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4역…그들이 느끼는 벽은 높다

아내이자 며느리·어머니…노동까지 떠맡아


 2008년 현재 우리나라는 체류 외국인 "100만명" 시대를 맞았다. 결혼이민자 수는 "10만명"을 훌쩍 넘어선지 오래다.

 특히 국제결혼은 2006년 3만 9690건으로, 연간 전체결혼 건수의 "10%"를 일찍이 돌파했다. 1990년 전체의 1%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증가세다. 행정안전부와 통계청이 제시한 "100만명", "10만명", "10%"의 통계수치는 한국사회가 이미 다문화시대에 돌입했음을 엿보게 한다.


지난해 11월 5일 민주당 다문화가정특별위원회가 마련한 "다문화 가정 문제점 토론회"에 참석한 결혼 이주여성들이 식전행사로 마련된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개도국 여성 큰 폭 증가

 이같은 증가세는 외국인 여성과의 결혼 급증에서 기인한 바 크다. 2006년 외국인 여성과의 국제결혼은 3만 208건으로 반대 경우(9842건)와 비교해 절대적 우위에 있다.

2008년 행안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국제결혼 이주여성은 12만 7683명·남성은 1만 6702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은 결혼 이주여성의 출신국이 제3세계나 저개발국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 2008년 현재 결혼 이주여성의 국적별 현황은 중국조선족(38.6%)·중국한족(23.3%)·베트남(14.6%)·필리핀(5.4%)·일본(4.4%)·대만(2.6%)·몽골(1.4%)·태국(1.2%) 순이다.

2006년 기준으로 전년대비 결혼 이주여성 증감률은 중국이 30% 정도 감소한데 반해 베트남(+74%), 캄보디아(+150%) 등은 급등하는 현상을 보였다.

인권문제 바탕엔 "국가 부(富)"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국제결혼 이주여성 실태조사 및 보건·복지 지원 정책방안(2005년)" 보고서에서 최근의 국제결혼 그 배경을 설명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라 간 불균등 발전과 여성 상품화", "가난·실업이 만연한 송출국 사회와 자국인 여성 송출을 장려 또는 방관하는 정부정책 및 가부장제적 문화", "신부 부족 해결을 위해 외국에서 여성을 충원하려는 유입국 사회와 정부정책", "국제결혼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국제결혼중개업체" 등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개입해 있지만, 단순화시켜 보면 그 중심에 "자본"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제결혼 이주여성과 관련 "매매혼(賣買婚)" 또는 "문화적 우월주의", "차별의 대상" 등 뒤틀린 이해와 인권을 둘러싼 여러 사회문제가 파생된다.

"성장통" 그들에겐 너무 가혹

 우리사회는 지금 다문화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결혼 이주여성들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성장통이라 하기에는 이들이 한국생활 초기에 겪고, 감내하고, 넘어서야 할 벽들이 너무 가혹하다.

 이질적 문화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단기간에 극복해야 하며,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로 영양의 문제가 발생한다.

 때로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애 가장 중요한 신체적 변화를 젊은 나이에 자신의 의사와 관계 없이 감내해야 하며 다산(多産)의 멍에도 안고 있다.

 경제적 이유로 한국인과 결혼했으나, 같은 이유로 근로현장에 뛰어 들기도 한다. 반면, 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조건(작업환경) 속에서 적절한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은 친정과 시댁의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자"이면서, 가족 내에서는 "아내"이자 "며느리", 그리고 "어머니"라는 복합적 지위와 책임을 갖는다.

필리핀 댁 엘리씨의 사연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사회 적응초기에 감내해야 할 이 모든 것들이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건강에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필리핀 출신의 엘리씨가 그랬다. 모든 역경과 고통을 가족과 함께 감내한 뒤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유방암이라는 차디찬 아픔이었다.

 한국사회와 정부는 이들이 국민으로서 건강한 삶을 누릴 권리, 즉 건강권을 보장해야 할 책무가 있다. 더욱이 한나라의 국민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의 사전예방과 질병발생 시 적절한 대처에 필요한 건강정보가 전무한 실정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진다.



■ 엘리씨의 편지

한국 온 지 7년때 유방암 발병
항암 투병 잘 견녀내…병원비에 마음 아파

 저는 한국에 온지 13년째입니다.
 처음 왔을때 날씨, 문화, 음식, 언어가 달라서 어려움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시집 식구들과 남편과 한국생활이 마찬가지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결혼생활 8개월 후 우리 첫아이가 가졌어요. 그때 온 가족이 기뻤어요.
 한 3달 정도 입덧이 나서 몸이 많이 힘들었고 먹지도 못했어요. 친정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고향음식도 먹고 싶었지만, 그때 음식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몰라서 먹지도 못했어요.
 살도 많이 빠졌어요.
우리 아이들이 아팠을때 읍에까지 가야해요.
 처음에는 남편과 같이 소아과에 다녔어요.
 남편 농사일이 바쁠때에는 아이와 버스를 타고 소아과에 다녔어요.

 다행히 큰 병이 걸리지 않아서 정말 감사해요.
 저는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픈 곳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6년 전에 갑자기 가슴에 혹이 만져졌어요.
 그때 유방암을 발견해서 빨리 수술을 했어요.
 방사선 진료와 항암 진료를 다 받았어요.
 수술해서 항암진료할 때까지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지만,
 우리 가족 특히 아이들 위해서 용감하게 극복했어요.
 지금은 1년에 한번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병원 진료비가 우리 가정에 큰 부담을 주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은 유방암을 앓았다는 이유로 보험도 못 들고
 앞으로 병이 언제 들지 진짜 무섭고 걱정을 많이 해요.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여성들에게 여성암 검사를 지원해 주시면,
 앞으로 건강한 여성들이 가족을 지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최근 서울서 열린 "국제결혼 이주여성 생식건강증진토론회"에서 엘리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낭독한 글이다. 엘리씨는 지난 12월 셋째 아이를 무사히 출산하고 가족과 함께 건강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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