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대처 매뉴얼 곳곳에 "의료" 자리 찾아야


응급의료시스템 확립·재난병원 지정 필요…의료진 보호 대책도 세워야

 대한응급의학회가 지난 해 실시한 응급의료센터의 생물학적 재난 대비 현황은 재난계획, 물품과 장비, 시설, 훈련 등 모든 면에서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대한응급의학회지 2008;19:263).


이들은 재난이 발생한 현장의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의료진의 현장지원체계가 미비하며, 유관기관간 협조가 미흡하다는 것을 국내 재난의료대책의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재난에 대처하는 관할부처는 보건복지가족부(질병관리본부), 행정안전부, 환경부 등 다양하게 나뉘어 있다. 이들은 제각각 다른 매뉴얼을 가지고 있으며, 이중 의료부분은 빠져 있다.

보건복지부의 매뉴얼에도 환자를 병원까지 어떻게 이송하느냐에 대한 부분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보더라도 "사상자의 응급처치 및 의료기관으로의 이송"이라는 문구가 의료와 관련된 내용의 전부이다.

 실제 태안 오일유출 사고 당시 현장응급의료를 담당했던 태안의료원측은 "다양한 부처에서 내리는 각각의 지침에 치여 응급의료가 어려울 지경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재난대응에 있어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구조가 이루어져 있지 않기에 구조 담당기관인 소방방재청에서 의료지원 요청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병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한 수해와 같은 자연재난시 구조대가 응급환자 후송 및 길 복구 작업을 어느정도 진행한 이후 의료진이 파견되고 있으며 평균 3.5일이 소요된다.

 재난 발생시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초기 72시간의 응급치료가 중요하지만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예산 효율성이 낮은 구조라는 지적이다.

 재난응급의료는 현재 16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한편 재난·재해 현장에서 발생한 사상자의 분류, 응급처치 및 의료기관으로 이송은 현장응급의료소가 담당하며 관할 보건소장이 책임자가 되어 운영 전반에 관해 지휘 감독한다.

 일부 민간의료기관은 자체적으로 재난장비를 구입하여 재난상황에 대비하여 훈련 등을 시행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간의료기관이 재난대비와 같은 공공의료의 부분을 단독으로 담당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효과적인 대응계획을 수립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권역의료센터외 재난병원을 지정·운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편 원외 지원 프로그램인 재난의료지원팀(DMAT; disatser medical assitance team)은 재난교육 및 훈련 등의 경험이 있는 의사, 간호사, 약사, 사무직 등 5~6명으로 구성된 외부지원 시스템으로 재난응급의료의 일환이다. 서울대병원과 원주기독병원 등 일부 권역응급의료센터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아직 DMAT을 갖춘 병원은 거의 전무한 수준이다.

 그렇기에 재난현장에 파견되는 의료진은 DMAT이라기 보다는 재난의료 경험이 없는 의료봉사팀의 성격을 띄고 있다. 보다 효율적인 의료지원을 위해서는 지역 기반 DMAT을 운영함으로써 권역응급센터는 중추역할을 하고 주변의 거점병원들이 지원을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진의 인식도 중요하다. 2003년 토론토에 SARS가 유행했을 때 응급의료인력의 50%가 감염된 바 있다. 보호장비 착용이 중요하나 이에 대한 개념이 낮은 상황이다.

 재난의 위협에 대한 대응은 더이상 우리만의 준비나 계획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으로 글로벌 대응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는 최근의 조류독감, 황사 등의 경우에서도 분명히 경험할 수 있었던 사례들이다. 이런 가운데 WHO는 재난대책의 개선안을 권고하고 나섰다.

한편 WHO의 전염병 발생 정보공개가 매우 느리다는 문제점이 지적되며 국제적 네트워크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WHO 재난대책 개선안 권고

▲ 재난훈련은 모든 부서원이 참여하여 1년에 2회 이상 지역별로 시행되어야 하며, 훈련시는 문제점이 노출될 수 있도록 임의의 상황을 부여하면서 평가되어야 한다.

▲ 재난에 대비한 비축물자를 지역별로 확보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방침이 수립되어야 한다.

