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급성기 환자 갈 곳 마땅찮아…수가체계도 바로잡아야

보건·의료·복지 복합서비스 형태로 가야

무분별 증가 예방 위해 학회인증제 추진


 재활의학이 바로서기 위해서 우선 명확한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이뤄져야 한다. 재활의학은 질병 치료가 아닌 질병이나 사고로 파생되는 장애환자의 기능 회복을 목표로 두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장기적인 치료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대한재활의학회 고영진 이사장은 "대학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이 단계를 넘어선 아급성기 환자들은 재활병원에서, 만성기 환자들은 요양병원에서 관리를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급성기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전문적인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중간단계의 재활전문병원 확대가 시급하다. 세브란스 재활병원 박은숙 원장은 "전문재활치료를 하는 의료기관이 턱없이 부족해 아급성기 환자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비용이 필요한 재활병원을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인데다, 고질적인 저수가로 인해 유지는 커녕 적자의 늪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재활의학 전문의가 쉽게 재활병원에 접근하지 못한다. 전문재활치료사가 환자 한 명을 붙잡고 치료해도 30분에 1만원도 안되는 수가가 책정되어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현 수가체계 너무나 비현실적

 따라서 전문재활치료를 담당하는 병원에 대해서 수가 인상에 대한 정책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치료에 비해 효과가 좋은 급성기, 아급성기 환자의 재활치료에 대해 만성기와 같은 무조건적인 삭감은 지양해야 한다.

 대한재활의학과개원의협의회 박명희 회장은 "발병 시기에 따라 재활치료의 횟수가 나눠지는데, 가장 시급한 3개월까지도 삭감되는 현실이 비일비재하다"며 개선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재활병원은 90% 이상의 병상을 운영해야만 적자를 면하는 현실 속에서 지나친 삭감은 환자에게나, 전문재활치료를 하고 있는 병원에게나 좋을 것이 없다는 것.

 치료효과가 좋으나, 비용이 어마어마한 수(水)치료 등도 인정해야 다른 병원들의 연이은 투자도 기대할 수 있다. 개원 병원 중 유일하게 풀장을 설치한 보바스병원 손성곤 원장은 "수가가 뒷받침되지 못해서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라며 "매일 물을 교체하는 등 제대로 된 운영을 위해서는 수가 인상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수가를 어떻게 올려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일본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년 전 일본의 재활치료 시스템은 우리나라보다 뒤졌다. 그러나 재활병원 수가를 올려주어 지난 5년간 투자가 이어지면서, 명실공히 재활치료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했다. 박 회장은 "상대가치점수를 따질 때 꼭 필요하지만 수익이 저조한 재활의학 분야에 대해 전체 국민에 대한 원가만 따져서는 안된다"라며 "지금보다 재활치료가 더욱 절실한 미래 시점을 기준으로, 재활의학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호소했다.

재활병원-요양병원 종별 구분 선행돼야

 물론, 재활의학과가 무조건적인 수가 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요양병원의 난립을 부추기는 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종별 구분이다.

 지금의 재활병원은 별도의 종별 구분이 없다. 일반적으로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개설해 전문재활치료를 담당하는 병원을 재활(의학)병원이라 칭하고 있지만, 요양병원에서 재활치료를 위주로 치료하지 않는 병원조차 재활병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다. 러스크병원 이규한 원장은 "재활병원과 요양병원의 명칭이 혼용되어 환자들이 애매한 판단을 하는 일이 빈번한데다, 재활치료를 담당하는 병원들이 선의의 피해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종별구분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현실성있는 재활병원 인증제 도입을

 대한재활의학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재활병원 인증제 도입도 필요하다. 재활의학회는 시설, 인력 등의 기준을 토대로 기초안을 만들어 지난 2월에 TFT를 구성했다.

 5월까지 인증제 시행을 위한 모든 여건을 마련, 하반기부터 운영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인증제의 기준은 일정 병상에 대한 의사·간호인력, 공간·시설 등의 "구조", 치료과정, 프로토콜, 환자상태 호전 등의 "과정", 치료율, 퇴원율 등의 "결과"의 3가지로 나뉜다. 고영진 이사장은 "인증제가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자정노력의 일환"이라며 "신청 병원에 한해 인증을 부여, 학회 평가를 거쳤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원가의 현실을 반영해야 올바른 인증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시설을 갖췄다고 인정받는 보바스병원 손성곤 원장도 "과정, 결과에 대한 것은 가능하지만, 시설 부분은 현재로선 어렵다"며 "수가나 인센티브가 뒤따르지 않으면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박명희 회장도 "학회 요구가 너무 고수준이며, 인증기준에 따르면 수익성을 전혀 맞출 수가 없다"며 "요양병원과 차별화가 필요하나, 현실에 맞는 눈높이 조율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따라서 인증제 도입은 선도적인 전문재활치료의 역할을 하는 병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재활전문병원으로써 합당한 기준을 충족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만성환자 지속 케어 체계도 필요

 재활전문병원을 살려 나간다면, 요양병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2~3년 내 상당수의 요양병원들이 자연도태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오는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실시되면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제 요양병원도 재활치료가 돈된다고 매달리지 말고, 나름의 활로를 모색해야 할 때다.

 노인과 같은 만성기 재활환자들은 의료적인 측면과 함께 "복지"적인 면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요양병원 서비스 패턴도 단순 입원치료에서 일상생활의 연속선상에 있어 적극적인 재활치료를 강화, 익숙한 가정으로 조귀복귀 시키자는 개념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 3년 이상의 환자들은 재활치료의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만성환자에 맞는 케어를 받을 수 있도록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환자를 교육시켜야 한다.

 미국의 경우 가정으로 퇴원할 때 간병인은 물론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가 정기적으로 환자를 방문해 상태를 평가하는 방문서비스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한 너싱케어유니티(Nursing care unity)와 같은 간호 시스템을 두고 있다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일본 서비스체계 참고할 만

 이 시점에서 일본에서 일찌감치 도입한 "보건의료복지복합체"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작년 11월 국내에도 한국보건의료복지복합체협회가 설립된 것. 의료법인과 사회복지법인을 결합한 형태의 요양병원 시스템으로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재가 시 적응이나 사회 복귀를 돕는 복지를 제공한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특히 고령화 시대에 노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 욕구인 보건·의료·복지적 서비스 중 어느 하나 소홀할 수 없으며 서비스 제공 패러다임 역시 니즈(Needs)를 충족해야 하므로 보건·의료·복지 세 축의 서비스를 동일기관에서 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 진입과 이에 따른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 개호보험을 도입한 일본의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에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보건의료복지복합체협회 김덕진 회장(희연병원 이사장)은 "일본의 경우 개호보험제도가 의료와 복지 서비스를 복합화 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며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중인 일본의 거의 모든 병원이 복합체를 운영하고 있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고령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재활의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절실히 부족한 재활전문병원에 대해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거기에 요양병원-재활병원의 종별 구분과 학회 차원으로 추진하는 인증제 도입도 뒤따른다면 지금의 막무가내식 증가가 아닌 재활병원으로서의 뚜렷한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재활의학과의 인기가 수익을 위한 일과성 현상이 아니라, 진정한 전문재활치료를 담당할 수 있도록 모두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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