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새는 곳부터 막아라"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병원 경영에도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병원컨설팅그룹 엠케이파트너스 정민영 대표는 "최근 클라이언트 10개 병·의원 중 7~8개는 대부분 1∼2년 전 대비 환자수 및 매출액이 약 50∼75% 감소했다"며, "리스, 대출이자 및 대출금 상환의 압박에 환자수 감소의 악순환까지 되풀이되고 있어 2곳 이상의 병·의원이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실정을 토로했다.
 이런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극복을 위한 돌파구는 없을까. 삼성경제연구소는 "2009년 글로벌 기업경영 8대 이슈" 보고서를 통해 "한국 기업은 2009년을 "바닥 다지기의 원년"으로 삼아 우선 불확실성에 대한 위기관리와 함께 미래도약을 위한 체력비축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위기의식을 기반으로 경영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한 "비용 절감"의 측면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병원들 앞다퉈 에너지 절약 생활화

임금피크제로 두마리 토끼 잡아

과도한 절감 따른 환자 피해 없어야



 STX그룹은 올해 각종 경상 경비를 10~20% 이상 줄이는 한편, 지난해 비용 감축과 유동성 강화를 위해 각 계열사별로 수립한 긴급상황 대책을 실천해 나갈 계획이다.

 부상무 이상 전 임원은 솔선수범의 의미로 올해 급여 10%를 자진 삭감키로 했으며, 대표이사 이상 사장단은 급여의 20%를 반납하기로 했다.

 병원계도 기업과 유사한 움직임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제일병원은 올해 초 무한절약 슬로건을 기치로 삼아 "비용절감 캠페인" 선포식을 가졌다. 캠페인을 통해 ▲불필요한 의료 및 일반소모품 사용 자제하기 ▲전기·수도·가스 아껴쓰기 등 절약 10계명을 선정하고, 실생활에서 직원 모두가 손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했다.

 목정은 원장은 "캠페인은 일회성, 구호성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진행될 것"이라며 "절약된 비용은 직원들과 고객들에게 피드백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도 사무용품, 비품과 함께 전기, 수도, 통신비 등 에너지 절감에 나서기로 했으며, 행사, 회식비 등의 지출을 최대한 간소화하기로 했다. 특히, 성상철 원장을 비롯한 보직자 및 진료과장들이 성과급 일부를 반납했으며, 2급 이상 직원들도 임금인상분을 반납했다.

 수도권 환자 유출 등으로 더욱 어려움에 처한 지방에서도 자구책 마련에 한창이다.

 충청남도는 최근 산하 의료기관인 공주·천안·홍성·서산의료원에 대한 "2009년도 경영혁신계획안"을 발표, 진료과목 특화와 인원 감축, 임금 인상분 반납 등을 통해 수입은 늘리고 비용을 절감시켜 경영을 호전 시키겠다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계명대 동산병원은 지난해 7월부터 차량 2부제를 실시하고 있다. 동산병원 관계자는 "홀짝제의 시행에 전직원이 적극 협조해 병원을 찾는 환자에게는 편의를 제공하고, 에너지 절약에도 기여하는 이중효과를 창출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절약운동의 지속적 추진을 위한 기념일 제정, 절약교육, 절약캠페인과 함께 절약성과 우수부서 포상 등도 진행하고, 물자절약 점검의 날을 정해 각 부서 절약 이행을 점검하고 있다.

 가천의대 길병원은 올해 병원발전의 기치 중 하나로 "물자절약과 원가절감을 통한 친환경 병원 구현"을 내걸고, 체온을 낮춰 에너지를 절약할 목적으로 양복상의를 입지 않고 넥타이도 매지 않는 캐쥬얼한 정장 스타일 "쿨비즈(Cool Biz) 패션"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선보인다.

또한 점심시간에 불필요한 전원 소등하기, 3개층 이하는 엘리베이터를 탑승하지 않고 걷기, 실내온도 26~28℃ 유지하기,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기 등 가벼운 실천사항을 직원들에 적극 권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에 전산망 관리를 위해서만 운영하던 전산실을 통합 IT 시스템 구축을 통한 정보운영센터로 확장 개소해 저전력 시스템 장착, 발열량 감소, 네트워크 시스템 절전화 등 에너지 절감까지 기대하고 나섰다.

 이밖에 제일병원, 이대목동병원 등은 잔반의 정도가 비용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원장부터 손수 나서 "잔반 줄이기" 운동을 실시하고 있으며, 명지병원은 부서별 다양한 절약 아이디어 공모와 직원대상으로 절약 후기공모 등의 이벤트를 통해 비용절감 생활화를 독려해 나갈 계획이다.

 병원에 유독 높게 형성돼 있는 인건비 절감에 대한 연구도 뒤따르고 있다. 대한병원협회는 최근 전국 76개 병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노동법률연구원에 의뢰해 진행한 "병원근로자 고령화에 따른 경영 활성화 전략" 연구 결과 발표를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주장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병원 내 ▲경비 ▲청소 및 세탁 ▲조리 및 배식 ▲운전직 등은 상당히 고령화 돼 있으며, 이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수준이 다른 산업계 유사직종에 비해 훨씬 더 높았다.

 병협은 "타 산업에 비해 다양한 직종이 근무하고 있는 병원은 근로자의 근속연수가 길고 연공서열에 의한 임금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고임금이 병원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병협은 근로자들에게 일부 정년을 연장해 주는 대신 일정 연령부터 임금을 삭감해 나가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도입을 권유하는 동시, 정부가 고령근로자 고용 촉진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고령자다수고용장려금제도, 정년연장장려금제도, 정년퇴직자 계속고용장려금제도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용절감을 실천하지 않으면 결국 환자 수술 진행조차 우려될 수 있다. 헬스케어 산업 자문단체인 노블리스 센터가 지난해 말 미국의 36개 병원을 조사한 결과,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불필요한 의료기기 지출 삭감을 단행한 병원도 많았다. 당장 수익이 날 수 있음에도 비급여 수술을 미룰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것은 과도한 비용 절감으로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하는 사례는 없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방의 한 중소병원은 의료기관의 난방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난방비를 아낀다는 이유만으로 입원실 온도까지 낮춰 환자들이 추위에 떨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다른 병원 관계자는 "입원환자들은 면역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황이므로 적정온도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 치료 효과를 반감시킬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며 적정 지침 마련을 주장했다.

 또한 과도한 비용 절감은 역효과를 양산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LG경제연구원 최병현 연구위원은 "단기 효율성에 치중하면서 장기적인 성장 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며 "과도한 비용 절감은 생산성이 저하될 수 있고,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할 경우에는 핵심인력이 유출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껴야 잘 산다"란 말은 더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지금 우리 병원에서 불필요하게 낭비되거나, 지출하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부터 살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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