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 서비스 제공 강요 말아야
의료형평성 보장 정도 국민적 합의가 먼저

서 영 준
연세대교수 보건행정학과

IMF 관리체제 이후 우리나라 모든 산업분야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주문이 이제 국내에서만 통하는 수준을 벗어나 세계 기준(global standard)에 맞추어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지식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2006년으로 예정된 의료서비스 시장 개방은 그동안 국내에서의 경쟁에만 몰두해온 우리나라 의료기관들이 외국의료기관들과 진료수준 및 고객서비스의 질적 경쟁을 해야 하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는 외국 의료기관들이 국내에 진입하였을 때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요소는 무엇이며, 우리 의료기관들이 국외로 진출하였을 때 가질 수 있는 차별화된 경쟁력은 무엇인지 생각하여 국내 의료산업의 보호와 육성이라는 정책적 차원에서 접근해 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의료서비스 시장은 좁게는 급성기 의료시장만을 의미하나 넓게는 요양, 재활, 대안의학, 의료기기, 의료경영컨설팅 등 광범위한 의료관련 시장을 생각할 수 있다.

국내 의료서비스 산업의 시장규모는 현재 GDP의 약 4%에 달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평균수명의 연장과 인구의 고령화, 첨단의료기술의 발달, 건강보험의 보장범위 확대,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른 건강에 대한 관심 증대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의료시장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의료서비스 산업은 고용창출과 기술혁신에 있어서도 가장 역동적인 분야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고수익 산업임과 동시에 생산유발효과가 여타 산업보다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산업은 급성기 의료서비스를 중심으로 국가주도의 건강보험제도라는 틀 안에서 제한된 경쟁만이 허용된 채 평준화되고 획일적인 의료서비스의 제공만이 강요되어 질적 차별화를 통한 국제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발전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부유층 환자들은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찾아 해외로 나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증명하듯 2002년 한국은행 통계에 의하면 의료서비스 부문의 국제수지 적자는 1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향후 의료분야의 세계 시장은 2010년경에 중추 신경계 1,377억 달러, 재활의료복지 1,275억 달러, 심혈관계 1,149억 달러, 항암계 900억 달러, 생체진료기기 시약분야 15,929억 달러에 이르는 등 천문학적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이러한 거대한 의료서비스 시장을 두고 일부 선진국들은 경쟁우위를 점하기 위해 의료산업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비전이나 정책이 부재한 실정이다.

의료의 산업화란 의료서비스를 하나의 제품으로 보고 고객의 다양한 욕구에 맞추어 서비스를 생산하고,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자유시장경제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의료산업에 시장경제의 개념이 도입된다면 의료서비스의 생산, 유통, 품질관리 등에 있어 고객중심적 사고가 크게 신장될 것이며, 그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새로운 의료서비스의 개발에 재투자하는 한편, 내부 구성원들의 능력 개발과 복지를 향상시켜 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의료기관들은 시장에서 도태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의료서비스는 기본적으로 형평성을 중시하는 공공재적인 성격을 어느 정도 가지므로 어느 수준까지 의료의 형평성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적정한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먼저 이루어 져야만 의료시장에서의 시장경제 개념의 도입에 관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산업화를 통한 국제 경쟁력 강화를 생각한다면 공공성만이 강조되고 있는 우리의 의료시장에 일정 부분 시장경제적인 개념의 도입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우리나라 의료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몇 가지 정책방안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첫째, 의료전달체계의 합리적 개편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전달체계는 의료기관간 기능 정립이 미비하여 1차 의료기관인 개원의들과 중소병원, 대형병원들 간에 환자 유치를 위한 생존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의료기관들이 과다한 시설과 장비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이는 다시 소비자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게 되는 악순환을 되풀이 하고 있다. 따라서 개원의는 외래환자 중심, 병원은 입원환자 중심으로 기능을 재정립하고 병상이 과잉공급된 지역의 중소병원들은 요양병원으로 기능을 전환하도록 유도하여 불필요한 무한 경쟁을 지양하고 의료기관간 네트워킹을 통해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제고해 나가야 한다.

둘째, 신의료 기술의 연구개발에 대한 충분한 투자와 정부의 지원이 요구된다. 현재와 같이 신의료기술의 개발이 건강보험의 틀에 묶여 제한되는 현실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하며 이에 맞는 방향으로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줄기세포나 배아복제 연구와 같은 장기간의 연구와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분야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상품화하여 세계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가지도록 정책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셋째, 주식회사 형태의 영리병원을 일부 허용하여 의료산업에 민간자본의 유입이 자유롭도록 해야 한다. 영리병원의 운영이 활발한 미국뿐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조차도 최근 기업형 의료법인을 허용하여 양질의 의료와 부족한 의료재정을 보충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의료산업에 민간 자본이 유입되어 의료의 질적 서비스 경쟁이 가능해지고 세계 의료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의료기관의 출현이 용이해 질것이다.

넷째, 전문병원을 적극 육성해 나가야 한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병원을 전문병원으로 유도하는 정책뿐만 아니라 종합병원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특수 전문분야를 집중 육성해 나가도록 진료수가의 차등화 등 제도적인 지원이 따라주어야 한다.

다섯째, 의료인력의 질적 관리가 이루어 져야한다. 현재와 같이 한번 면허를 받으면 평생 유지되는 제도를 개선하여 정기적인 재교육을 통해 면허를 갱신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또한 의사인력의 적정수준을 산정하여 의과대학 및 전문의 배출을 적정한 수준으로 조절하여 의료인력의 질적 경쟁력을 제고해 나가야 한다.

이상의 방안들이 국민적 합의하에 경제발전의 속도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실행된다면 우수한 인적자원과 정보기술력을 가진 우리나라 의료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가지고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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