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 국내 임상시험 확대 계획
특정기간 승인 건수로만 활동 측정·판단해선 안돼

 식약청 자료에 따르면, GSK 한국법인은 지난해 총 26건의 임상을 허가받아 1위를 달렸다. 하지만, 올 상반기 승인 건수는 총 4건으로 10위권에 턱걸이한 상태. GSK 한국법인 학술부 총괄책임자인 이일섭 부사장은 이에 대해 "식약청 승인 건수 만 가지고 임상시험 활동을 측정·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연구·개발위원회(R&D committee) 위원장 직을 맡고 있는 이 부사장은 "실제 다국적제약기업의 국내 R&D 활동을 파악하기 위해 투자액·연구인력·임상시험 활동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환자 모집 계속 증가

 다국적제약기업들이 임상시험 활동 평가 시 적용하는 기준은 승인부터 완료보고서 제출까지(보통 1~5년)의 "현재 진행 중인 임상시험" 건수와 "모집 환자" 수가 대표적이다.

이 부사장은 "GSK 한국법인의 연간 진행 중인 임상시험 건수가 2001년 이래로 계속 증가했으며 올해는 아직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으나 누적 분을 계산하면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올 1·2분기 본사에서 한국으로 배정한 임상시험의 수가 호주·중국·타이완·필리핀 등과 비교해 더 많다"는 설명이다.

 모집환자 수는 보다 급격한 변화가 관찰된다. GSK 한국법인의 다국가임상 모집환자 수는 2008년까지 계속 증가했으며, 올 8월 현재 800명을 넘어서 연간 목표치를 크게 웃돌고 있다. 특히 올해 모집환자 수는 지난해 이룬 세계 10위보다 좋은 기록으로 전세계 8위권 내에 들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방한한 GSK 임상시험 운영 총괄 책임자(Lynn Mark) 역시 한국 임상시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 향후 지속적인 투자확대를 약속했으며, 특히 조기임상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을 표명했다. GSK가 항암제·신경과학·호흡기 3개 부문에서 한국을 핵심임상국가로 선정했다는 소식과 더불어 투자확대를 점쳐볼 수 있는 대목이다.

"R&D 전반 투자 계속 늘릴 것"

 한국노바티스 자료에 따르면, 2007·2008년 국내에서 총 25·31건의 다국가임상이 진행됐으며, 2009년에는 50건이 예정돼 있다. 한국 내에서만 시행하는 4상임상과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IIT)은 제외된 수치다. 여기에 2006년 총 임상시험의 9%에 머물렀던 1·2상을 2011년 27%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노바티스는 특히 R&D 산업 전반에 대한 국내투자를 진행 중이다. 2007년 공식 출범한 노바티스 벤처펀드가 대표적 예. 질병의 발생과 치료에는 국경이 없다는 인식 하에 국내 바이오산업 활성화를 목표로 신약 및 신기술 산업에 재정적 투자 및 자문을 제공하는 노바티스 벤처펀드는 오는 2011년까지 2000만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바이오벤처 기업인 "파멥신"과 투자 협약식을 갖고 100만달러를 초기 지분 투자하는 기본합의 내용에 서명하는 등 실질적 투자활동을 펼치고 있다.

임상의학부 최종태 상무는 "노바티스의 국내 R&D 투자가 "조기임상 확대", "노바티스 벤처펀드 투자 확대", "한-스위스 생명의학 심포지엄 활성화를 통한 대외협력 및 홍보 강화" 등을 중심축으로 지속·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핵심임상연구기관으로

 식약청 자료 상 승인 건수 1위를 고수해 온 한국화이자는 2012년까지 총 3000억원에 달하는 R&D 투자 양해각서를 지난 2007년 복지부와 체결한 바 있다.

2007·2008년 국내 R&D 투자액은 각각 230·340억원, 올해는 420억원 규모의 투자를 예상한다. 올 5월에는 한국화이자에서 진행하는 전체 2상 임상시험의 절반을 진행하게 될 9개 핵심임상연구기관(CRS, CORE Research Site)에 한국을 선정하기도 했다.

2상 등 조기임상에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국내 연구자들이 신약개발의 초기단계에서부터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무얼 준비할까

"전기임상 집중"으로 전략 변화 필요

모든 R&D 단계 기술 노하우 습득 가능

 다국적제약기업들을 보면, 향후 조기임상 유치를 확대한다는 공통된 목표를 확인할 수 있다.
 KoNECT와 정부도 앞으로 여타 신흥시장 및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기술적 수준을 요구하며 국내에도 기술전이가 기대되는 1상과 전기 2상 등 조기임상에 집중해야 한다는 전략적 변화를 내세우고 있다.

