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환자를 편하게 이끄는 대화, 좋은 의사 첫번째 덕목

메디컬드라마 "뉴하트" 9부 중에서…
(폭력범이 가슴에 칼을 맞은 채 응급실에 실려왔다.)
환자: 아프다구! 죽겠단 말야! 야 거기 너! 안들려? 아프다고! 안 아프게 해줘야 할 거 아냐!
내가 병원 나가면 그냥 둘 줄 알아? 밤길 조심해라.
의사: (환자 귀에 가까이 대고) 나한테 걸려줘 제발. 그땐 심장에 칼 꽂히는 걸로 안 끝나.
조용히 메스 한 방에 심장을 두 덩어리로 갈라놓을 테니까.
환자: (얼굴이 싹 굳는다. 아파도 참는 표정이다.)


선진국에선 의료 대화술 가르친지 오래
치전원생 94% "커뮤니케이션 교육 필요"
모의환자 실습으로 현장 대응능력 키워야



 이처럼 폭력적인 환자를 만날 땐 어떻게 해야할까? 커뮤니케이션을 배운 적도, 공부한 적도 없다며 메디컬드라마에서나 봄직한 상황을 실제 맞닥뜨리면 당황만 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뉴하트의 주인공 의사처럼 침착하면서도 멋지게 KO 펀치를 날릴 것인가.

 효과적인 환자와의 대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은 좋은 의사가 되는데 있어 필수적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교육이 중요한 것으로 꼽히고 있다.

 습득된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의사가 된 이후에도 유지될 수 있다는 증거들이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면서 커뮤니케이션 교육은 이제 의학교육의 가장 핵심적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임인석 회장은 대부분의 선진국 의대에서는 이미 정규 교육과정에서 의료대화술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전공의는 물론 전문의와 개원의를 대상으로 하는 평생의학교육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찌감치 미국에서는 1978년 35%의 의대들이 정규 교육과정에 커뮤니케이션 기술 과목을 도입했고, 1993년에는 그 비율이 65%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커뮤니케이션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못하면, 의사 면허 획득 자체가 불가능하다.
 커뮤니케이션 교육으로 유명한 캐나다 달하우지의대를 살펴보면 입학하자마자 환자를 접하게 되는 조기임상노출과 문제바탕 발견 학습을 특징으로 하는 COPS(Case oriented Problem Stimulated)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소규모 토론식 수업으로 진행되는 이 과정은 임상실습을 하기 전 2년 동안 지식의 습득 이외에 좋은 의사이자 전문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과 자질을 배우는 환자-의사 프로그램을 배우게 된다.

 선진국에서의 커뮤니케이션 교육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면담하기와 더불어 구체적이고 특수한 상황에서의 의사소통기술을 배운다. 즉 나쁜 소식 전달하기, 화난 환자 다루기, 공격적인 환자 다루기, 아이 및 노인과의 의사소통 등이 상황별로 다루어진다.

 특히 나를 정확히 알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남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가 되므로 자기성찰 및 평가, 스트레스 대처하기, 실패 상황에 대처하기 등과 같이 자아를 발견하고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도 교육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의사-환자 간의 면담 기술에만 국한하지 않고, 자기표현 및 통제 능력의 영역까지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모의환자를 통한 실습의 경우 환자의 사례로 꾸며져 있다 하더라도 1학년 초기 학생들은 질병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수업의 목표는 일반적인 대인관계 형성에 초점을 둔다.

 예를 들어 두통, 복통, 기침, 의사나 병원에 불만이 가득한 환자 등과 같은 흔한 문제나 상황을 재현해 모의환자와 면담을 하게 되는데, 상대방을 이해하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으며 라포를 형성하는 능력을 키우게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06년 처음으로 의료커뮤니케이션 교육과정을 도입해 이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에게 커뮤니케이션 기술 향상에 도움이 많이 된다는 판단 하에 교육과정이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경희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교정과 김수정·박영국 교수가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의료커뮤니케이션 수업에 대한 치전원생들의 태도 조사 연구"에 따르면, 대학원생 154명 중 94%가 커뮤니케이션 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환자에 대한 태도가 향상되어 환자와의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됨은 물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부터 의사국시에 환자면담 실기시험 등이 도입되면서 각 의대에서는 모의 환자를 통한 수업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환자를 연기하는 배우가 열이 나고, 두통을 호소하는 등 특정 질환을 연기하면 학생은 이야기를 듣고 증상을 맞춰나간다.

 진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쉬운 말로 편안하게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환자 연기를 한 배우가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임인석 회장은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통해 환자와 원만한 관계 형성은 물론, 정확한 진단, 치료 결과의 질적 향상을 꾀할 수 있다"며 "진단과 치료만이 전부가 아니라, 민감한 질문을 우회적으로 답하는 능력 등 일선 개원 현장에서도 부딪히기 쉬운 문제를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배울 수 있을까. 중앙의대의 경우 메디컬드라마를 통해 설정된 상황에 따른 토론의 자리를 마련한다.

 아이디어를 고안해낸 중앙대용산병원 내과 안지현 교수는 "드라마처럼 다소 극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이 현실에 부딪히는 순간, 당황해 불쑥 생각나는 대로 말해 버리기 쉽다"며 "현실적으로 체계적인 커뮤니케이션 교육이 부족하더라도 드라마를 통하면 보통의 관심사를 한결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임상에 있어 환자 진료하는 매 순간이 곧 커뮤니케이션 실습의 장이라며 학생들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암환자의 고등학생 딸에게 가급적 상처를 덜주고 말하는 방법은?", "인터넷을 통해 의학논문을 뒤져온 다음 왜 이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냐며 항의하는 환자는?", "무조건 의사 선생님 말이라면 "OK"라며 지나치게 의존적인 환자는?", "의사를 이성으로 생각하고 좋아한다 말하는 경우는?" 등 드라마를 포함한 다양한 상황 설정을 통해 고민을 하게 하고, 최선의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의대의 경우 "타임 인·아웃" 제도가 있는데, 모의환자가 만족스럽지 못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가진 학생에게 가차없이 "타임 아웃"을 선언하고 기회는 "타임 인"에 도달할 때까지 다음 학생에 넘긴다.

 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를 통해서도 모의환자나 외국사례에 따른 다양한 시행착오를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해마다 관심도가 높아지고 회원수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많은 의사들과 의대생들은 여러가지 다양한 상황에 대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메디컬드라마나 실제 환자들과 부딪칠 때 자신이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고민을 선행한다면 환자와의 관계는 더욱 좋아질 것이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에는 최선의 선택을 할 뿐,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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