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 뇌사 장기기증자 발굴 전담기관 필요

서울대병원 독립장기구득기관 시범사업 시작

 대한이식학회는 지난달 21일 열린 동계심포지엄에서 "이식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복지부 손영래 공공의료과장과 KONOS 이성미 장기수급조정팀장은 장기이식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뇌사자 장기기증이 활발히 이뤄져야 하고 이에 따른 제도개선이 절실하다는데 학회와 공감대를 가졌다.

관리는 국가기관이

IOPO 도입 후 뇌사자 장기기증 체계

 뇌사자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장기 기증자 가족을 배려하고 효율적으로 뇌사자를 관리하는 독립적인 장기구득기관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병원내 부설 장기구득기관(HOPO, Hospital Organ Procurement Organization)은 재정이나 운영이 해당 병원에서 독립돼있지 않고 뇌사 판정 후 신장 1개에 대한 우선권을 갖고 있다. 인센티브제도가 곧 HOPO인 셈이다.

 이식학회 측은 HOPO는 "장기의 공정한 분배"라는 원칙에 어긋나며 지역 내 HOPO 관할 구역이 지정돼있지 않아 각 장기이식 의료기관끼리 과다한 경쟁을 해 기증자 발굴에 중복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며 인센티브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한편 복지부는 지난달부터 서울대병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독립장기구득기관(IOPO, Independent Organ Procurement Organization) 시범사업 결과를 지켜보고 제도 개선을 고려해본다는 입장이다.

 손영래 과장은 "장기기증의 급격한 감소가 우려되는 등 IOPO에 대한 정부의 확신이 부재하다"며 "현재로서는 HOPO가 현재 뇌사자 장기기증을 증가시킨 기전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HOPO를 유지하되 시범사업 결과를 보면서 법령개정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기관 형태로 운영해야

 의료기관 형태가 아닌 순수민간기관에서 IOPO를 운영할 경우 혼선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기증동의 획득에서 사후 관리 뿐 아니라 뇌사자의 신체 상태를 이식에 적절한 상태로 관리하려면 IOPO가 의료기관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것.

 현재 장기이식등록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200여곳이 넘는 기관 중 장기기증 희망자 등록을 넘어선 업무를 하는 일부 단체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의대 하종원 교수는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이하 사장기)가 운영하는 무료신장투석실도 문제가 될 수 있으나 환자들을 위한 봉사라는 초법적인 상황을 인정받아 법적인 제제를 받지 않고 있다. 또 이 단체에서 지정장기기증을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연세의대 김순일 교수도 "사장기에서 이뤄지는 지정기증이 적지 않은데 매칭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의학적인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이 더 많이 반영됐다고 보여진다"며 "이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했더라도 현재로서는 파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KONOS에서도 이같은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법의 테두리 내에서는 제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KONOS 관계자는 "의심되는 사례가 있어 조사를 해보면 소년소녀 가장이나 저소득층, 또는 단체에 후원을 많이 한 경우"라며 "예전에는 재산증명서를 요구하기도 했으나 환자들의 반발이 거세 이조차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의학적 기준에 따른 장기이식의 우선 순위 결정은 생명이 위협받는 경우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두 가지 경우에 따라 다르다. 만성신부전 환자의 경우 투석이란 대체치료가 있고 췌장이식의 경우 인슐린 치료가 있으므로 중증도보다는 대기시간이 우선된다. 그러나 간, 폐, 심장 등 대체치료가 없고 촌각을 다투는 경우는 중증도가 우선이다.



"뇌사자 장기이식 늘면 독립 관리기관 필요"

한덕종 대한이식학회 이사장

"잠재 뇌사자" 사회적 동의가 먼저
국민 참여 사회운동으로 승화시켜야


 국내 통계는 없지만 외국 사례를 보면 전체 사망자의 1~3%가 기증이 가능한 뇌사 상태를 거쳐 사망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연간 30만 명이 사망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약 3000명에서 9000명까지 이식 가능 뇌사 상태를 거치는 셈으로 중환자실에서 사망하는 환자의 9.3%가 뇌사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덕종 이사장(서울아산병원·본지 편집자문위원)은 이들 뇌사자들을 장기이식의 범위로 끌어들여 장기이식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뇌사자 장기이식이 2000건 이상이 되면 적절한 수급이 이뤄져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들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고 최소 500건 이상의 뇌사자 장기이식을 관리하려면 독립장기구득기관(IOPO)은 필연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한 이사장은 "장기이식의 파이를 키우는 첫 단추는 뇌사자 장기기증 활성화"라며 "반드시 비영리 공공의료기관 형태의 독립장기구득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적극적인 치료를 제공하던 환자가 뇌사 상태에 빠졌을 경우 의료진이 입장을 바꿔 장기기증을 권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잠재뇌사자 신고를 의무화하면 의료진의 부담을 덜 수 있고 뇌사자 발생 시 IOPO에서 장기기증 절차를 담당하게 된다.

뇌사 환자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는 곧 무의미한 치료다. 이런 환자들을 장기기증으로 유도하면 의료비용의 절감효과까지 볼 수 있다. 의료진이 잠재뇌사자 신고를 하지 못해도 그에 따른 제제는 없다.

연방법으로 잠재뇌사자 신고를 의무화한 미국에서도 보험의 불이익을 줄 뿐 의사 당사자에 대한 제제는 가하지 않는다.
 한 이사장은 최근 세브란스병원의 존엄사 판결과 함께 식물인간, 뇌사, 안락사, 존엄사의 개념이 혼동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따라서 초중고 교과과정에 장기기증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키는 방안과 학회 차원의 교재를 만들어 의료인들을 교육시키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한 이사장은 "존엄사는 뇌사자보다 광범위한 개념으로 둘은 다른 카테고리"라며 "존엄사를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잠재뇌사자의 동의가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ONOS의 역할 확대도 주문했다. 2000년 출범해 1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제대로된 데이터를 내놓지 않은 점은 국가기관으로서 아쉽다는 지적이다.

 대한이식학회는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한 더 큰 발걸음을 떼기 위해 협의체를 구성하고 재단도 설립할 방침이다.

 한 이사장은 "학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정부, 종교계와 손잡고 장기기증을 사회운동으로 자리잡게 할 계획"이라며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2월 16일을 "장기기증의 날"로 정하고 내년부터 공식적인 활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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