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병원 전공의들은 행복할까?

 언제부턴가 "성폭력", "폭언·폭행" 등 의료계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사건들이 의사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됐던 환자에 의한 의사 폭행도 문제지만 오랜 기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의사들 간의 폭행은 의사들 스스로 매듭을 풀어야 하기에 더욱 견고한 대책이 필요하다.
 교수와 전공의들은 선후배이며 환자를 함께 치료하는 동료인 동시에 교육자와 피교육자라는 복합적인 관계이기에 서로가 "윈-윈"하는 해결방안을 찾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 의사사회 폭력에 대한 속내를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은 한잔 소주의 힘이 아닐까? 교수, 전임의, 전공의 등 다양한 입장에서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소주토크. 의사사회 폭행이라는 쓴웃음 나는 뉴스는 더 이상 듣지 말자며 바쁜 연말 만사를 제쳐두고 "소주토크"에 참석했다는, 평범하지만 전공의 수련문제에 조금 더 각별한 의사들의 대화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 장소·시간
  2008년 12월 11일 / 저녁 7시
  역삼동 소재 한정식집
◇ 사 회
  김성훈 전국수련교육자협의회 회장
  (가톨릭의대 수련교육부학장)
◇참석자
 ▶오갑성 삼성서울병원 수련부장
  (성균관의대 성형외과 교수)
 ▶최성욱 고대안암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조교수
 ▶이 혁 가톨릭의대 성바오로병원
  소화기내과 전임의
 ▶설재훈 대한전공의협의회 복지이사
  (국립서울병원 전공의 정신과 3년차)

















김 성 훈 교수 오 갑 성 교수 최 성 욱 조교수 이 혁 전임의 설 재 훈 전공의

 ■ 노영수 본지 발행인 바쁘디 바뿐 연말 다소 어둡고 딱딱한 주제의 자리임에도 흔쾌히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사다난하다는 말이 정말 피부에 와 닿는 한해였습니다. 올해는 특히 의사사회의 폭력문제가 심심치 않게 언급돼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은 실제 전공의들의 교육을 담당하시는 교수, 양 측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전임의, 의사사회 폭력의 가장 큰 희생자인 전공의들로 한 자리에 모시기 어려운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한 걸음에 달려와 주신 것은 의사사회의 고질적 병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계시기 때문이라 봅니다. 한잔 소주와 더불어 허심탄회한 대화 나누시고 모쪼록 이 자리가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라며 따뜻한 의사사회로의 방안도 찾을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 김성훈 최근 경북대병원 전공의 성폭력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남대병원에서도 지도교수가 전공의를 폭행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앞서 발생한 아주대병원, 서울대병원 전공의 폭행 등 아직도 수련병원 내 지도교수나 선배 전공의의 성폭력 및 폭언, 폭행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요. 전공의 폭행은 지속적으로 제기되 온 문제지만 관행으로 여기고 묵인한 채 시간이 흐르면서 사제 간의 고소·고발 사태로까지 번지게 됐습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단발성 징계를 내리고 마는 현재의 미봉책은 의사사회 내 대립적 관계 조장과 불신만을 심화시킬 뿐이지요. 의료계 모두가 의사사회 내 언어적, 신체적 폭행이 의료계의 고질적이고 심각한 문제라는 점에는 공감대를 갖고 있지만 대책마련은 여전히 고착상태에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다양한 연령대의 의사들이 자리한 만큼 많은 의견들이 오갈 것 같습니다. 우선 설재훈 전공의가 현재 파악되는 전공의 폭력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 설재훈 최근 들어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매달 폭행 관련 민원이 접수되고 있습니다. K대 지도교수에 의한 전공의 구타나 B병원의 선배 전공의에 의한 구타 등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라 공표하지 않은 사건도 2건이 있구요.
 그동안의 사건들을 보면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도 발생해, 딱히 지방에 한정된 것도 아니며 지도교수가 아닌 선배 전공의에 의한 폭행도 적지 않습니다. 대전협에 민원을 접수해서 어떻게든 해결이 되는 사건도 있지만 아직까지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몰라 힘들어하는 전공의들도 적지 않다고 봅니다.
 
