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 양영구 기자 
취재부 양영구 기자 

[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비로소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꽃을 제재로 삼아 존재의 의미와 인식을 사유한 시다. 시에서 말하는 꽃은 이름을 불러줬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 하나의 존재로 인식되는 어떤 대상이 된다는 게 핵심 메시지다. 

K-POP, K-바이오, K- 백신 등 'K'라는 알파벳이 언제부터인가 유행어처럼 단어 앞에 붙기 시작했다.

실제 코로나19(COVID-19) 유행 초기 한국의 방역 시스템은 전 세계가 롤모델로 삼을 정도였고, 짧지만 그동안 쌓아 온 백신 개발 노하우는 국산 백신 개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약 2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코로나19 백신 시장은 미국 화이자와 모더나가 전 세계 시장을 사실상 독식한 상태다.

이를 기반으로 지난해 화이자는 44조원, 모더나는 46조원을 벌어들였다. 작년보다 줄긴 하겠지만, 올해도 두 회사는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매년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당신은 화이자 또는 모더나의 백신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K-백신을 선택할 것인가.

도전자의 추종을 불허하는 두 기업의 막대한 자금력과 수억명에게 접종되며 쌓인 데이터는 '승자 독식'을 더 강화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두 회사의 전 세계 시장 독식은 한국 기업이 개발 중인 백신은 상업성이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그나마 K-백신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저개발 국가에 수출하는 방법 뿐인데, 이마저도 얼마나 먹힐지 의문이다.

이 같은 승자 독식 구조는 백신 뿐 아니라 코로나19 치료제 시장에서도 벌어질 공산이 크다.

화이자는 개발에 성공한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로 올해 약 26조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까지 K-백신은 11개, 치료제는 14개가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백신은 SK바이오사이언스의 제품 말고는 개발 속도가 더디다. 치료제도 셀트리온의 항체치료제 이외에는 상용화까지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막강한 파워를 가진 글로벌 제약사와의 경쟁에서 패배주의에 빠져 연구개발을 포기하자는 건 아니다. 그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혁신 기술, 그리고 상업적 전략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사실 많이 늦었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알아주지도 않는 성과에 취해있다가는 자기 만족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K-백신, K-치료제와 같은 별칭이나 찬사가 존재감을 갖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아닌 남들이 불러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우린 어쩌면 '국뽕'에 취해 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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