 ◇조기임상의 이점

 지금까지 우위를 보여준 3상시험을 바탕으로 기술적 측면에서는 한국에 뒤쳐진 중국 등 여타 경쟁국과의 차별화를 위해, 그리고 정부가 투자한 지역임상시험센터의 시설과 인력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전략적 목표가 된다.

하지만, 조기임상의 근본적인 혜택은 이를 통해 R&D 전(全) 단계의 기술적 노하우를 습득·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3상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연구자가 100~200명에 달해 연구논문에 이름을 올리기조차 힘든 반면, 조기임상은 세계 유수의 저널에 자신의 이름으로 연구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 임상연구 수준의 대외적 홍보와 직결되는 부분이다.

 ◇제도적 뒷받침 돼야

 조기임상 집중은 이미 산·학·정 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변화에 이은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식약청은 임상 승인기간을 대폭 줄여 왔고 앞으로 임상시험 신고제를 도입한다고 하나, 혜택은 주로 3상에 국한된 것으로 정작 승인기간을 줄여 국제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 조기임상에는 해당되지 못한다.

 이일섭 부사장은 "현재 3상을 두고 논의되고 있는 임상시험 신고제가 조기임상에 적용돼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임상시험 프로토콜과 윤리적 검증이 철저히 구비돼야 함을 전제로 한다. 최종태 상무 역시 임상시험 신고제가 궁극적으로 가야할 길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는 동시에, 이를 위해 식약청의 전문성이 먼저 확보돼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투자확대 위한 장벽 허물자

 다국적제약기업들이 향후 R&D 투자확대 계획을 밝혀 왔고 정부도 보다 많은 투자유치를 원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실제 투자를 이끌어 내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도적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임상시험 용 의약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임상시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국적사들은 공정하지 못한 장벽이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임상시험에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경우 별도로 수입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도 볼멘 목소리가 나온다. 의료기기를 들여오기 위해 별개의 과정을 밟다가 환자모집 시기를 놓치는 상황이 초래되기도 해 개선책이 당국에 여러 차례 건의됐다.

 또한, 다국적제약기업들은 R&D 활동 및 투자에 있어 국내기업들이 받고 있는 것과 동등한 혜택을 받아야 하며, 외국 R&D 투자를 더 유치하려면 투자에 비례하는 혜택이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연구인력 문제 개선해야

 한국은 임상시험과 관련 시설과 설비 등 하드웨어 인프라에 비해 연구인력 등은 아직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KoNECT가 연구인력 육성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연구자의 풀(pool) 자체가 좁은데다가 이 조차도 풀가동되고 있어 신규 연구자의 투입이 시급하다.

그렇다고 검증되지 않은 연구자들이 무작정 현장에 나서는 일은 오히려 대외 인지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연구자들의 자질과 역량을 검증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경우 임상시험 연구자의 검증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문제를 야기한 연구자에 대한 공시를 통해 여과과정을 거치고 있다.

 임상연구코디네이터(CRC), 즉 임상간호사들의 직장 내 불안정한 신분도 장기적 관점에서 해결돼야 할 문제다. CRC는 연구자와 더불어 임상시험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현재 CRC는 병원 간호사와 달리 비정규직 고용된다. 최 상무는 "불안정한 신분이 이직률을 높이는 동시에 밑빠진 독에 물 붙는 식의 육성 및 교육이 반복되는 소모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방 임상시험센터 역할

 특정 지역의 임상시험 성장 가능성을 볼 때 연구밀도(trial density), 즉 포화의 정도가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향후 지속적인 환자모집이 가능한가를 보는 것이다. 현재 국내 임상시험의 70% 정도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들 지역이 포화상태에 이르는 시점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전국적으로 14개의 정부 지정 지역임상시험센터가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인식된다. 이제 수도권에 집중된 임상시험을 지방으로 분산시킬 필요성과 이에 따른 지방의 역할에 기대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지방센터들은 시설이나 설비 등은 손색이 없으나 연구인력이나 조기임상 경험 등 기술수준에서 수도권과 대비된다.

 KoNECT의 신상구 단장은 정부 차원의 도움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센터 스스로의 노력이라며, 특히 병원 운영자들의 인식개선을 주문했다. 임상시험이 병원에 가져다 주는 가치를 인식하고 센터 육성에 먼저 나서줘야 한다는 것. 다각도의 지원이 계획돼 있는 상황에서도, 임상시험을 유치해야 본격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생각으로는 수도권과의 격차를 줄이기가 요원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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