 ■ 김성훈 실제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전공의 폭행이 있다는 말씀이네요.
 전공의 폭행 사건 발생 시 합동조사단에서 조사를 해보면 사건을 제보한 전공의들은 많은 것들을 포기할 각오를 한 상태란 것을 알게 됩니다.
 의사사회가 굉장히 폐쇄적인 집단인 만큼 사건이 노출됐을 때 겪을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인데요. 전공의 폭행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수련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던 관습이죠. 시대가 변화하고 세대가 변한만큼 과거의 악습도 버려야 하는데 전공의 폭행 문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수련병원 내 이 같은 전공의 폭행이 사라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 설재훈 우선 도제식 교육이 원인입니다. 이전과 달리 수많은 교과서와 교육자료가 있고 최근 전공의 수련 표준화 지침에 대한 노력이 있으나 이런 간접적인 교육은 실제 임상에서 한계를 갖습니다.
 임상에서 겪는 미묘한 조작과 관점에 따라 치료 결과가 좀 더 나아질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전공의들은 지도교수나 선배 전공의에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호감형이 되기위해 부당함도 감수합니다. 의사들의 좁은 관점도 문제입니다.
 의사가 아닌 친구를 만나면 환자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할 이야기가 없다는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중도 포기나 다른 일을 하게 됐을 때의 두려움도 큽니다. 또 폭력에 대해 항의하다가 다른 병원에 소문이 나서 이동수련을 못한다거나 앞으로의 의사생활에 지장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폭행을 가하는 쪽에서는 지나친 우월감과 시혜의식에 사로잡혀 전공의를 가볍게 여기고 고압적인 태도나 폭행을 교육의 수단이라고 여기는 것이 원인입니다.
 현대사회에서 폭력이나 폭언을 하는 경우는 가해자의 성격적인 문제 또는 병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폭력이 교육의 수단은 아니며 징계는 다른 식으로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자신이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에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해 폭력을 쓴다는 건 정당하지 않습니다.

 "순혈주의" 인식 전공의 폭행 요인
선후배 서로 존중하는 풍토 조성을


 ■ 최성욱 의대는 군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는데요. 전 다른 대학을 2년 다니다 의대에 합격했는데 군 복무 먼저 마치고 의대에 갔습니다. 군대에서 나이와 무관하게 계급이 우선이듯 의사사회도 학번에 의한 서열이 우선입니다.
 의대에 엄격한 위계질서와 서열문화가 강한 건 아마도 윗사람에게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깔려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 오갑성 일전에 어떤 방송에서 보니 훈련 중인 운동선수들은 어쩌다 열차려를 안받으면 잠이 안온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혹독한 위계질서가 깊이 박혀있다는 거죠. 위계질서에 관련된 문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학교나 직장 등 사회 어디서든 인간이 살아있는 한 발생되는 문제로 비단 의사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이유로든 폭력이 발생해선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 생각엔 과거에 비해 전공의 폭행은 줄었는데 노출은 더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 의사 사회에서 상하관계 폭행은 학연으로 이뤄진 곳에서 더 많이 일어납니다. 그 바탕엔 보수적인 의사집단의 순혈주의가 깔려있기 때문이죠.
 
 ■ 김성훈 실제 그렇습니다. 학연 위주의 병원에서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만큼 폐쇄적이라 노출이 잘 안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과거에 비해 전공의 폭행이 줄었다고 보십니까?
 
 ■ 이 혁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져 촌각을 다퉈야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공격적인 언행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폭언·폭행이 사소한 상황이나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발생한다면 문제가 됩니다. 소명의식은 의사에게 필요한 덕목이나 환자를 위한다는 명목의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조적인 문제도 원인입니다. 아직도 남자, 여자 수련의들이 같이 숙소를 쓰는 수련병원이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잘못된 부분들에 대해서는 병원도 개선을 해야 합니다.
 서열 위주 집단이란 지적도 나왔지만 아래연차가 윗년차보다 나이가 많으면 존중해줘야죠.
 저도 전공의 이름표를 뗀지 얼마 안됐지만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전공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바른말, 고운말로 대화하려 노력합니다.
 