▲ 국민에게는 재난에 대한 일반적인 교육(신고방법, 피난법, 기본 응급처치법 등)이 시행 및 홍보되어야 한다.

▲ 특수 재난(NBC 재난)에 대비하여 기본적인 장비(제염장비 및 개인보호장비)를 각 응급의료기관에 보급하고, 지침을 작성해야 한다.

▲ 응급의료기관들이 고립된 상황에서 24~72시간동안 독자적으로 비상팀을 가동할 수 있는 준비(식량, 전기, 식수, 의료장비 등)를 갖출 수 있도록 국가에서 지원해야 한다.

▲ 재난이 발생한 직후로부터 48시간 이내에 각종 문제점을 파악하고 초기 재난대책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평가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 특수 재난 및 해외에서 발생한 재난에 관한 정보를 국가끼리 공유할 수 있는 협력체계를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전문가 개선 해법

각계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을

부처별·국가간 자료·시스템 공유해야

 "긴급한 대처를 위한 병원간 커뮤니케이션 루트 마련이 요구된다. 그 바탕에는 재난의학에 대한 이해와 필요성에 대한 교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테러위험 국가중 하나인 이스라엘의 할펀 교수(Tel Aviv Sourasky 의료센터)의 재난 대처를 위한 진단이다. 이제 막 성장을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한 재난의학의 미래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법을 들어본다.
 ■ 임경수 울산의대 교수

 예산 =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라고 한다면 이제는 부처간 주도권 경쟁을 넘어 통합적이고 수평적인 구조 마련과 더불어 실질적인 의료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산지원의 정비가 우선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방서-군 협동작전 시스템을 마련한다면 헬기 운영에 드는 대당 년 10~20억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재난응급의료의 기본적인 항목인 응급의료물품 구비에는 많은 예산이 필요치 않다."

 시스템= "현재 뿔뿔이 흩어져 있는 소방서, 군, 환경부, 식약청, 의료단체 등 재난대책기관 및 전문가들을 하나로 묶는 통합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부처별로 각각 다른 자료 시스템의 공유를 통해 국가차원의 재난별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재난의료팀의 신속한 현장지원이 반드시 요구된다. 그러므로 재난구조팀이 들어갈 때 DMAT도 같이 들어가 현장에서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의료진= "생물학적 재난 발생시 적극적인 진료를 위해서는 응급의료진의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는 사회적 공황을 우려해 정부에서 인정할 경우에만 백신을 수급하여 접종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 경우 시기적으로 늦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병원측의 자체적 판단에 따라 접종을 허용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제대응= "바이러스는 신속하게 변이하기 때문에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가능한 빨리 임상정보를 교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웹에 기반을 둔 조사시스템 또는 APCDM 웹 매거진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세계재난의학회(WADEM)와 아태재난의학회(APCDM)는 교육 및 훈련외에도 회원간 국제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교환 루트 마련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 임현술 동국의대 교수

 "지역별 음압 병원, 질병관리본부내 BSL-4 실험실 구비, 백신개발, 학문협력(수의학 분야에서 인수공통감염병 관리 협조), 교육홍보 등의 개선이 요구된다."

 ■ 최대해 동국의대 교수

"재난의 날을 지정하여 일상화되고 실제적인 훈련을 실시하고, 재난 통신망을 재정비 및 구축하여 일원화된 통신수단 구축하는 것도 놓쳐서는 안될 부분이다."

 ■ 박주옥 제주의대 전임강사

 병원내 공조체계= "병원내 재난 훈련시 참여 의료진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응급의학과뿐만이 아닌 전 과에 걸친 의료진의 참여가 필요하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약사, 홍보팀 등 전체 인력 참여하고 있는데, 훈련중 자기 분야에서의 기여부분을 체감하여 프로토콜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일상적인 훈련 필요= "실질적인 재난대책 훈련을 위해서는 응급의학과내 재난전문가가 필요하다. 사실 재난 훈련은 돈이 많이 들고 비전문가의 경우 무엇 또는 어떤 재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병원 사정상 2~3억원에 이르는 샤워텐트처럼 비싼 훈련용품이 없다고 하더라도 실제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 및 응용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훈련을 통해 평가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기 보다는 이것이 재난대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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