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동갑내기 의사가 오늘을 사는 법
박상재 교수 "좋은 수술은 머리가 6고, 손이 4일 수 있다" 
서구일 원장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과 공감 능력 중요"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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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국립암센터 박상재 교수(간담췌외과)와 모델로피부과 서구일 원장.  서울의대 84학번 동갑내기 친구인 두 사람은 부산에서 같이 서울로 상경해 의대를 다니고,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누고 있는 그야말로 죽마고우다. 두 사람이 의대를 다닐 때만 해도 '써전'의 꿈을 같이 꿨다고 한다. 

그런데 박 교수는 간담췌 수술을 하는 외과의사로, 서 원장은 주사나 레이저로 사람들의 외모를 젊고 예쁘게 해주는 일을 하는 피부과의사다.

서 원장은 "박 교수는 학문적이나 업적으로도 검증된 사람"이라며 "테니스, 골프 등 모든 운동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술도 잘 마신다. 다재다능한 멀티플레이어다. 게다가 유머 감각에 소탈하고 의리 있는 친구다. 언제봐도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라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서 원장은 학교 다닐 때부터 똑똑하고, 무엇을 해도 최선을 다하는 친구"라며 "최고의 자리에 있지만 수수하고, 학문적으로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지금은 각기 길 위에 서 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써전을 사랑하고, 의사로서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외과의사 박상재 교수와 피부과의사 서구일 원장이 얘기하는 그들의 오늘을 들어봤다. 

- 지금의 진료과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서구일(이하 서): 우리가 의대를 다닐 당시에는 외과의 인기가 높았다. 나도 외과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외과는 힘들고, 위험하고 개업하기 힘들게 될 테니 편한 진료과를 선택해라"라고 하셨다. 당시 아버지가 고신대 외과 교수로 재직하고 계셨다. 아버지가 왜 그러셨을까(웃음).  

박상재 교수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박상재 교수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박상재(이하 박): 서 원장이 외과를 먼저 지원하자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피부과를 선택한 걸 알게 됐다.

당시에는 좀 섭섭하긴 했다. 학창 시절 서 원장 집에 자주 놀러 가 외과의사인 서 원장 아버님을 많이 뵀었다. 멋있어 보였다. 내가 외과를 선택한 이유는 외과 선배들, 외과 교수님들이 멋있어 보여서였다. 게다가 재밌기까지 했다. 의대에서 외과 세션을 공부할 때 너무 재밌었다. 그러니 당연히 선택은 외과였다. 

- 지금 그때의 선택에 만족하는지? 

박: 며칠 전에 질문을 받고 혼자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결론은 "그렇다"였다. 나는 외과의사로 사는 게 즐겁고, 재밌다. 환자를 수술하는 삶은 고단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즐거웠다, 괴로웠다, 무서웠다 등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런데도 수술을 앞둔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에는 설렌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외과의사인 모양이다. 

서구일 원장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서구일 원장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서: 외과에 대한 미련이 좀 있었고, 그래서 개원을 준비할 때 고민이 많았다. 환자의 바이탈을 다루는 의사도 아니고, 흉부외과 서전도 아닌데 과연 내가 행복할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후 생각이 바뀌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나이 든 사람에게 젊음과 아름다움을 주는 것도 좋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의사란 남들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직업 아닌가. 

- 외과의사로서 수술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박: 수술을 끝낸 이후 중환자실에서 연락이 오면 아직도 심장이 내려앉는다. 환자가 나빠지면 나도 같이 나빠지고, 환자 상태가 좋으면 나도 좋아진다. 늘 같은 패턴이다. 어쩌다 환자가 사망하면 내가 받는 트라우마가 심하다. 그때마다 환자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았냐라고 자신을 다독이지만 위로는 안 된다. 사실 스트레스를 이길 해결책은 없다. 결국 한잔 마신다. 그 순간을 잊기 위해. 