 ■ 오갑성 실제 수련병원에서는 나이와 연차가 뒤엉키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전공의들에게 수시로 하는 얘기가 있는데요. 사람의 나이에는 social age가 있고 calender age가 있다는 말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연차가 낮을 수 있고 이 두 나이는 서로 존경돼야 합니다. 나이 적은 윗년차가 나이 많은 아래 연차에게 업무상 오더를 내릴 수 있지만 그 나이는 존경해야 하고 나이 많은 아래연차 전공의는 윗년차를 업무상 존경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윗년차의 행동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하더라도 일단은 승복하고 본인이 그 연차가 됐을 때 자기 아래연차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행동은 하지 않는다면 나쁜 관행이 승계될 일은 없겠죠.

 ■ 이 혁 남녀 성비의 변화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저희 병원만 해도 의국 내 성비가 5:5 정도인데 여자 전공의들이 많아져서 의국 내 문화가 확실히 변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변화를 수용해 출산휴가 등의 제도 개선과 여자전공의를 위한 시설적인 개선도 필요합니다.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경북대병원만 해도 의국 전체가 여자전공의들 이었습니다.
 
 ■ 오갑성 한가지 일을 위해 구속을 하면 다른 제약이 옵니다. 이런 문제는 상식적인 거고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건데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나서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성희롱을 의식해 여자 전공의들이 회식에 참석하지 않는다거나 하게 되면 의국 내 소통의 부재를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 김성훈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자전공의들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텐데 기본적인 시설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
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폭력은 상대방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절대로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적인 모욕이나 폭력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성폭력은 범법행위죠. 강력한 징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제도적인 문제는 별도로 얘기나누기로 하고, 어느 집단이든 문제가 되는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문제 유발자"라고 할까요?
 이를테면 수련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전공의는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또 연차를 악용해 자신의 일을 떠넘기는 전공의 역시 의무를 다하지 않는 거구요. 그러나 그 해결 방법이 폭행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이런 문제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시스테믹한 제도가 필요합니다.
 이제는 전공의도 일종의 계약 관계가 아닌가요? 다소 인간적인 정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전공의에게는 연차별 승급제도를, 지도전문의에게는 평가시스템을 적용해 능력이 없으면 도태시켜야 합니다.
 
 ■ 이 혁 전공의 연차별 승급제도는 병원이 악용할 소지가 많다고 봅니다.
 
 ■ 김성훈 연차별 승급제도를 병원이 악용할 가능성은 분명 있습니다. 신중하게 고려해야겠죠. 또 현재의 지나치게 경직된 수련방법을 좀 유연하게 변화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동수련 등을 통해 나에게 맞는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구요. 과거에 비해 의사사회 내 폭행이 많이 노출되고 이슈화된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 설재훈 현재의 일반적인 사회와 의사 사회가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집단으로 비춰져서 이슈화되는 것이 아닐까요? 신기하니까요. 또 대전협에 민원접수창구 등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하는 단체가 있다는 인식이 전공의들에게 확산된 영향도 있습니다.
 또 전공의들의 폭력에 대한 관점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보상보다는 당장의 불합리에 좀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도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연된 큰 보상보다는 즉각적인 작은 보상을 추구하는 현재의 문화적 풍토와 같은 맥락으로, 이제는 의사라도 경제적으로 겨우 살아가는 마당에 자존심 구기며 폭력을 참아봤자 나중에 이에 대한 보상이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전공의는 칭찬에 목마르다

