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전의학 선진국 수준…유전상담은 이제 걸음마

유전상담 제도화 해야할 때

 향후 유전의료시대로의 도입에 발맞추어 유전자 검사 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로 인해 본인의 유전정보를 보호하고 유전정보가 노출됐을 시 경험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점들을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유전자 검사로 의뢰되는 환자 및 가족 또는 피검자들은 검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충분히 이해된 정보에 근거해 동의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인 유전상담이 필요하다.

 김현주 교수는 "유전자 검사 전에는 유전상담을 통해 유전적 위험도, 유전자 검사의 임상적 유용성과 한계, 유전정보와 관련된 윤리적, 사회적, 법적 이슈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근거로 유전자검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검사 후에도 그 결과에 대한 정확한 임상적 의미와 유전적 검사 결과가 피검자와 가족원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유전상담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유전상담사 양성 계획 시급

 이미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유전자 검사의 적절성과 유전자 검사 관련 윤리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유전자 검사 전 후의 유전상담이 대두됐다.

 미국은 1970년 다운증후군에 대한 양수천자를 이용한 산전진단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유전검사 전과 후의 유전상담을 위한 Non-MD 유전상담사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1982년부터 배출된 임상유전학 전문의가 2007년 기준으로 2700여 명에 이르며 유전상담사도 2007년 기준 2500명이 배출됐다. 유전상담사는 대학원 석사 학위 이상의 학력을 소유하고 전문상담 과정을 이수한 전문가들이다.

 2005년부터 유전상담사를 배출하기 시작한 일본은 오는 2011년까지의 배출 인원 계획에 따라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2011년 114명의 유전상담사가 배출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2006년 아주의대 대학원에 과정이 개설돼 현재 5명이 과정을 이수하고 있으며 중장기적인 인력 배출 계획은 세워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산전진단이 보편화되기 시작한지 20년이 넘었다. 산전진단과 함께 유전상담을 도입한 미국의 사례를 볼 때 설명이나 과정없이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의 의료행태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산부인과 의사가 직접 상담

 유전자 검사의 적절성과 생명윤리 안전의 법을 담보하기 위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유전상담 전문가가 국내에서도 절실하다.

 2007년 한국유전자검사평가원에서 수행한 "유전카운슬러와 관련한 국내의 현황조사 연구" 중 유전학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수행한 설문조사에서 98%가 유전상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으며, 95%가 유전상담의 역할을 "산전 진단 검사, 유전자 검사 등의 검사 수행 전·후의 충분한 정보 제공"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유전상담을 수행하고 있는 인력으로는 의료기관 96%, 비의료기관 83%가 의학유전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전문의라고 밝혔다.

또 국내·국외에서 의학유전학 전문 교육이나 수련 등을 받은 소수의 임상유전학 전문의를 제외하고 유전상담을 직접 수행하고 있다고 응답한 전문의들은 산부인과가 73%, 소아과 35% 등으로 상당수가 전문적인 의학유전학 전공자들이 아니었다.

 의사국가시험에서 유전학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아 이들의 전문성을 보장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진료영역

 국내의 유전상담은 1994년 아주대병원을 시작으로 아산병원, 연세대병원 등 서울과 수도권 일부 대형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환자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충남대병원, 화순전남대병원, 부산백병원을 희귀난치성질환 지역거점병원으로 선정해 유전상담을 하도록 했으나 상담가들을 위한 전문교육기관이나 프로그램은 운영되지 않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운영하는 희귀난치성질환센터 홈페이지인 "헬프라인"에는 유전상담에 대한 내용이 게시돼있다. 희귀난치성질환의 80% 정도가 유전질환인 만큼 환자들에게 유전상담의 중요성을 알려주려는 의도다.

2006년 복지부 연구용역으로 지역거점병원 상담간호사 교육용으로 제작한 교육자료도 있으나 이를 활용한 실제적인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 교육팀 관계자는 "유전상담을 위한 전문 인력 양성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나 인력양성을 위한 인프라는 구축되지 않아 별도의 교육프로그램은 운영하지 못한다"며 "우선 필요한 의료기관에서 교육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게재해 놓았다"고 말했다.

 현재 유전상담은 수가로 인정되지 않으며 보험청구코드조차 없는 보이지 않는 진료 영역이다. 복지부는 유전상담사를 위한 교육자료까지 만들었으면서도 제도권에서는 유전상담을 인정하지 않고 전문가 양성이나 수가 마련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국내 유전의학의 수준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앞서 있으나 유전의학치료의 필수과정인 유전상담은 미국보다 30년 넘게 뒤쳐져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유전의학의 혜택을 환자들이 누릴 수 있도록 임상 유전학 전문의와 유전상담사 등의 전문 의료인력에 대한 교육 및 인증프로그램의 개발과 유전상담의 건강보험 급여인정 등 제도상의 지원이 시급하다.



"치명적 기형 발견땐 낙태 선택권줘야"

김현주 아주의대 교수

 - 유전의료의 규제완화에 대해 정부의 입장이 미온적인데?

 "더 이상 유전의료가 소수를 위한 의학이라고 여기면 안된다. 희귀난치성질환자들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분야지만 고령임신부에게도 필요하다.

최근에는 유방암, 알츠하이머병, 관상동맥질환 등 흔한 성인 질환에도 유전적 소인이 작용한다는 것이 입증됐다.

또 맞춤의료시대에 개개인의 유전자 특성에 맞는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검사가 일반적으로 이용될 전망이다. 이와함께 유전상담이 유전자검사의 한 부분으로 접목되고 유전의료의 한 과정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 현재 시행되는 유전자검사의 질 관리는?

 "복지부가 2005년 한국유전자평가원에 일임한 업무다. 그동안은 유전자검사가 정확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평가했으나 앞으로는 적절성 평가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 산전 유전자검사가 낙태증가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도 있는데?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이뤄진 낙태의 95%가 사회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대부분의 낙태가 태아의 건강상의 문제를 배제하고 산모의 의사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산전검사 결과 치명적인 선천성 기형이 발견되서 낙태를 한다해도 이는 명백한 근거가 있는 결정이며 법의 테두리 내에서 산모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 아기가 태어나도 고통 속에 괴로워하다가 2주 만에 죽는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 유전상담 제도화를 위한 앞으로의 계획?

 "지난달 예정됐던 공청회가 유전자평가원 이사회의 갑작스런 결정으로 취소됐다. 이달 중 열리는 이사회를 통해 공청회를 다시 추진할 것이다. 유전의료시대에 유전상담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임상적 적응증을 토론하고 유전상담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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