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생명구조장치 `T-PLS` 상용화

박동형 혈류 제공기능 세계 유일…美·네덜란드서 임상시험 돌입

선 경
고려의대 교수
흉부외과
한국인공장기센터장
본지 객원논설위원

 의료를 시장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볼 때, 심혈관 영역에서 현재 가장 큰 시장은 관상동맥 분야이다. 약물치료 뿐 아니라 건당 의료비 발생이 큰 내과시술과 외과수술 모두 꾸준히 늘고있으며, 특히 외과수술인 관상동맥우회술은 그동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최근 약물스텐트의 등장으로 외과수술이 다소 주춤하고는 있지만, 관상동맥우회술은 여전히 심장수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기업들과 국제 마케터들의 판단에 따르면 관상동맥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과거에는 시장점유율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으나, 몇 년 전부터는 활발한 M&A를 통해 현재 시장의 대부분을 몇 개의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기업들은 관상동맥질환에 더 이상의 적극적인 투자는 피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cash cow` 역할을 맡기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심혈관 영역의 차세대 시장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심부전 시장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렇다면 심부전 시장에 어떻게 진입 할 것이며, 어떤 경쟁전략이 필요할까? 어떤 부문에 투자 할 것인가? 아무도 답을 못 내리고 있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심부전 치료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관상동맥 질환의 경우는 이미 안전성과 효용성이 증명된 많은 치료법들이 있기에 그 하나하나가 투자대상이 된다. 그러나 심부전은 `이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치료기술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섣불리 덤벼들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심부전증에 제시되는 치료기술은 다양하다. 베타차단제와 ACE억제제 등을 사용하는 약물요법, Batista 혹은 Dor 술식 등과 같은 심장성형술, 심장박동기로 심장을 재동기화하는 CRT 치료, 순환보조장치나 인공심장과 같은 기계식 인공심장, 줄기세포 등을 이용한 심근세포이식, 형질변형 돼지심장의 이종이식을 목표로 하는 바이오 인공심장, 그리고 심장이식 등이 있다.
 이들 중에 약물요법과 심장성형술과 같은 치료기술은 자기 심장기능이 어느 정도 남아있을 때 시도해 볼 수 있다.
 심장기능이 악화되어 말기 심부전에 진입하게 되면, 약물이나 심장성형술 같은 전통적인 내·외과 치료가 듣지 않는 상태가 되므로 보다 적극적인 치료기술이 동원되어야 한다. 적극적인 치료단계에서 현재까지 최선의 치료는 심장이식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심장이식은 심장 공여자가 절대 부족하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뇌사가 법적으로 인정된 2000년 이후, 심장이식은 오히려 급격히 감소하는 역설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심장이식의 차선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 중에 줄기세포 등을 이용한 심근세포 이식과 형질변형 돼지심장의 이종이식을 목표로 하는 바이오 인공장기가 있다.
 심근세포 이식은 몇몇 기관에서 유의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으나, 임상에서 공인된 치료기술로 정립되기까지는 아직 검증할 요소들이 많다. 또한 필요할 때마다 심장을 무제한 공급할 수 있는 바이오 인공심장 프로젝트는 상상만으로도 외과의사의 가슴이 설레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앞으로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까지 우리의 손에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 바로 전통적인 기계식 인공심장이다. 어떤 기계장치를 인공심장이라 부르는가는 연구자에 따라 다양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인공심장은 심장치환형과 심장보존형으로 나눌 수 있다. 심장치환형 인공심장은 완전인공심장이라고도 부르며, 병든 심장을 제거하고 기계장치로 갈아 끼우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미국의 Cardiowest와 Abiocor가 있다. 심장보존형은 심실보조장치라고도 부르며, 자기 심장을 보존한 상태에서 도와주는 것이다. 한국의 AnyHeart가 대표적이다.
 인공심장을 구동방식에 따라 전기구동식(전기식)과 공기구동식(공압식)으로 나누기도 한다. 위에 언급한 Cardiowest는 공압식이고, Abiocor와 AnyHeart는 전기식이다. 최근 국내에서 개발된 H-VAD는 양쪽의 장점을 취합하여 성능을 향상시킨 hyrid형 인공심장이다. 전기식은 소형경량화가 가능하여 이식형 인공심장에 쓰이고, 공압식은 체외형 인공심장의 주요 구동방법이 된다.
 현재까지 개발된 국산 인공심장은 엔지니어 측면과 의학 측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다. 특히 최근 상용화까지 성공한 한국형 생명구조장치(T-PLS)의 경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박동형 혈류를 제공하는 생명구조장치로서, 미국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돌입할 예정이다. 중국의 경우는 이미 임상에 사용하고 있다.
 의료란 그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및 전통 등의 통합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따라서 특정한 치료기술이 임상에서 표준치료법으로 자리 잡으려면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 뿐 아니라 기업 관점에서 보는 시장의 개념을 배제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인공심장의 미래는 밝다. 최근 국제적으로 인공심장 개발영역의 특징은 연구 단계를 벗어나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따라서 각국의 연구진들은 시장 선도그룹이 되기 위해 이합집산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전형적인 lock-in & lock-out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인공심장 연구개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안목을 갖춘 부단한 외부환경 분석이 절실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