 ■ 최성욱 일단은 의료계 매체가 많아지고 온라인이 활성화되면서 빠르게 전파되고 그만큼 이슈화도 쉽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 이 혁 예전보다 개인주의적 생활이 만연해짐에 따라 의국보다 개인이 먼저인 전공의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또 의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의사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과거에 비해 이슈화되는 이유구요. 최고의 지성인으로 비춰지는 의사들이 성폭력을 했다고 하니 대중들은 관심을 갖게 되고 언론은 이를 더 부각시키기 마련입니다.
 반면 변호사들은 유사한 일이 발생해도 법적인 지식이나 단체의 권한을 이용해 잘 해결하는 경우가 많죠. 의사들도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내부에서 해결하고 외부에 알릴 때도 신중히 하도록 하고 외부에 알려졌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 오갑성
요즘은 명의의 구분이 없다고 합니다. 예전 첨단 진단장비가 없었을 때는 오랜 경험을 가진 노 교수의 한 마디가 정답이자 정확한 진단이었습니다. 임상경험이 중요시될 때는 이 같은 도제식 교육이 중요시되는데 지금은 아니죠.
 아쉬운 점은 오히려 교수와 전공의 간 대화도 없어지고 예전처럼 여러 과가 모여 토론하는 경우도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최첨단기기가 있다 해도 임상경험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최근의 병원들이 차가운 기계 일색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수련교육에서도 인간적인 면이 없어지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이 안타깝습니다.

인격적 상하관계가 근본 문제
신·구세대 대화부터 시작하자


 ■ 김성훈 폭력이 폭력을 부릅니다.
 폭력에는 황폐화되고 삐뚤어진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분명 왜곡된 의료행태가 나타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폭력이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보는데, 어떻습니까?
 

 ■ 이 혁 실제 교수님들께서 권위적인 수련지도가 전공의들에게 어떤 효과가 있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압박을 준다고 일의 능률이 오르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적절한 로딩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 오갑성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요.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기 위해 권위적이거나 고압적인 지도가 효과적일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평상시의 태도가 아닐까요? 군대도 예전에는 구타가 일반화 됐었지만 최근에는 구타에 대한 사회적 물의와 군대의 책임성과 윤리성을 동반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많은 변화를 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의사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해야지요.

 ■ 설재훈 맞습니다. 현재 들어오는 민원들은 교육적인 의도가 없는 단순한 고압적 행태에 대한 것이 많습니다.
 고압적인 상하관계의 수련상 장점은 없다고 봅니다. 있다면 전공의들도 이를 받아들일 자세가 돼있을 겁니다. 기술의 상하관계는 있겠지만 인격적 상하관계는 없어야 합니다. 폭력은 이 두가지의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전공의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것은 칭찬이라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잘 살펴보면 늘 칭찬을 받지 못 해 불만입니다. 능력있는 학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인턴, 전공의 때는 칭찬 받을 일이 거의 없어요.
 교수나 선배 전공의들에게 지적만 당하다가 자기애적인 손상을 입는 경우도 많구요. 고압적인 것보다 잘한다는 칭찬 한마디의 효과가 더 클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1일 1회 전공의 칭찬하기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요?
 
 ■ 김성훈 공감이 가네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그동안 교수들이 칭찬에 너무 인색한 건 아니었는지 싶네요. 최근 병원신임평가센터도 평가기준에 전공의들에게 상을 얼마나 줬는가를 포함시켰는데 좀더 확대됐으면 좋겠습니다.
 
 ■ 이 혁 지도교수도 전공의들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또 유명무실한 평가가 아닌 대학원 입학에 반영한다든지 상을 준다든지 등의 보상을 통한 동기부여도 따라와야 합니다.
 
 ■ 오갑성 교육만족도 평가에서 피드백은 실제 중요합니다.
 실제 평가를 해보면 수련과의 특성 이나 업무 강도에 따라 과간의 격차가 있지만 점차 과의 특성을 반영해서 정착시켜야겠습니다.

