2형당뇨병 환자의 치료에 우선 선택할 수 있는 혈당강하제로 추천된 것이 전부였다.

ACC 전문가위원회는 SGLT-2억제제 권고의 근거가 된 연구로 EMPEROR-Reduced(엠파글리플로진)와 DAPA-HF(다파글리플로진)를 꼽았다. 이들 연구에서 동계열의 두 약제는 당뇨병 유무에 관계없이 심혈관 원인 사망과 심부전 입원율 감소를 입증받았다. 전문가위원회는 이 같은 결과에 근거해 “SGLT-2억제제가 HFrEF 환자에서 임상혜택과 관련한 계열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신장질환

신장질환의 예방·치료에 있어서도 혈압조절 및 혈당조절 기전 약물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과거에는 일련의 임상연구에서 항고혈압제나 혈당강하제를 통해 혈압·혈당조절에 더해 신장기능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 관찰되면서 신장질환 예방·치료 영역에서 항고혈압제와 혈당강하제의 비중이 상당했다.

당뇨병·고혈압·신장질환까지 총망라하는 전방위적인 종합치료의 프로세스를 보여준 사례는 ADVANCE 연구가 대표적이다. 연구팀은 당뇨병 환자에서 ACEI 페린도프릴과 이뇨제 인다파미드의 고정용량 병용요법으로 혈압을 강하시킬 경우 심혈관 및 미세혈관합병증 위험이 감소됨을 입증했다. 연구에서 관심을 끌었던 대목은 미세혈관합병증인 신장질환 위험감소 혜택이었다.

미세혈관합병증 위험도 관찰결과, 페린도프릴+인다파미드 병용군의 총 신장사건(total renal events) 위험이 위약군 대비 21%(P<0.0001) 유의하게 감소했다. 여기에 신규 미세알부민뇨(new microalbuminuria)의 상대위험도 역시 21%(P<0.0001) 감소해 위약군과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를 나타냈다.

한편 ADVANCE 연구에서는 제2형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집중 혈당조절을 통해 미세혈관합병증, 특히 신장질환 위험을 장기적으로 유의하게 줄일 수 있는 것으로도 보고됐다. 설폰요소제(SU) 계열 혈당강하제 글리클라지드 기반의 집중 혈당조절과 표준요법을 비교한 결과, 글리클라지드군의 미세혈관 및 대혈관합병증 복합빈도가 표준요법군에 비해 10% 낮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hazard ratio 0.90, P=0.01).

특히 글리클라지드 기반요법군의 미세혈관합병증이 표준요법 대비 14%(hazard ratio 0.86, P=0.01) 감소했는데, 신장질환 상대위험도가 21%(hazard ratio 0.79, P=0.006) 낮아진 것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혈당강하제 중에서 강력한 신장보호효과를 나타내는 또 다른 계열은 SGLT-2억제제(SGLT-2I)와 GLP-1수용체작용제(GLP-1RA)를 꼽을 수 있다. ADA는 새 가이드라인에서 “신장질환 병력의 제2형당뇨병 환자에게 심혈관질환 혜택이 입증된 SGLT-2억제제 또는 GLP-1수용체작용제를 권고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규모 랜드마크 임상연구에서 확인된 각각 계열의 신장보호효과에 근거한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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