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30개 품목 매출액 80%가 수출로 벌어들여

수입품 점유율 높아…국·공립병원부터 사용 확대를


 "실무자는 계약하기로 했는데, 최종 결제선인 원장님이 수입 업체로 바꾸시는 바람에 계약이 불발됐어요. 해외 각지에서 인정받고 수출하기 때문에 성능에 있어서도 뒤지지 않고, 가격 경쟁력도 있는데 정말 아쉽게 됐습니다."

 국내 대다수의 의료기기 업체들은 이런 사례를 많이 겪는다. 잘나간다는 업체들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신용평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의료기기업계 매출액 10위권 중 국내 업체는 메디슨, 세라젬, 중외메디칼, 바텍 단 네 곳인데, 이들은 모두 수출 위주로 매출을 올렸다.

 매출액 상위 30개 품목의 수출액이 전체 수출액 8억1740만 달러 중 84.3%인 6만9900만 달러를 차지한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메디슨은 지난해 1843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며 의료기기 업계 중 매출액 1위를 차지했지만, 국내 매출액 비중은 20% 정도에 그쳤다. 초음파 진단기 ACCUVIX XQ가 미국, 유럽 등 전세계 100여국에 수출되면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음에도 국내 시장에 눈에 띌 정도로는 진입하지 못했다.

 최근 들어 상품의 다양화를 꾀하고 나선 중외메디칼도 국산 디지털 엑스레이 DDR을 독일에 2200만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으나, 국내 시장은 진입이 어렵다고 보고 앞으로 유럽, 미국 등지에 판매를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세라젬도 대표 상품인 개인용 온열기를 수출 위주로 판매하고 있으며, 디지털 치과병원 시스템을 갖춘 바텍은 국내 치과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시장 규모는 크지 않고 세계 54개국에 수출한 실적이 더 많았다.

 반면, 병·의원에서 많이 쓰이는 기계인 스텐트, CT, MRI 등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업체의 기술력 부족이라고 할지라도, 메디슨이 압도적인 수출을 거둔 초음파진단기도 2006년 기준 3800만달러나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수입액도 증가하는 추세를 기록했다.

 결국, 국내의 탄탄한 업체들조차 국내 시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업체들은 국내 시장이 작다는 한계점도 있지만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 수출을 하지 않으면 R&D로 재투자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해 미국 소노사이트(SonoSite)와 기술 제휴를 통해 개발된 초음파 진단기를 개발한 메디아나 관계자는 "국내 초음파 시장은 수입 업체들 위주로 잠식되고 있으며, 신제품이 해외에서 호평을 받아도 수입 업체들보다 못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중외메디칼 관계자 역시 "기존의 수입 업체들이 워낙 시장에 깊숙히 자리매김 하고 있기 때문에, 신규 진입이 어렵다"며 "결국 내수 시장은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가 의료기기 시장을 확대하고 싶다면 국·공립병원부터라도 국내 업체 제품을 사용하게끔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인구고령화와 융합기술 발전 등으로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의료기기 산업이 성장 가능하다고 보면서도 국내 업계에 지원책을 펼치지 않고 있다는 한계점을 안고 있다.

 보건산업진흥원 산업분석통계팀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기반과 관련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의료기기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면서, "높은 수입 의존도, 선진국에 비해 낮은 기술수준과 R&D 투자, 영세한 기업 규모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만 할 뿐 지원책은 내놓지 못했다.

 이에 대해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박희병 전무이사는 "국내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이 인정을 못받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업체 스스로 해소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정부가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국·공립병원이나 보건소, 정부에서 추진하는 보건사업 등에 대해서는 "인증된" 국내업체 개발 제품을 사용하도록 유도해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 그는 "세계시장 속에서 선전하는 국내 업체들의 성장을 토대로, 국내 시장에서의 활성화를 꾀하려면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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