 ■ 김성훈 칭찬에 목말라하는 전공의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교수들도 문제고 먼저 다가오지 못하는 전공의들도 문제라고 보는데, 서로 간의 거리감이 크기 때문인가요? 신구 세대간 단절이 심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설재훈 너무나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세대간 단절이 생겨났다고 본다면 변화에 대한 거부를 느끼거나 적응의 속도에 따라 세대간 단절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추구하는 가치가 변화됐다면 그것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전공의들의 문제는 의사의 사명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시각으로만 의대에 진학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이들은 정해진 수련규정에 맞춰 시간을 보내다 전문의가 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죠. 의사사회가 이뤄야 할 가치를 변화에 맞게 만들어가려면 신구 세대가 서로 인정하고 대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오갑성
과연 무엇을 근거로 단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지요? 피교육자와 교육자간은 상호 "신뢰"라는 믿음 속에서 관계가 이루어짐으로 단절이라는 용어보다는 상호간의 거리유지는 필요한데 이 거리유지가 잘못 해석된 표현인 것 같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뜨거운 관심"이란 책이 생각납니다. 관심에는 차가운 관심과 뜨거운 관심이 있는데 뜨거운 관심은 존중의 마음이 있고 상대의 입장을 고려한 지속적인 관심이라고 합니다.
 반면 차가운 관심은 억압적인 것인데 무관심보다도 나쁠 수 있는 관심이라고 합니다. 우리 과 전공의들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인턴들이 오면 첫날 외래에 내려와 교수들과 인사를 시키고 마지막 날에도 인사를 시키는 것이지요.
 처음엔 젊은 인턴들이 번거로워 할까 우려했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세대 간의 간극이 많이 좁혀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만 해도 유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유교적인 생각이 형식에 얽매여 실리를 추구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져 실용주의로 바뀐 것 같습니다. 양극단에 중용을 찾아가는 지혜가 윗세대나 아랫세대에 다 필요한 것 같습니다. 윗세대의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정신적 문화재를 안물려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은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 이 혁 대화가 가장 중요하고 봅니다. 수련평가에서 일등한 어느 교수님이 대통령상보다 좋다며 기뻐하셨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물론 전공의들과 대화를 가장 많이 하고 대화하려고 노력한 분이었습니다.


선후배 동료간 소통이 가장 중요


 ■ 오갑성 교육수련부에서 중도포기하는 전공의들을 상담하다 보면 떠난 전공의들에게 아쉬운 점은 전공의들이 혼자가 아니라 환자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에게 손해가 있더라도 사회적인 책임을 위해 인내하는 면도 필요한데 정작 이를 알려주는 이도 없는 것 같습니다.
 
 ■ 설재훈 수련의와 지도의 간에 대화가 부족하고 칭찬에 인색할 뿐더러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감정적인 측면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신세대 전공의들이 먼저 다가가는 기술이 없어요. 이런 면도 조금은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 최성욱 저는 그야말로 끼어있는 세대인데, 예전에는 노 교수들이 해외학회를 가면 공항까지 배웅을 하고 마중을 나가는 등 과도한 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의국회식을 하자고 해도 전공의들이 다들 빠져나가 제대로 회식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양쪽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 김성훈 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모아지네요. 실제로 수련교육평가서를 보면 점수가 높은 과는 그 과 교수와 수련의들이 대화를 많이 했다는 면에서 좋은 평가가 나온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어렵다면 멘토링 시스템을 추천합니다. 대표적으로 부천성가병원은 10년 전부터 멘토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전공의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아요.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산하 8개 병원을 순환하며 수련을 받는데 다른 병원으로 가는 전공의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 멘토링 시스템입니다.
 다른 의대 출신의 전공의들도 적응이 빨리 되고 애착이 생겨 좋다고 하더군요. 한 달에 한번 정도 멘토와 만나 얘기도 하고 고민도 털어놓는 시간을 갖는 제도로 어렵지 않습니다.

 ■ 오갑성 삼성병원은 일인당 일정액의 회식비를 지원해줍니다. 의도적으로라도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라는 거죠. 효율적인 업무나 효과적인 수련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회식자리에서 사고가 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습니까? 젊은 전공의들도 책임감을 갖고 회식에 참석해야 합니다. 뭐든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환자도 끝까지 책임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 김성훈
신구 세대간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양측의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하겠습니다. 전공의 폭행이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말씀들을 들어봤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기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의사협회에 의사에 대한 자율징계권이 필요합니다. 프로페셔널 한 집단은 자체정화기능이 중요합니다.
 불행히도 의협은 다른 단체들보다 자정기능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봅니다. 우선 의협이 징계권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는 강력한 징계를 내리는 단호함도 필요합니다.
 변호사협회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협회 차원의 징계를 내려 협회가 투명하고 공정한 단체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습니까?
 
