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떠한 인생을 살고 있을까

장 석 준
서울대 사회학과 졸,
기획예산처 예산실장,
보건복지부차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역임.
현재 한서대학교 출강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을 마지막으로 봉직 생활을 한 후 현재 한서대에 출강하고 있는 장석준 교수의 "준비하는 삶"을 들어본다.


 살아가는 동안 가장 힘들게 했던 것 하나만 꼽으라면 사람들은 무엇이라 말할까. 나는 시험과 성적표라고 말하고 싶다. 대 여섯 살 되기가 무섭게 달라붙는 이 애물단지는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힌다.

오죽하면 시험"지옥"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학업을 모두 마치고 어렵사리 취직 관문을 통과해 으쓱대며 사회에 나왔을 때 잠시 해방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더 지독한 놈이 기다리고 있음을 이내 깨닫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실적 평가와 고과 점수 매기기는 살맛까지 잃게 한다. 오너나 상사의 주관적 편견까지 덧붙여 괴롭힐 때면 정말 감당하기 어렵다. "처자식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자조가 절로 나오게 된다. 자영업자나 전문직 종사자의 사정은 조금은 나은 것 같지만, 이것저것 따져보면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그래도 월급쟁이가 속 편하다"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이 애물단지는 언제쯤이면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일까? 오십줄에 직장을 나오게 된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앞으로 살아갈 걱정에 밤잠을 설치다가도 문득 문득 아주 개운한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드디어 점수 매기기를 당하는 일이 끝났다는 해방감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정년퇴직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 이제 편하게 쉬며 여생을 즐기시라"는 덕담을 많이 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사회에서 은퇴한 사람에게도 최소한 두 가지의 성적표가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세상을 떠난 후 가족, 친지, 후세들이 두고두고 점수를 매기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저승에 들어갈 때 조물주로부터 평가를 받는 것이다.

전자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이나 후자에 관해서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천차만별일 것이다. 종교에서는 이 문제가 중요한 이슈이므로 종교 별로 어느 정도 정형화가 되어 있으나 같은 종교 내에서도 종파·개인별로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런 평가 자체의 존재여부에 대하여는 비록 무신론자라도 아주 부정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평가하고 그 결과는 어떻게 활용 되는가 등이 아닐까 싶다. 즉 평가항목, 채점기준, 가중치, 결과에 따른 상벌 등일 것이다. 조물주께서 평가결과를 어떻게 활용하시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 가설을 세워 놓고 있다.

 첫째, 평가대상 기간은 개개인의 일생 전체일 것이나 시기별로 가중치가 달리 매겨질 것이다. 어린시절이나 학생시절의 가중치는 당연히 거의 없거나 아주 미미할 것이다. 힘과 능력과 권한을 많이 가진 때일수록 가중치가 높아질 것이다. 또 시간이 경과할수록, 즉 삶의 연륜이 더해 갈수록 가중치가 커질 것이다.

 은퇴 이후의 삶은 비록 힘과 능력은 떨어진다 해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가갈수록 가중치가 급격히 높아지기 때문에 청장년 시절 못지 않게 높은 가중치를 갖게 된다.

 특히 성공적인 삶을 살아서, 가진 것이나 영향력이 남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거의 절대적인 가중치를 갖게 된다. 우리 생애에 있어서 그동안의 긴 경과기간 보다 마지막의 짧은 기간이 더 결정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숱하게 경험하고 있다. 학교시험, 스포츠 경기, 선거운동, 비즈니스…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둘째, 평가항목과 평가서 작성자 문제이다. 혹자는 조물주께서 클릭만 하면 화면에 모든 것이 뜰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의 가설은 좀 다르다. 조물주께서는 평가 항목의 설정과 성적 산출은 평가받는 개개인에게 맡기시고, 그 결과에 대해 확인만 하실 것 같다. 인간의 본질적 가치로서 자유를 준 조물주다.

 스스로 자유를 만끽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는 철저히 책임을 지는 것이다. 피평가자가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평가할 지를 결정하고 자신을 평가한다면 평가기준이 잘못되었다거나 심판이 오심을 했다거나 하는 불평이 있을 수 없다.

 골프를 보라. 심판도 없고 플레이어가 자기 성적을 스스로 매기도록 두어도 판정시비가 거의 없지 않은가? 물론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하거나 조물주가 정해 놓은 기준에서 멀리 떨어질 경우에는 감점이나 벌이 가해질 것이다.

 이러한 가설에 따른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스스로 평가항목과 채점기준과 가중치를 만들어 보자. 그 다음 차근차근 실천해보자. 그리고 주기적으로 점수를 매겨보자. 그러면 이승을 떠나기 전이라도 나 자신의 마지막 성적표를 알게 될 것이다.

 위의 첫 번째 가설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조급해질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무언가를 이루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면 더욱 그러하다.

 지나온 세월에 대해 회한이 많은 사람은 역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은 것이다. 은퇴 이후에 고민도 많이 하고, 더욱 진지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조물주께서는 9회 말 역전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연출해낸 삶을 보는 것을 즐기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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