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CI 따고보자" 이제 그만!"
외적 인증 매달리지 말고 진료 질 되돌아 봐야



 요즘 병원들은 JCI 공부에 여념이 없다. 외국인 환자 유치에 국제적 병원인증이 필수요인 중 하나로 꼽히면서 욕심을 내는 것이다. 정부 차원으로는 의료기관 평가를 인증제로 전환하고 국제인증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하면서, 병원인증에 대한 관심이 더욱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과연 국제적 병원인증은 꼭 필요한 것인가.


 너도나도 인증 추진 줄대기 분주
 미국 현실 근거 우리 실정과 달라
 비용 부담 커 엄두 못내는 병원도 많아



 국제병원인증은 환자의 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에 대한 국제적인 인증이다.

 보통 인증평가기관인 ISQua에서 인정한 것을 말하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의 JCI를 비롯, 캐나다 AC, 호주 QIC, 영국 CHKS-HAQU, 말레이시아 MSQH, 태국 THCHA 등 13개가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JCI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120여개 병원이 인증을 받았으며, 의료관광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경우 14개 병원이 획득했다.

국내에서는 세브란스병원이 유일하게 국제인증을 받은 뒤 외국인 보험사 등으로부터 잇따른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타 병원들도 국제인증을 위한 물밑작업이 한창이다.

 연세의료원장을 역임한 대한병원협회 지훈상 회장은 "JCI 인증 이후 AIG 등 대형보험사 두 곳과 계약을 체결했으며, 몇 군데와 더 계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며 "외국인 환자 유치에 있어 국제인증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참고사항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성모병원은 설계부터 국제인증을 고려해 지난해 우선적으로 건물에 대한 JCI 인증을 1차로 받았으며, 내년에 인증을 받을 계획이다. 고려대의료원은 1차 심사를 끝내고 오는 8월 쯤 2차 심사에 돌입, 연내 JCI 인증을 획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세브란스병원도 얼마 전 재인증을 위한 모의평가를 끝냈다.

 이밖에 건국대병원, 해운대백병원, 부산대양산병원, 화순전남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등이 국제인증 획득을 위한 TFT를 꾸려 운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한병원협회와 JCI와의 MOU 체결로 한층 더 인증 편의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MOU에 따라 병협은 병원 인증 관련 시설기준과 행동지침을 담은 매뉴얼인 JCI Accreditation Standards for Hospitals 개정3판을 우리말로 공식 번역, 출판해 JCI 인증을 준비하거나 계획중인 병원에 공급하게 된다.

 향후 한국 실정에 맞는 평가 가이드라인도 만들 예정이다. 지 회장은 "인증을 준비 중이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회원 병원의 정보 습득을 용이하게 하고, 국내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교육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각 병원이 개별적인 차원에서 움직이면 정보 습득부터 시작해 3~5년 소요되는 것을 1~2년 내 가능하도록 해보겠다"고 피력했다.

 또한 비용면에서도 효율성을 꾀한다는 계획이다. 수십억원 이상이 소요된다는 소문과 달리 실제로는 비용이 많이 소요되지 않으며, 이마저도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병협 이왕준 정책이사는 "평가위원 1명이 방한하면 티켓 비용과 함께 1하루 3000달러가 소요되며, 신청비와 실비를 합친다면 1억원 이내의 비용이 소요된다"며 "노하우 공유를 통해 평가를 조속히 마치게 하고, 인근 병원이 동시에 신청할 경우 단체할인 혜택을 모색해 보겠다"고 부연했다.

 이밖에 인제대는 지난해 12월 "국제병원인증지원센터"를 설립해 의료서비스 국제 인증에 관심 있는 의료기관들을 대상으로 실무 교육훈련을 실시해 인기를 끌었으며, 메디파트너는 최근 JCI 인증을 받은 싱가포르병원 체험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해 관심을 모았다.

대구와 부산 등 지자체에서도 국제 병원인증을 받을 경우 지원을 해준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는 등 전국 각지에서 국제인증을 추진하는 병원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물론, JCI 인증 과열에 따른 우려섞인 목소리도 많다. A병원 QI실장은 "JCI 기준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며 "국내 의료기관 평가 때문에 허덕이고 있는 현실에서 JCI까지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2007년 세브란스병원 노조 파업 배경 중 하나로 무리한 JCI 인증 추진과정이 꼽혔으며, 보건의료노조는 직원들의 업무 과부하를 초래하는 JCI 인증 반대를 주장하기도 했다.

 병협이 비용을 줄이겠다고 발표했지만, 기준에 맞춘 시설투자 등의 측면에서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B병원장은 "간신히 적자를 메우고 있는 상황이라 외국인 환자 유치에 나서고 싶지만, JCI 인증 비용 여력이 없어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외국인 환자 유치도 돈 잘 버는 병원들만 하는 것이 아니냐"고 호소했다. 정부 차원으로 의료기관 평가를 국제적인 인증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당장 수억원의 외화를 쏟을 필요가 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전재희 장관은 "JCI 인증 병원이 10개 정도가 추가될 것으로 전망돼 외국인 환자 유치에 성과가 있을 것"으로 전제하면서도, "의료기관 평가제도를 국가인증제도로 전환하고, 국제인증을 받아 신뢰도를 높이려고 한다"고 발표했다.

 복지부 김강립 보건산업정책국장은 "JCI도 완벽한 평가 잣대는 아니며, 미국의 기준에 불과하다"라며 "당장 모든 병원들이 JCI 인증에 매달리기보다는 국내 의료기관평가의 국제인증 발전 단계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병원은 마음이 급하고, 시간이 없다는 입장이다. C병원장은 "당장 외국인 환자를 유치해야 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더딘 추진과정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며 "평가기간에만 반짝 진행되는 의료기관 평가가 국제인증까지 전환되려면 외국인 환자 유치의 성패가 판가름 나있을 것"이라는 불만을 제기했다.

 자칫 의료기관 평가에 JCI 인증까지 준비해야 하는 병원들에게 한가지 다행인 것은, 지난 20일 국무총리실에서 민간전문가 분석에 따른 의료기관평가 개선방안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6월 중으로 각종 병원평가를 일원화하는 통합평가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2010년 도입 목표로 의무적 평가방식을 인증제로 전환 추진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통해 병원인증 결정에 도움을 주게 됐다.

 특히 JCI 인증 병원에 대해서는 별도의 국내 평가를 면제해 주는 방법이 적극 검토되면서 JCI 인증을 준비하는 병원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총리실 관계자는 "공신력이 인정되고 국가가 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인증을 받은 의료서비스 영역의 경우, 해당분야 평가를 대체인정 또는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해 이중적인 평가를 받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병협에서는 길병원 뇌과학연구소 등 단일 기관에서도 JCI 인증이 가능하기 때문에 최대 50개 병원이 JCI 인증을 받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분명, JCI 인증은 외국인 환자 유치에 도움은 되지만, 여력이 안되는 병원까지 무리하게 추진할 필요는 없다. 국무총리실까지 나서서 의료기관 평가개선안을 공표한 만큼, 100% 신뢰 근거는 아닌 JCI 인증에만 목매달 필요는 없는 것이다.

 국제 병원인증의 본질이 병원과 진료의 질 관리 측면임을 감안할 때, 외국인 환자가 유치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접근하기 보다는 우리 병원의 외국인 환자 진료의 질적인 측면을 고려해 볼 때다.

또한 정부는 의료기관평가를 ISQua에서 인정하는 국가인증제로 전환하기 위한 움직임을 조속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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