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주인이 되면 병원 미래 달라진다"


누군가에 의존 말고 리더 스스로 관리해야


역할 집중 가능한 환경 조성 우선

하루 1시간은 재충전 위해 남겨야

모두 챙기려 말고 권한 위임 필요



 회의, 컨퍼런스, 진료, 결재, 학회·의사단체 등 대외 활동, 병원 내부 행사, 연구 활동…. 원장이란 자리, 정말 바쁘다. 각종 원장 임명 축하 모임에 참석하면서도 진료나 연구, 다른 외부활동도 포기할 수 없다. 업무 파악과 더불어 숱하게 쏟아지는 결재서류에 서명을 하며 몇 달이 흘렀다. 그러다보니 꽉 짜여진 스케줄에 쫓겨가는 느낌이 들고, 임기가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 나만 바쁜 것은 아니며, 다른 원장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인 "시간관리 리더십"에 따라 나의 하루, 병원의 하루가 다를 뿐이다.
 
 
 리더십 전문가인 밥 애덤스(Bob Adams) 애덤스 미디어 대표는 "많은 리더들이 지나친 업무량에 압도당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 관리가 리더십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다"며 "시간을 적절하게 조율하고 관리하지 못하는 리더는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시간관리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원장 스스로 막연히 비서에만 의존하지 말고, 시간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파악해 쪼개진 시간까지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연세의료원 박창일 원장은 개인일정 수첩을 따로 두고 일·주·월 단위로 스케줄을 계획해 꼼꼼하게 시간관리를 한다. 박 원장은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수첩을 보고 중요 스케줄을 체크하고, 하루 일정을 구상한다"며 "일정과 중요한 일들을 머리 속에 새기고 업무에 임하면 일의 능률을 높인다"고 소개했다.

 한국산재의료원 안산중앙병원 임호영 원장은 인근 병원장들과 시간 맞추기 어렵다는 한계점을 살려 한달에 한번씩 조찬모임을 통해 상생 가능한 지역 의료서비스에 대해 논의한다.

또한 직원식당 한 켠에 작은 공간을 마련, 매주 목요일 점심시간에 병원 간부들, 진료과장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진다. 임 원장은 "진료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소리가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개개인별 진료 일정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림대의료원은 춘천성심병원 등 거리가 상당한 산하 5개 병원장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시간낭비를 막고자, 매주 화요일 오전 6시 30분 각 병원 회의실에 모여 이사장을 비롯해 병원 문제에 관심이 많은 여러 직원들과 함께 화상회의를 진행, 다른 병원들의 호평을 얻고 있다.

 보다 효율적인 시간관리를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삼성의료원 이종철 원장은 진료를 하지 않는 대신 경영공부를 하고,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와 메이요클리닉과 같은 세계적인 의료기관의 움직임을 통해 병원의 미래를 구상한다. 병원이 전문경영인이 아닌 의료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현실적인 여건이 개선돼야 가능하다. 한 병원장은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하고는 병원 수익에 연결된다며 원장들의 진료가 강행되고 있다"며 "진료에 급급하기보다는 원장의 역할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고 토로했다.

 매 시간 얼마나 집중력을 발휘했는가에 따라서도 시간관리는 달라진다.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등에 경영자문을 해온 볼드 어프로치(Bold Approach)의 데이브 라카니(Dave Lakhani) 대표는 "딱 한시간만 미쳐라"라는 저서를 통해 "시간을 45분과 15분의 두 단위로 나눠서 45분 동안 무섭게 집중하고 나머지 15분은 집중이 덜 필요한 일에 써라"라고 조언했다. 이처럼 딱맞게 정해진 시간이 아니더라도 하루 중 1시간 만큼은 재충전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20여년간 GE코리아를 이끌어온 강석진 전 회장은 아침에는 집에서 회사로, 저녁에는 화실로 출근했다. 일이 늦게 끝나더라도 화실에서 그림그리는 일은 빼놓지 않았다.

 강 전 회장에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창의력을 키우는 시간이자,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이종철 원장은 거의 매일 점심식사 후 30~40분 정도의 산책을 즐기며, 퇴근 후에도 아내와 함께 50여분간 걷는다. 산책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과 일상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은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의장인 유희탁 전 분당제생병원장은 6년간의 원장 재직시절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오전 6시에 헬스장을 찾는다. 유 의장은 "모든 활동은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술, 담배를 삼가고 체력관리가 필수"라고 덧붙였다.

 JC빛소망안과 최경배 원장은 한달에 한 번꼴로 베트남, 중국 등으로 봉사활동을 나가 수백 명에게 무료 안과수술을 해준다. 무료 수술 후 받는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가 진료와 수술은 물론 삶의 에너지까지 제공하기 때문이다.

 원장들은 특히, 출장을 가게 되는 경우 결재는 물론 모든 업무가 올스탑(All stop)되는 병원이 많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강석진 전 회장은 여름철이 되면 해외로 그림을 그리러 가기 위해 한달 휴가를 냈다. 모든 프로젝트를 위임하고 한달 뒤 돌아와서 보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추진되고 있었다. 위임을 통해 또다른 리더를 키운다는 측면에서 잭 웰치 전 GE 회장은 이를 두고 "부재 경영"이라 일컫기도 했다.

 서울대병원 성상철 원장은 권한의 위임을 통해 분당서울대병원과 강남센터에 책임경영제를 도입, 수익 개선과 성과 증대에 따른 인센티브제를 정착시킨 성과를 토대로 지난해 "올해의 CEO 대상"을 수상했다.

 박창일 원장도 "단위 기관별, 해당 부서별로 해당 업무를 명확하게 지시하고 해당 부서장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주고 있다"며 "리더가 1에서 100까지 모든 업무를 직접 관여하고 결정하는 것은 업무 진행을 비효율적, 비능률적으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하범 전 강동성심병원장은 원장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비유하며, "원장은 결정만 하고, 팀장 이하 부하직원들에게 역할을 분담해 각자의 영역을 발휘하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간관리의 중요성 인식은 환자의 만족도나 병원의 수익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 2006년 병원계에 처음으로 6시그마를 도입한 강흥식 전 분당서울대병원장은 "1시간 대기 5분 진료"의 오명을 벗고자 전자차트 프로그램 성능을 확장하고 진료 예약 프로세스를 개선했다.

 그 결과 이전에 최대 약 43분이 걸리던 대기시간을 23여 분으로, 수술환자 퇴원 재원일수를 3일 단축해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앞으로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구상하는 "제4세대 시간경영"이 대세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간관리 매트릭스"를 놓고보면 3·4사분면의 일을 최소화하고 미래 기회가 될 수 있는 2사분면의 일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병원에서 당장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를 구상하는 원장의 시간관리 리더십은 "병원의 미래를 결정하는 힘"이다.


















매주 화요일 오전 각 병원 회의실에 모여 화상회의를 하는 한림대의료원(사진 오른쪽)과 중국에 봉사활동을 나가 수백 명에게 무료 안과수술을 해준 JC빛소망안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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