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결론 아직 안나왔다" 사전 불씨 잡기나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인슐린글라진과 암발생 위험의 잠재적 연관성에 대한 코호트 분석결과의 파장이 심상치 않다. "RECORD" 연구 최종결과로 로시글리타존 심혈관 부작용 파동의 큰불을 껐나 싶더니 잠시 쉴 틈도 없이 인슐린유사체 논란이 불거졌다.

 환자들은 연구결과에 대한 우려로 연일 포탈사이트에 질문을 올리고 있다. 의사들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 환자의 거부감과 기술적 문제로 인해 인슐린 치료에 부담을 느껴 오던 차에, 엎친데 덥친 격으로 이번 결과가 진위(眞僞) 여부를 떠나 또 다른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약물 부작용 논란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 내분비 학계도 앞선 경험을 살려 사전에 불씨를 잡고자 움직임이 분주하다.


 일단 해당 연구의 한계로 인해 현단계에서 아무 것도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과거 먼지 속에 묻혀 있던 인슐린의 증식활동에 관한 기초연구 및 동물실험들이 이번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하나 하나 수면 위에 부상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 지식과 정확한 정보에 기초하지 않고 받아쓰기식 보도에 그치는 일부 언론의 행태도 불필요한 우려를 양산하고 있다.

 최근 들어 북미·유럽의 당뇨병 관련 학회들이 고혈당 환자의 초기치료에 인슐린 요법을 권고하고 나서면서 인슐린이 새로운 관심을 받아 왔다.

 과거 경구혈당강하제 치료 후에나 고려됐던 것이 혈당강하 전략의 전면에 내세워진 것이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던 개원가로까지 인슐린 치료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인슐린 요법이 이번 논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주목된다.


인슐린, 특정한 경우 증식 문제 야기
암위험 증가로 확대 해석 경계

 ▲당뇨병과 암

 당뇨병과 암 사이의 잠재적 연관성에 대한 보고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다만 당뇨병 환자 사망원인의 70~80%를 차지하는 심혈관합병증 위험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스티븐 쿨린(Steven S. Coughlin) 등은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한 코호트 분석에서 당뇨병이 대장암, 췌장암, 여성 유방암, 남성 간암의 독립적 위험인자가 될 수 있음을 보고했다(Am J Epidemiol 2004;159:1160-1167).

 2005년에는 우리나라 환자 대상의 역학조사에서도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지선하 교수팀의 발표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공복혈당 126mg/dL 이상)의 암 사망률이 정상인(공복혈당 90mg/dL 이하)과 비교해 남자는 27%, 여자는 37%나 높았다(JAMA 2005;293:194-202).

 ▲인슐린과 암

 당뇨병 환자의 암 발생 및 사망위험의 연관성은 인슐린 요법에서 두드러진다.

 1만명 이상의 코호트 집단에 대한 분석에서 인슐린 투여 그룹의 암 사망은 5.8%로 메트포르민(3.5%), 설포닐우레아(4.9%) 그룹과 비교해 유의하게 많았다(Diabetes Care 2006;29:254-258). 또 다른 코호트 분석에서는 인슐린 사용자 그룹의 대장암 발생률이 비인슐린 그룹과 비교해 2배 가량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Gastroenterology 2004;127:1044-1050).

 ▲인슐린의 증식작용

 지금까지 인용한 보고들은 모두 관찰·역학연구 결과다. 이를 근거로 당뇨병 또는 인슐린과 암발생의 인과관계를 결론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일련의 관찰연구들이 일관되게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인슐린 기전의 부가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증식활동에 눈을 돌린다. 인슐린은 체내에서 두 가지 작용을 한다. 하나는 주된 임무인 혈당조절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매우 낮은 강도의 증식작용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IGF-1(인슐린 유사 성장인자 1, insulin-like growth factor type 1)이다.

 IGF-1은 기능과 구조 면에서 인슐린과 매우 높은 상동성을 갖는 호르몬으로 주로 세포분화·증식에 관여한다. 이 호르몬 역시 인슐린수용체와 IGF-1수용체에 모두 결합하는데 인슐린과 달리 증식이 주 임무다. 인슐린이 인슐린수용체에 결합하면 주로 혈당강하 효과를 갖으며 아주 약한 세포증식 효과를 보이게 된다.

 반면 IGF-1수용체는 이와는 반대되는 역할을 수행한다. 다행스럽게도 사람 인슐린은 인슐린수용체 대 IGF-1수용체에 대한 친화력이 500 대 1 정도로 대부분 인슐린수용체에 결합하여 작용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인슐린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해 장시간 높은 농도를 유지할 경우 IGF-1수용체와의 결합이 증가해 증식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증식으로 인한 문제의 잠재적 가능성이 제2형당뇨병에서 두드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2형당뇨병은 인슐린저항성 - 고인슐린혈증 - 베타세포 기능장애 - 췌장 기능부전 - 인슐린 결핍의 단계를 거쳐 이환된다. 이 과정에서 증식의 문제가 발생하고 이것이 비정상적 세포증식의 결과인 암 또는 망막증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가설이다.

 ▲왜 인슐린유사체인가?

 NPH와 같은 사람 인슐린의 경우 체내에서 분비되는 인슐린과 동일하기 때문에 인슐린수용체나 IGF-1수용체와의 친화성에 변화가 없다. 반면, 인슐린유사체는 작용시간을 늘리기 위해 인슐린의 단백질 구조를 변형시킨 약물이다. 미국내분비학회(The Endocrine Society)는 이번 논란과 관련 "인슐린 아미노산 서열의 유전자재조합 과정에서 호르몬 구조 및 수용체 결합력이 바뀌어 잠재적으로 인슐린의 증식활동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휴먼인슐린과 인슐린유사체의 수용체 결합력 차이는 2000년 발표된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지속형 기저인슐린(인슐린유사체)을 대표하는 인슐린글라진과 인슐린디터머의 수용체 친화성 차이도 엿볼 수 있다.

 휴먼인슐린의 IGF-1수용체 친화성을 100으로 봤을 때 인슐린글라진은 641±51, 인슐린디터머는 16±1로 차이를 나타낸다. 증식활동의 잠재력을 나타내는 Mitogenic potency 역시 인슐린글라진이 상대적으로 높다.

 반면, 동전의 양면이 있듯이 인슐린수용체와의 친화성은 정 반대의 양상이다.

 휴먼인슐린 보다는 모두 낮지만 인슐린글라진(86±3)이 인슐린디터머(46±5)와 비교해 높다. 혈당조절의 잠재력을 대변하는 Metabolic potency도 인슐린글라진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인다(Diabetes 2000;49:999-1005).

 연구결과는 인슐린유사체의 수용체 친화력이 휴먼인슐린과 다르고, 인슐린유사체 사이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논란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인슐린이 특정한 경우에 증식의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보고들이 이번 코호트 연구결과에 편승해 전반적인 모든 암발생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쪽으로 확대 해석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슐린과 암위험의 인과관계를 규명해 주는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현재로서는 없다. 이번에 발표된 4개의 코호트 분석결과를 비롯해 여타 관련 연구들이 말하는 바를 객관적으로 들여다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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