 ■ 이 혁 문제가 터지면 피해자의 고통은 정말 큰데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복지부는 신임평가에서 해결하라고 하고 결국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죠.
 우선은 더 많은 것을 가진 교수들이 변화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전공의가 "No" 할 수 있는 문화가 돼야 합니다. 또 제도 개선도 필요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만큼 현재 있는 제도라도 최대한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병원신임평가센터에서 문제가 발생한 수련병원에 가할 수 있는 제제는 전공의 책정을 안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또 의협 윤리위원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진료 정지나 회원자격 정지인데 이는 강력한 제제가 아닙니다.
 치과의사는 개업을 하려면 회원 자격을 갖추고 회비를 내야 합니다. 회원자격이 박탈되면 개원도 할 수 없는 거죠. 지도전문의의 자격도 좀더 엄격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 최성욱 교사는 교육학을 배우는데 의사들은 교육방법을 배우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교수법을 잘 모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자신이 배운데로 본데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죠.
 
 ■ 설재훈 의사로서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교육자로서의 능력과 기본적인 소양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 김성훈 병협에서도 지도전문의의 자격을 명확하게 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필수과목을 이수하도록 하고 전공의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의료윤리도 중요합니다. 의료윤리를 실천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심어진다면 폭력 문제도 당연히 해결될 것입니다.
 
 ■ 최성욱 미국은 문제가 있는 전공의에게 감정적인 해결이 아닌 추천서를 안 써준다거나 하는 등 다른 루트로 해결을 합니다. 환자를 안 준다든지 수술실에 못 들어오게 한다든지의 수련에 지장이 있는 방법도 고려해볼만 합니다.
 
 ■ 오갑성 지도전문의 시절 제 나름의 룰이 있었어요. 수술기록지를 완성하지 않는 등 미비차트를 만드는 전공의에게 환자를 안 주는 거죠.
 그 환자는 다른 동료 전공의가 맡게 되고 아랫연차들이 모두 미비차트면 윗년차가 챠트를 잡는 거죠. 환자가 없는 의사는 외로워요. 존재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죠.
 
 ■ 김성훈 우리나라는 아직 추천서 문화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최근 의전원 면접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받아온 추천서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예상 외로 솔직한 추천서가 꽤 많아서 놀랐어요. 자신에게 호의적인 교수에게 추천서를 받았을 텐데 칭찬일색이 아닌 객관적이고 솔직한 추천서가 많아 전공의 수련에도 고려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 혁 제도적인 측면에 앞서 서로 간의 라포가 기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와 전공의는 역할이 분업돼서 단절의 소지가 많습니다. 의사와 환자와의 라포가 중요하듯이 교수님과 전공의, 인턴과의 라포 형성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전공의들도 노력해야겠지만 교수들도 노련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저의 의견을 종합하자면 의사단체는 전공의들에게 미래를 제시하고 수련병원과 복지부는 병원의 구조적, 환경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전공의와 교수는 직역 간 라포를 형성 한다면 고질적인 수련문제가 개선되지 않을까 합니다.
 
 ■ 김성훈 중요한 것은 상식과 소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의 과도기적인 시점에서는 강제적인 제제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에 의사협회의 자율징계권, 제도적인 지도전문의 자격요건, 윤리위원회에 뚜렷한 권고안도 내놓는 등의 실질적인 부분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어느 사회나 그렇듯 교수들의 어느 정도의 반발은 있겠지요. 그러나 교수 사회에서도 많은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봅니다. 제로포인트는 쉽지 않겠지만 현실 가능한 목표를 설정해서 노력하면 "폭행 근절"은 그리 먼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사진·김형석 기자 hskim@kims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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