박 교수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국립암센터의 간담췌외과의 기틀을 잡은 의사다. 500병상 국립암센터에서 간이식이 가능하도록 세팅을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현재 국립암센터 연구소 연구소장, 한국간담췌외과학회 이사장 등 간담췌외과 분야의 정상에 서 있다.

서 원장은 필러와 보톡스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하는 의사다. 2017년 한국형 보톡스 시술법 영문판을 발간했고, 최근엔 '필러안면윤곽술(Facial volumization with fillers)'을 세계적 의학 과학 전문출판사인 스프링거 네이처'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현재 대한피부외과학회 회장이기도 하다. 이들이 각자의 분야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피부과 의사인 서 원장은 커뮤니케이션, 공감 능력을, 외과 의사인 박 교수는 실력을 꼽았다.    

- 의사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서: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또는 공감 능력이라 생각한다. 고객이 오면 "이 사람이 원하는 게 무엇이구나"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의사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결국 모든 게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사람에게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을 공유해야 한다. 또 부작용이 생겼을 때 같이 공감해주는 것도 의사에게 필요한 덕목이라 본다.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박: 외과의사에게 중요한 건 실력이다. 의사의 존재 이유는 환자를 위한 것이다. 득이 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의사의 실력이란 '손의 실력'과 '머리의 실력'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머리의 실력이란 손이 아무리 빨라도 수술의 방향과 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수술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무리한 수술을 강행하거나, 또는 충분히 수술할 수 있는데 뒤로 빼는 것은 지식이 부족해 그럴 수 있다. 수술에 대한 지식이 충분히 있어야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좋은 수술은 머리가 6이고, 손이 4일 수 있다. 

실력과 함께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환자나 보호자의 마음을 100% 이해할 수 없어도 의사인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달할 수 있다면 최소한 적대적이지 않게 된다. 같은 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과의사로서의 삶의 고단함을 아는 두 사람. 만일 자식들이 외과의 길을 가려고 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박 교수는 외과를 선택한 자녀에게 격려를, 서 원장은 자녀의 결정을 말릴 것이라 했다. 그들은 왜 이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 만일 자식이 외과를 지원한다면?

박: 만일 내 딸이 외과를 지원한다면 나는 격려해줄 것이다. 딸은 내가 즐거워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래서 외과의사가 어떻게 사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피부과를 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하는 일이 생명을 다룬다고 해서 더 중요하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덜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서: 외과는 말려야 한다(웃음). 힘들 것이 분명해서다. 수술에 따른 부작용이 생겼을 때 피부과는 흉터 정도로 끝나지만 생명이 좌지우지되는 외과는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얼마 전 휘플수슬(Whipple operation)을 할 때 의사 6명 정도가 참여하는데, 수술 비용이 300만원 정도라는 얘기를 들었다. 쌍꺼플 수술 비용 정도도 안 되는 것이다. 의사 6명이 6시간 고생하는데 보상이 너무 적다. 현 의료보험 체계에서는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스트레스도 받으니 나는 자식에게 외과 지원을 말릴 것이다.  

- 열악한 외과 문제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자원이 왜곡됐다. 외과는 생명을 다루는 진료과이고, 휘플수술처럼 많은 인력이 들어가면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해야 한다. 숭고한 히포크라테스 정신, 희생정신 등을 얘기하는데 의사도 오늘을 살아가는 직장인이다. 외과와 같이 힘들고 어려운 진료과는 더 많은 수가를 책정해야 한다. 요즘 걱정은 내가 70~80살이 됐을 때 내 생명을 믿고 맡길 외과의사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이 너무 근시안적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한 예로 내가 애가 셋이다. 셋째(97년생)가 태어날 때 보험이 안 됐다. 둘째까지만 보험이 됐다. 그런데 2000년부터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출산장려 정책을 폈다. 정책 담당자들이 트렌드를 봐야 하는데 그걸 못 보고 결정을 한 것이다. 

