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단체 주장...공청회 무산

"병원, 약국 등의 일반인 개설을 허용하는 것은 안된다.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달린 문제를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게 할 수 없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전문자격사 시장 선진화 방안"에 대해 보건의료단체들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표명하고 나섰다. 10일 서울시의사회와 약사회 등 서울시보건의료 6개 단체는 "정부가 공익시설인 의료기관 및 약국의 진입 장벽을 허물려 하는 것은 일부 대기업에 혜택을 주려는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2일에는 KDI가 내놓은 "소비자 중심의 의약품 정책" 연구용역 결과에 대한 공청회는 대한약사회의 강한 반발로 무산됐다.


KDI가 열기로 한 "의약품 정책"
공청회가 약사회 임원들의
반대 시위로 무산됐다.
사진·고민수 기자
msko@mmkgroup.co.kr



연구용역의 주 내용은 비타민, 무기질, 제산제, 변비약, 해열진통제 등 일반의약품을 약국 외 슈퍼, 편의점 판매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문의약품과 의약품의 분류를 그동안 진행해온 의사와 약사 간 협상이 아닌, 국민을 위한 정책으로 제도를 개선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미국이나 일본과 같이 약국에 관한 자본과 관리를 완전히 분리, 약사가 아닌 일반인에 대해 법인약국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약사 1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약국에서 탈피, 경영의 효율화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이날 공청회에 앞서 대한약사회 임원진 30여명은 "일반인 약국 개설 반대" 등의 어깨띠를 두르고 "보건의료시장은 공공성, 전문성, 윤리성에 의거한 안전규제가 시행되는 만큼 이를 해제하면서 철저한 자본 상업화를 추진한다면, 시장이 왜곡되고 혼란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현재 약국의 접근성은 중소형 약국의 몰락으로 떨어져 대형약국 자본에 지배된다고 강하게 항변했다.

대한약사회 김구 회장은 "전문자격사 선진화 방안 추진을 전면 백지화하라"며 "약국 외 장소에 대해 판매되고 있는 의약품 유통근절의 대책부터 수립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사회 선거시기와 맞물려 있는 만큼, 회장 후보 진영에서는 더욱 심한 반대의사를 내비쳤다. 서울시약사회장 신춘웅 후보는 삭발을 감행했으며, 전국 각 지역약사회장 후보들이 계속적으로 반대의견을 펼치면서 결국 40분만에 공청회가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이날 토론자로 참여하려던 대한의사협회 이재호 정책이사는 "접근성과 선택권만을 생각해 일반인의 약국 개설을 허용하면 의약품 오남용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유통질서를 무너트릴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며 "의약품분류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는 일반의약품의 슈퍼판매는 허용하나, 약국의 일반인 개설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성명을 통해 "안전성과 편리성을 근간으로 해 아주 안전한 일부 약품에 대해서 일반의약품으로 지정해 슈퍼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며 "그러나 소비자 중심의 의료를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은 다양한 약국 형태의 존재가 필요하며, 의료계의 상업화로 인한 이윤창출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성토했다.

한편, 반대항의가 거셌던 공청회장 입구에는 경만호 의협회장이 보낸 "축 공청회" 문구가 담긴 화환이 눈에 띄었다. 한 약사회원은 "약사들이 반대하는데 의사들도 힘을 보태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화한을 던지는 일이 연출됐다.

원래 의료기관도 공청회 논의대상에 포함돼 있었는데, 갑자기 빠졌다는 이유로 약사회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의료기관도 포함되기로 했었지만, 정리가 덜 돼서 빠진 것으로 안다"며 "다음번 공청회 때는 의료기관도 포함해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협은 의료기관의 일반인 개설에 허용에 대해 약사회와 같이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재호 정책이사는 "일반인 자본을 들여오면 병원이 대형화, 체인화하기 마련으로, 전문가 영역의 탈전문화는 반대한다"며 "신성장동력을 위한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 전문자격사 시장을 개방하자는 취지지만, 자본이 꼭 필요하다는 논리는 한 면만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 이사는 "건강권, 생명권을 자본시장의 논리로 해석하려 하지 말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제도 자체를 보완, 개선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개설 독점권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되, 개설 인정권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등의 규제 완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공청회는 의견수렴을 거치기 위한 자리인데 토론자체를 진행할 수 없어 유감이며, 향후 공청회 추진 일정을 관계 부처 등과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시작부터 순탄치 않을 거란 전망만을 남겼다.

전문자격사 시장 선진화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각 직역과의 의견조율을 통한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약사회와 의협도 무조건적인 반대를 표명할 것이 아니라, 공청회를 통해 합당한 반대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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