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된 인원도 못채웠는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진료과 편중 심화 임상의학 뿌리 "흔들"

 서울대 병리과 전공의 7명 가운데 3명이 최근 사직한 것을 계기로 진료과 편중 심화 해소와 기초의학 육성 주장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임상의학에 가까운 기초의학으로 분류돼 병원 근무 전공의 형식으로 인력이 운영되는 병리과와 예방의학과는 더욱 심해 기형적 의료가 우려되고 있다.

 환자의 최종 진단을 담당하는 병리과와 예방·환경·의료정책 등을 담당하는 예방의학과는 임상과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그러나 병리과 전공의는 임상 진료과의 연구 지원, 학생 교육 등 많은 역할에 비해 경제력과 자부심에서 크게 뒤떨어지고 있다.

 예방의학도 마찬가지여서 임상과에 비해 상대적 낮은 경제력 때문에 수련 포기가 비일비재하다.

 박병주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주임교수는 "지난해 전공의가 결혼한 후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전과를 하고자 했을때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없었다"며, 우리나라의 왜곡된 의료제도만 바로잡아도 이러한 현상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특히 예방의학의 경우 진료중심에서 만성질환 관리 시대로 바뀌어 비전이 밝은데도 불구하고 떠나는 것은 예방의료에 대한 서비스 수가가 적용되지 않는 등 불합리한 수가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내년 대한병리학회 이사장으로 학회를 맡은 서정욱 서울의대 교수는 "전공의 수련이나 병리과 검사는 대형 병원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며, 이들이 떠남으로해서 조직검사가 지연되고 진단의 정확성도 우려되는 등 임상의학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병리과와 예방의학과 전공의 충원율은 58.3%, 45.5%로 낮았으며, 이 가운데 각각 14.6%, 12.0%가 수련을 포기했다.

 병리과는 올해 1년차 정원 84명중 55명(65.5%)을 확보했으나 10명(18.2%)이 사직했다. 1년차 전공의는 서울대병원 3명, 삼성서울병원 2명, 서울아산병원, 가톨릭중앙의료원 각 1명 등이 올해 수련을 포기했으며, 조선대병원을 비롯 14개 수련기관은 아예 한명의 전공의도 없는 등 기초의학 전문의 인력의 수급 차질과 의료질 저하가 우려되고 있다.

 예방의학은 1년차 정원 55명 중 23명을 확보했으나 경북의대 1명이 중도 포기, 이 대학을 포함 21곳의 수련기관 가운데 7곳은 1명도 없다.

40% 대의 전공의 확보율로는 업무과부하로 인해 제대로된 수련이 이뤄질 수 없다는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어려움이 계속되자 병리과 개원의의 경우 조직검사 의뢰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윤혜경 대한병리학회 정도관리위원장(인제의대)은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병리과는 전문의 뿐 만 아니라 전공의, 병리사 등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대부분의 중소병원이 경영난 등을 이유로 병리과 개설을 기피하고 개업의에게 조직검사를 의뢰하기 때문에 병리검사센터(개업의)의 병리검사 건수가 급증, 병리 전문의 권장 업무량의 10배까지 판독하는 경우도 있다"며, 병리검사센터의 경우 임상의사와의 대화가 부족한 상태에서 진단을 내리게 되므로 오진의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한겸 대한병리학회 이사장은 "병리과는 환자의 진료 뿐 아니라 연구 교육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임상의학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젊은 의사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의 병리검사 수가로는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아 병원 경영자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데 50만원의 지원금으로는 병리과 의사를 유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운섭 이화의대 병리학교실 교수는 "힘들게 일해도 주변에서 잘 알아주지 않는데다 전망마저 불투명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전공의 1명만 그만둬도 남아있는 전공의들이 힘들어지고 사기도 저하된다. 수익성을 보존해야 할텐데 지금으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탄했다.

 박병주 서울의대 교수는 전공의 부족, 교수 부족, 의학교육 부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수련내용 강화, 비전 제시, 수가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진료과 편중현상의 심화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흉부외과를 예로들면 올해 72명 정원에 34명만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 1993년부터 정원을 채운 해는 한번도 없다.

산부인과, 외과 등 이른바 3D로 불리는 진료과목은 대부분 비슷한 상황. 경제적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분야에서 전공의 확보율이 낮고 포기율이 높은 만큼 건강보험수가의 현실화와 상대가치수가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의료계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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