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연세의료원 항소 기각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4개 요건 제시

 법원이 항소심에서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는 환자측의 손을 들어줬다.

 또 연명치료 중단의 법리적 조건을 제시해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조건을 보다 구체화, 존엄사에 대한 기준이 일정부분 마련됐다는 평가다.

 서울고등법원 민사 9부(이인복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김 모씨의 자녀들이 연세의료원을 상대로 낸 치료중단 가처분 신청 항소심에서 병원 측의 항소를 기각하고 "병원은 피고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자기 결정권에 의해 환자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인정되나 무분별한 생명의 단축이 허용될 수는 없다며 연명치료 중단의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연명 치료 중단의 기준이나 절차를 규정한 별도의 입법이 없는 이상 일정한 요건을 갖춰야한다며 다음의 네 가지의 요건을 제시했다.

 첫째, 환자의 상태가 회생가능성이 없는 비가역적인 사망과정에 진입해야 한다는 것. 단 그 판단은 당담의사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 없으며 병원윤리위원회와 같은 기구의 심의 등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둘째, 환자의 치료 중단 요구가 일시적인 판단이 아닌 진지하고 합리적인 의사표현이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연명치료 중단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근거를 두고 있다"며 "향후 입법 과정에서 "사전의료지시서"와 같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환자의 요건을 인정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셋째, 중단을 구하는 치료행위의 내용에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치료 등이 포함돼서는 안되며 환자의 사망 과정 연장으로 현 상태의 유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연명치료의 중단은 의사에 의해 시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례적으로 판결문에 포함되지 않은 "당부의 말씀"을 낭독하며 이번 판결이 사회적 주목을 받는 만큼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이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이 확대해석돼 환자와 가족에 대한 치료중단의 강요와 압박으로 작용되서는 안된다"며 "환자와 가족, 의료진의 노력이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되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의료원은 이번 판결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이 마련됐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러나 곧바로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비약상고를 신청한 만큼 병원윤리위원회 논의를 거쳐 이번 주 안으로 상고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한편, 의협은 회생불능 환자에 대한 존엄사 허용은 국가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경실련은 이번 판결에 대해 지난해 11월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내 첫 판결 이후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판결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말기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을 위한 법제화 방안의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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