84년 동갑내기 친구인 미래로피부과 서구일 원장과 박상재 교수(사진 오른쪽)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84년 동갑내기 친구인 미래로피부과 서구일 원장과 박상재 교수(사진 오른쪽)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박: 사실 휘플수술도 200만원 하던 것이 올라 300만원이 된 것이다. 휘플수술 300만원이 저렴하다고 했지만, 정부는 다른 계산법을 쓴다. 원가 보전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외과의 문제를 풀려면 수가를 올려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도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지금 같은 정책으로 젊은 의사들을 외과로 오게 하긴 힘들다. 옛날에는 힘들어도 멋있어 보이면 지원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의 결정 방향은 달라졌다. 본인의 워라벨을 더 추구하는 방향으로 간다. 그래서 사실 수가가 올라간다고 해도 예전처럼 지원할까 미지수다. 외과 수련이 4년에서 3년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전공의들이 더 안 온다. 중요한 것은 3년이냐 4년이냐의 수련 기간이 아니라 미래다. 수련 이후 의사의 미래 말이다.    

- 외과의사 부족은 곧 닥쳐올 얘기일 수 있다.  

박: 외과의사가 모두 엄청나게 어려운 수술을 잘할 필요는 없다. 기본적인 것을 잘 하고, 환자에게 도움이 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20~30년 정도 지나면 외과의사가 굉장히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노인 인구는 증가할 것이다. 문제는 노인에게 외과적 문제가 생겼을 때 의사가 부족하고, 있다고 해도 어떻게 수술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결국 외국에서 의사를 수입하는 게 현실적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노인환자의 외과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외과에서 아무리 수가가 낮고, 이러다 외국 의사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얘기해도 아직은 절실하지 않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피부과 의사가 본 현재 피부과의 모습은? 

서: 보험을 틀어막으니 의사들이 피부미용 등 정부의 컨트롤을 받지 않는 쪽으로 가고 있다. 흉부외과, 가정의학과, 일반외과 의사들이 자신의 진료과를 버리고 피부미용, 미용성형에 발을 담그고 있는 실정이다. 흉부외과 등 그들이 술기를 할 수 있는 병원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수가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  외과의사가 바라본 피부과는? 

박: 국립암센터 피부과에 피부암이나 종양에서 피부를 떼어내는 모스도식수술을 하는 송기훈 교수가 있다. 낮은 수가에도 최선을 다해 수술하는 피부과 의사다. 사실 의대를 다닐 때 피부과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다.

의대 커리큘럼이 잘못됐다고 본다. 피부과 의사는 다양하고 중요한 일을 하는데, 의대에서는 그걸 알려주지 않았다. 피부과가 중요하다는 홍보가 필요해 보인다. 또 미용 피부 또는 미용 성형에 대한 전 국민의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사실 이를 원하는 사람들의 절박함의 양과 질은 질병이 있는 사람의 그것보다 적지 않다. 

5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선 두 사람의 꿈은 무얼까. 박 교수는 환자에게 더 좋은 외과의사가 되는 것이, 서 원장은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지만 이제는 좀 더 재미있는 삶을 사는 게 희망이라고 했다.

-  앞으로의 꿈은?

박: 환자에게 더 좋은 외과의사가 되고 싶다. 정년이 10년 정도 남았는데, 그동안 노력할 것이다. 또 다른 꿈은 간담췌외과를 하는 돌아이(?)들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내가 간담췌외과학회 이사장도 수락한 것이다.  

외과는 개업하기도 어렵고, 상황도 열악하다. 그런데도  외과를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하는 이상한(?) 의사들이 있다. 그런 의사들이 사명감으로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서: 거창한 꿈은 없고, 이제는 재밌게 살아보고 싶다. 어머니가 3~4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나도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하고 37년 동안 열심히 살았으니까 이제 좀 놀아도 되지 않을까!

그동안 조깅, 스키 등 많은 운동을 했는데 몸 여기저기서 파열음을 내서 그만뒀다. 그래서 10년 동안 하지 않던 골프를 최근 다시 시작했다. 올해 목표가 싱글이다. 10년 전 식스팩을 만든 것처럼 올해는 골프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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