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국가 보건수준에 영향 미칠 것


부처간 선점 경쟁 현실 안맞는 제안 넘쳐
머리 맞대고 피부에 와닿는 정책 마련해야


 정부가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정착과 사회통합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인 것은 불과 2~3년 전.

 시민, 사회 및 종교단체가 다문화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먼저 시작했고 그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다문화가 시대적 조류라는 것을 인지한 후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새로운 이슈인 다문화를 선점하려는 부처들의 경합으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추상적인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초반 다문화 정책을 여성가족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면서 인권 차원으로 몰고 간 경향도 짙다.

또 정책과 현장이 다른 부분도 많으며 각 부처 간 원활한 소통이 안되고 긴밀한 네트워크가 없어 중복지원도 발생한다. 통합된 메뉴얼조차 없고 다문화 전담부서가 마련된 지자체도 거의 없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 규모가 조금씩 커지고 있지만 실제 이주여성들은 정부의 정책이 피부에 와닿지 않거나 지원 정책이 있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복지부에서도 "건강"은 찬밥

 복지부는 국제결혼 이주여성과 다문화가족의 조기정착과 안정된 생활을 위해 생애주기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입국 전 결혼준비기, 가족형성기, 자녀 양육기, 자녀교육기, 역량강화기로 이주여성들의 생애주기를 구분하고 이에 따른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주여성들의 의사소통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통·번역 요원을 파견해 서비스 접근도를 높이고 보건복지 콜센터에도 외국어 인력을 단계적으로 채용하고 보건소 통·번역서비스는 작년 10개소에서 15개소로 늘릴 방침이다.

보건소 통·번역서비스는 복지부 모자보건과의 다문화가족 지원 메인사업으로 국제결혼 이주여성 중 한국어와 모국어를 잘 구사하는 여성들을 선발해 보건소에 배치하고 처음 오는 이주여성들이 보건소 서비스를 잘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업이다.

통역요원은 각 지자체에서 선발하고 수당은 시간 당 1만원이다. 보통 하루 5시간, 한달 20일을 근무하므로 저소득층 이주여성에겐 적지않은 수입이 되는 셈이다.

 다문화가족과는 전국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관리하는 것이 메인 사업으로 작년 80개이던 센터를 올해 100개로 늘릴 계획이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민간단체나 종교단체들로 지자체의 심사를 통해 선정되며 한글교육, 방문 육아 서비스 등을 가장 중점 사업으로 펼치고 있다.

 실질적으로 복지부 중점사업이 통·번역 서비스, 한글교육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중구난방 다문화 정책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다양한 다문화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대부분 업무가 중복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또 다문화가족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참가율이 저조한 사회적응 프로그램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 노동부, 교육과학기술부, 법무부, 행정안전부, 농림수산식품부 등 6개 부처가 지원대책을 산발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복지부의 "다문화가족지원법"에 더해 문화관광체육부의 "다문화사회문화지원법" 등 각종 법률이 늘고 있는 것.

 성공회대 양기호 교수가 집계한 국내의 외국인 지원단체는 공공기관 102개, 종교단체 121개, 순수 민간단체 341개 등 총 564개로, 시·군·구당 평균 2·3개에 달하며 중복사업으로는 한글교실과 요리교실, 문화체험, 다문화가족 아동 양육사업이 대표적이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결혼이주자의 10.5%만이 사회적응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전국 1014개 사회적응 프로그램의 수강생은 전체 외국인의 1.65%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경주의 경우 각 기관과 단체들이 각자의 실적을 위해 정보공유를 하지 않은 탓에 이 지역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이 경주엑스포 관람을 5차례나 다녀오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주정책과 사회통합정책을 연계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중앙대 아동복지학과 이선미 교수는 "다문화 관련 정책들은 여러 분야에 복합적으로 해당되나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부서 간 협력체계 구축이 중요하다"며 "외국인정책위원회가 있으나 주무부서의 존재여부와 역할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주무부처인 복지부의 철저한 사후관리도 요구된다. 정부 지원 사업이 확대되면서 지자체가 센터 선정권을 악용하고 사업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준비되지 않은 기관들이 과다한 경쟁을 벌이고 사업이 남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 인정하는 데서 출발을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은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정부의 정책도 이들을 국민으로 인정하는데서 출발한다.

 건강권은 국민의 기본 권리로 헌법에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돼 있다.

 또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해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또 이주노동자나 유학생이 아닌 남은 인생을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국민이라면 나라 전체의 보건 수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실제 미국, 필리핀 등 12개 국가에서는 자국민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이주자에 대한 건강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국가에서는 인권 침해 등의 이유로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으며 우리나라도 후자에 해당된다.

 법무부 김병철 사무관은 "인권이 행복추구권의 유일한 판단 기준이 아니다"라며 "국가의 건강 수준에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에 부담을 줄 것이 우려된다면 이에 대한 확인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무차별 단속이 논란이 되면서 외국인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정작 결혼 이주여성들을 포함한 국민의 건강권 보호와 질병 예방은 시야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 취재 수첩

집안에 숟가락 몇개인지 모르나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의 건강과 보건은 어느 지점에 와있을까란 의문을 시작으로 이번 기획을 준비했다.

 정부의 국제결혼 이주여성 정책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건강권을 위한 사업은 있는지, 의사집단에게 요구하는 바는 없는지 궁금했다. 이 정도의 질문이면 보건복지가족부 전재희 장관을 만날 필요가 있었다.

 장관실에 인터뷰 취지를 설명하니 기대이상으로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질문지를 보낸 후 "질문이 너무 많다", "조금 더 기다려라" 등등 몇 차례의 조율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렇게 장관실과 다문화가족과 사이를 여러번 오가며 계획을 수정하기를 몇 차례, 11월 중순에 시작한 일이 한달이나 지났다.

 결국 장관실에서 돌아온 대답은 "인터뷰를 할 수 없다"였다. 이유인즉슨, 전재희 장관은 워낙 인터뷰를 잘 안하기 때문에 서면으로 하자는 것.

납득 할 수 없는 이유에 몇 차례 다시 문을 두드렸지만 장관실에서는 결국 질문지를 다문화가족과로 넘겼다. 장관실의 관행이나 언론편향이야 그렇다치고 가장 큰 이유는 장관실이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보건 관련 정책 전반에 대해 파악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문화가족과에서 돌아온 대답도 당황스럽다. 해당 사업의 담당 부서가 아니면 답변이 곤란하다며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 7가지 질문 중 한 두가지 뿐이라는 것.

 이런 이유로 장관실이 지시한 본지와의 인터뷰 관련 업무를 다시 장관실로 넘겼다는 그간의 과정도 덧붙인다.

 다문화가족 정책이 복지부 내에서도 각기 다른 부서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7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면 적어도 7개 부서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장관실과 다문화가족과가 핑퐁게임하듯 책임을 떠넘기느라 애꿎은 시간만 잡아먹은 것이다. 집안에 숟가락 몇개 있는 줄도 모르면서 제대로 된 살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책상에 있는 인터뷰 답변은 다문화가족과에서 작성해줬다. 정확히 7개 질문 중 5개나 답변을 했다.

 5개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하느라 바쁜 연말 고생한 다문화가족과의 노고에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다.
최홍미 기자 hmchoi@kims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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