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대개 사람들은, 아니 최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악인보다 위선자를 더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에게서 도덕적 결함을 느끼게 되면 분노와 충격, 그리고 배신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최근 책을 대신 읽어주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단테의 신곡이 소개되면서 다시 꺼내들었다.

신곡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부분은 지옥 편이다. 단테가 묘사한 지옥은 총 9층으로 이뤄진다. 1층부터 밑으로 내려갈수록 죄의 무게가 크고, 형벌도 가혹해진다.

가장 중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모인 9층은 코퀴토스 호수로, 배신 지옥이라고 불린다. 이 곳은 국가, 가족, 친구, 스승, 은인 등을 배신한 사람들이 영원히 차가운 얼음 속에 쳐박히는 형벌을 받는다.

그 바로 윗층인 8층은 말레볼제, 즉 사기 지옥이다. 사기로 주변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넣은 사람들이 10겹의 구덩이에서 10종류의 벌을 받는 곳이다.

이곳에서 위선자들은 겉은 금으로 이뤄져있지만 속은 납으로 된 무거운 옷을 입고 계속 걸어야 한다. 

단테도 의도된 악이나 폭력을 저지른 악인 보다 위선자를 더 큰 죄를 지은 사람으로 본 것이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 MSD는 이달 1일부터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가다실9의 가격을 인상했다. 소위 말하는 자궁경부암 백신이다.

MSD는 지난달 31일 가다실9 가격을 15% 인상하겠다는 내용을 의료기관에 전달했다.

가다실9 첫 출시부터 지금까지 가격을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백신 생산 고유의 복잡성과 최대 4년이 소요되는 긴 생산기간, 품질관리와 인프라 확보 필요성 등에 따라 가격을 인상하기로 결정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가다실은 성인 환자의 경우 전액 자부담 해야하는 비급여 의약품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총 3회를 접종해야 하는 가다실9는 적게는 32만원부터 많게는 약 60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환자들은 접종 필요성을 느낀다.

가다실9는 자궁경부암을 비롯해 외음부암, 질암, 항문암, 생식기 사마귀 등 HPV 바이러스로 유발되는 질환을 가장 많이 예방할 수 있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접종이 권장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백신 접종이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데, 공급가를 높임으로써 환자 접근성을 떨어뜨렸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를 지적하는 환자들의 목소리도 높다. 백신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격을 인상할 게 아니라 오히려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글로벌 제약사가 국민의 건강은 외면한 채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눈초리도 심심찮게 보인다.

MSD는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환자 우선'을 최우선 가치로 꼽고 있다.

"우리는 전 세계 사람들의 건강을 개선하고 의약품 및 백신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고자 한다"면서 말이다.

위선적으로 자신의 선함을 연기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크게 몰락할 때가 있다.
위선보다 차라리 위악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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