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지원 상담 치중…의사 진료가 우선돼야


피해아동 정신치료 첫 의사태도가 예후 좌우
전담의료기관 지정되면 성폭력 응급키트 제공















성폭력 전담의료기관에
제공되는 응급키트.



 최근의 범죄통계를 살펴보면 성폭력은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가장 많이 행해지며 그에 비해 가장 적게 보고되는 범죄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47%가 일생 동안 적어도 한 차례 이상의 성적 범죄에 노출되며, 25%의 여성이 강간시도를 경험하고 13%의 여성이 강간을 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 상담기관 210개 의료기관은 18개

 원스톱지원센터나 해바라기아동센터와 같은 의료지원 시스템이 사실상 의료정책과 거리가 먼 여성부의 주도로 이뤄졌으며 성폭력에 대한 국내 대다수의 연구가 사회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의료계가 성폭력이라는 심각한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전국에 성폭행 상담기관이 210여 개에 이르고 있는 반면 의료지원 기관은 원스톱지원센터나 해바라기아동센터 뿐이며 이를 통틀어도 18개에 불과하다는 점도 곱씹어볼 문제이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신의진 교수는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상담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상담보다는 치료가 우선돼야 한다"며 의료지원시스템이 보다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부에 따르면 2007년 12월 기준으로 전국에 332개의 성폭력 전담 의료기관이 지정돼 있다. 성폭력 전담 의료기관을 희망할 경우 해당 지자체에 신청하면 여성부가 해당조건을 확인하고 지정여부를 결정한다.

전담 의료기관에는 성폭력 발생시 일원화된 증거수집과 처치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성폭력 응급키트가 무료로 제공되며 사용시 응급키트 사용에 따른 처치료 7만5000원이 의료기관에 지급된다.

 전담 의료기관이 아닌 일선 의료기관은 응급키트를 제공받을 수 없다. 여성부 관계자는 "키트의 공급과 회수 파악, 사용여부 등 정확한 관리를 위해서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모 일간지가 서울과 부산의 전담 의료기관 43곳의 현황을 조사한 결과 15곳이 전담 의료기관인지조차 몰랐으며 21곳이 응급키트를 보유하고 있지않아 전담 의료기관 지정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피해 아동 10명 중 7명 정신장애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는 아동성폭행이 심각한 사회적 건강상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동성폭행은 어린이, 성(sex), 폭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상호작용을 해 아동에게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남기며 두뇌발달에도 영향을 미쳐 후유증이 평생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성폭력 피해 아동 10명 가운데 7명이 정신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아동 성폭력의 심각한 폐해가 드러났다.

 신의진 교수에 따르면 해바라기아동센터를 방문한 20세 미만 성폭력 피해아동을 평가한 결과 68.48%에서 우울증 등 각종 정신장애가 진단됐다.

또 해바라기아동센터의 2004년도 통계를 분석한 결과 13세 이하 성폭력 피해 아동의 61%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나타났으며 특히 이 아동들 중 한가지 이상의 다른 정신과적 진단이 추가된 비율도 81%로 높아서 성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의 심각성을 나타냈다.

 또 일부 아동에서는 피해 초기에는 증상이 심각하지 않다가 수 개월 혹은 수년 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어 1년에서 2년 정도는 정신과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신 교수는 성폭행 피해 아동이 전문적인 치료에 들어가기 전 처음 이들과 접하는 의사의 태도에서 향후 이들의 예후가 약 60% 이상 결정될 정도로 초기 일반의에 의한 정신의학적 조치가 중요하다며 면담 시 아동을 안정시키고 신뢰를 형성한 후 유도적인 질문을 피하며 면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폭행은 사회문제지만 피해자의 신체와 정신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건강문제이기도 하다. 또 가해자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가해자에게도 정신과적인 도움이 제공돼야 하며 무엇보다도 성폭력 피해 시 상담보다 치료가 우선이라는 인식을 범사회적으로 심어줘야 한다.

 성폭행 피해자 치료 담당의사의 역할과 책임
1. 구급처치 및 생명을 위협하는 손상에 대한 진단과 치료
2. 성폭력 피해 상황 및 부인과 병력에 대한 문진
3. 피해부위 파악 및 기록과 치료
4. 각종 배양검사 실시 및 성병 예방
5. 임신 예방
6. 법적 증거물 채취 및 기록
7. 진단 치료 후의 상담
8. 추적 관찰
  (성폭행 환자의 처치지침, 이임순 2005)


 성폭행 피해자 임상병리검사 및 추적 진료
 환자에 대한 의학적, 정신적 문제에 대한 추적 진료는 매우 중요하나
실제 추적 진료율은 30%에 불과하다.





























응급피임약 원치않는 임신 막을 수 있어
24시간내 복용땐 95% 예방…72시간 이내 사용해야

 우리나라에서 강간을 당한 후 임신율은 2~4%로 보고되고 있다. 성폭행 환자 발생 시 응급키트를 이용하거나 의료기관 자체적인 방법으로 진단과 기본적인 처치를 했다면 성폭력의 결과에 따른 임신 가능성을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최근 여성부가 발간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의료 업무 매뉴얼"에는 피해여성이 성폭력 몇시간 내로부터 5일 이내 의료기관에 왔다면 응급 피임약을 처방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응급피임약은 고용량의 호르몬제제로 일반 피임약처럼 피임 효과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기 전, 착상을 방해해 임신을 막는 약이다.

 응급피임약을 최소 72시간안에 복용해야 하는 이유도 난자와 정자가 수정란을 만들어 자궁에 들어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72시간이기 때문이다. 응급피임약은 원치않은 성관계 이후 24시간 안에 복용하면 95%의 높은 임신 예방효과가 있으며 72시간 내에만 복용하면 75% 예방효과가 있다.

 경찰병원 응급의학과 원형섭 과장은 "가임기 여성, 즉 생리를 시작한 여성은 연령에 무관하게 응급피임약을 사용할 수 있다"며 "성폭행 환자 처치시 원칙적으로 배란일에 무관하게 응급피임약을 처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응급 피임약 복용이 하루가 늦을수록 임신 예방률도 10%씩 감소된다"며 "무엇보다도 성폭행 환자를 일차 진료하는 의료기관에서는 응급피임약 처방을 신속히 하고 올바른 처방지침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응급피임약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황체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의 복합제제와 황체호르몬의 일종인 레보노르게스트렐(levonorgestrel)만을 사용하는 단일제제로 크게 나뉜다.

국내서는 단일제제인 레보노르게스트렐이 허가를 받아 시판되고 있다. 국내서 가장 처음 시판된 현대약품의 "노레보"가 대표적이며 최근에는 한번 복용으로 편이성을 높인 레보노르게스트렐 1.5㎎ 제제인 "노레보 원"과 바이엘 헬스케어의 "포스티노-1" 등이 출시됐다.

 응급피임약은 의사 처방이 필요하며 한 배란주기에 한 번만 복용해야 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응급피임약을 사용하면 피임효과가 떨어지고 체내 호르몬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구토나 출혈, 위장장애, 불규칙한 생리주기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이임순 교수는 "최근 가임기 여성들이 계획적으로 피임을 하기보다는 성관계 후 응급피임약을 이용해 피임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등 응급피임약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다"며 "응급피임약은 강간 등 응급시에 처방하고 일상에서는 적절한 피임 방법을 교육하는 등 의사들이 주도해서 올바른 피임법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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