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연장 뿐 아니라 삶의 질 까지 충족 시켜야


 # 위암 2기 진단을 받고 위부분절제술을 받은 이 모씨(여·51세). 수술은 성공적으로 이뤄졌지만 좀처럼 식사를 하지 못했다. 이씨는 "속이 막혀서 한 숟가락 넣기도 힘들다. 위가 없는데 밥을 어떻게 먹냐"며 식사를 거부했다. 조영제 검사와 위내시경으로도 수술 부위의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이씨는 여전히 속이 꽉 막힌 것 같다며 자주 구토를 했고 극도로 예민해져 가족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정신과 상담을 받은 결과 이씨는 자신에게 암이 발병한 것에 대한 충격과 무력감을 심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들에게 희생하며 열심히 산 자신에게 암이 생겼다는 절망감과 위가 반밖에 없기 때문에 음식을 소화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심리적인 불안이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구토증까지 유발했던 것. 이씨는 정신과 상담 및 기분을 안정시키고 식욕을 증진시키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 구토 없이 식사를 하게 됐고 항암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을 정도로 심신의 안정을 되찾았다.
"당연한 고통" 아닌 치료 대상
 암 환자들은 극심한 신체적 통증 뿐 아니라 불면증, 불안감, 우울감 등과 같은 심리·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일반적으로 암환자들은 투병과정에서 충격과 현실부정, 분노, 공포와 불안, 자책감, 고독감 등 다양한 감정반응을 겪게 된다.
 이런 감정반응들은 일시적으로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으나 상당수의 환자들은 투병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정서적 고통을 겪게 되는데 이를 조기에 선별해 관리하지 않을 경우 암 투병과정과 질병 예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이는 암 환자가 겪어야 할 "당연한 고통"이라고 여겨졌지만 삶의 질이 중요시되고 암환자들의 생존율이 높아지면서 보이지 않는 마음의 고통에 대한 요구도도 높아졌다.
 정신종양학에서는 환자들의 정신적인 고통이 당연한 것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의 하나로 보고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암의 예방, 진단, 치료, 재활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환자의 정신·심리적인 면 또한 정신과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의대 함봉진 교수(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는 "예전에는 삶의 양, 수명연장이 치료의 목표였다면 이제는 삶의 질이 중요한 목표가 됐다"며 "암 치료 성적이 갈수록 좋아지고 표준화되면서 삶의 양과 질을 모두 충족하는 포괄적인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는 환자가 정신적으로 겪는 모든 고통을 "디스트레스(Distress)"라고 정의했다. 더불어 미국암협회(ACS, American Cancer Society)는 암환자에게 디스트레스를 "바이탈 사인(vital sign)"의 하나로 포함시킬 것을 권장하고 있다.
 체온, 맥박, 호흡, 혈압의 4대 활력징후에 통증이 제5의 활력징후로 통합된데 이어 디스트레스를 제6의 활력징후에 포함시킨 것으로 마음으로 번진 보이지 않는 암도 바이탈 사인으로 간주해야 할 만큼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한 것이다.
3명 중 1명은 증상 심각
 미국 존슨홉킨스 암센터가 정기적 선별과정을 통해 4496명의 암환자들을 평가한 결과 35.1%의 환자들이 임상적으로 유의한 수준의 디스트레스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Psychooncology 2001;10). 캐나다에서는 2786명의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37.8%가 상당한 디스트레스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Psychoneuroendocrinology 2004;29).
 또 이러한 전반적 디스트레스 외에 상당수의 환자들은 우울증, 불안장애, 적응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성장애 등 암 진단과 치료와 관련된 정신과적 공존병리를 동반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암 환자의 우울증 위험은 일반인에 비해 4배 정도 높다고 알려졌다. 함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전체 암환자의 3분의 1에서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한 심각한 수준의 디스트레스를 경험한다. 그러나 실제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이중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90%의 환자들은 정신적 고통으로 치료순응도가 떨어져 결국 의료비용의 낭비까지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좌>서울대병원 암센터 완화요법클리닉은 유방암 환자들에게 국선도를 이용한 명상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해 환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돕고 있다.
우>국립암센터에서 운영하는 불면증 극복을 위한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환자들이 이완훈련을 하고 있다.

환자 심리상태 정기적 체크…임상 지침도 마련
■ 외국의 디스트레스 관리

 ▶미국=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는 1999년 종양학 임상 진료지침의 일환으로 정신의학, 종양학, 심리학, 사회복지, 간호학을 포함하는 다학제적 전문가 패널에 의해 개발된 디스트레스 임상 관리 지침을 발표했다.

 NCCN의 가이드라인은 "디스트레스 온도계"와 문제목록이라는 선별도구를 통해 정기적 디스트레스 선별을 권장하고 디스트레스 수준에 따라 적절한 심리사회적 지원서비스로 의뢰하도록 알고리듬을 제시한다.

또 우울, 불안, 섬망 등 국제질병사인분류에 준하는 정신장애 별로 분류해 진단 및 치료적 개입의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캐나다=캐나다 암관리전략협의회는 2004년 암환자의 디스트레스를 제6의 활력징후로 포함시키며 디스트레스 관리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증, 이를 암 치료의 통합적 치료 범위로 포함할 것을 권고했다.

캐나다심리사회종양학회에서 심리사회종양학 임상지침을 개발 중이며 이는 정신종양학 서비스 전반에 대한 표준 및 직업 규범도 포함하고 있다.

심리사회종양 프로그램으로 인정되려면 사회사업, 심리학, 정신의학 중 두 직역 이상의 전문인력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종양의료를 제공하는 시설 내 프로그램이 운영돼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호주=호주 정부 보건부의 지원 하에 국립 유방암센터와 국가 암 관리단이 협력해 성인 암 환자를 위한 심리사회적 서비스 임상지침을 개발, 암환자를 위한 심리사회적 지지 서비스의 표준지침으로 활용하고 있다(Clinical Practice Guideline for the Psychosocial Care of Adult with Cancer, 2002).

이후 다양한 암종의 환자군으로 확대 적용할 수 있도록 개편됐으며 2003년 8월 NHMRC로부터 승인을 얻어 호주의 암센터 및 종양전문가, 정신과 전문의 등에 보급됐다.

 ▶영국=영국 보건부 산하 NICE(National Institute for Clinical Excellence)에서 암환자를 위한 지지·완화 요법 지침을 개발했다(Improving Supportive and Palliative Care for Adults with Cancer, 2004). 이 지침에서는 암환자와 가족이 암 진단과 치료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서비스 모델을 정의하고 심리적, 사회적, 영적, 재활 지지서비스 등 세부 영역으로 나누어 권고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 심리적 지지 서비스 영역에서는 의료진의 구성 혹은 자격에 따라 제공될 수 있는 서비스 내용을 제시했다.

■ 디스트레스의 영향

암환자의 방치된 디스트레스는 암 투병과정과 질병예후에 직·간접적인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 암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 저하
- 통증역치의 저하
- 과도한 장해·낮은 수행 수준
- 자살 및 자살사고 위험 증가
- 치료 거부 행위, 존엄사, 안락사 요청 위험 증가
- 의료진 및 가족의 관리 부담 증가
- 입원 기간의 장기화
- 실제 필요 이상의 의료서비스 이용으로 인한 의료 비용 증가
- 암 재발 및 생존율에의 직·간접적 영향
- 대체보완의학적 치료에 많은 비용 소비

 출처·국립암센터 암환자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디스트레스 관리 권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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