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학교육학회 공동기획
의학교육 패러다임


김 선

가톨릭의대 교수
의학교육학과



"과학적" 의사보다 "좋은" 의사 원해
현대사회 적합한 새로운 교육 시도할 때


 환자는 병이 생기면 좋은 의사를 만나 하루 빨리 완치되기를 희망한다. 그렇다면 환자가 생각하는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인가?

 아마도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내 가장 적절한 치료를 제공해 주는 의사일 것이다. 의사로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은 의학교육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교육해야 할 영역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으며 그에 따라 의사에 대한 인식과 요구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정확한 진단과 치료 외에도 환자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의사,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의사,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자세하고 쉽게 설명해 주는 의사, 평생학습을 통해 자기 계발을 소홀히 하지 않는 의사, 전문가로서 갖춰야할 윤리적인 요소들을 의료 전반에 걸쳐 실천하는 의사,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환경에 적합한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을 위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의사, 다른 의료 관련 직종의 종사자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의사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교육은 그동안 의학적 지식의 전달에만 너무 치중하여 의사로서 갖추어야 할 태도나 임상 상황에서 실제 행할 수 있는 술기와 관련한 교육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의학교육이 시작된 초기에는 학생들에게 의학적 지식을 교육시키기에도 급급하여 태도와 술기교육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교육이 시작한지 수 세기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지난 의학교육의 모습을 되짚어 보고 현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교육을 시도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교육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기에 앞서 우선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전체적인 틀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현재 의학교육에서 전통적인 교육과정이라고 불리는 것은 19세기 초 미국의 의학교육을 대대적으로 구조 조정한 플렉스너의 모형에 기반하고 있다.

 플렉스너는 기초·임상의학 각각을 분리된 과목별로 가르칠 것을 제안하였다. 플렉스너가 이와 같은 과학적 의학을 주장한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19세기 초 미국의 의학교육은 제대로 된 의학교육기관, 교수진, 시설이 전무하였으며 의학교육 기관이라고 만들어진 곳은 대부분 상업을 목적으로 세워진 것들로 "열악함" 그 자체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의학교육은 아무런 체계나 이론이 없이 "어깨 넘어 배우는 도제적"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고 플렉스너는 이러한 비체계적이고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실시되고 있는 의학교육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기 위해 "과학적 의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즉, 플렉스너가 주장한 "과학적 의학"은 그 시대 현실에서 요구됐던 교육과정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지금부터 논의해 나갈 문제의 핵심이 드러난다.

 현재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상당수가 100여년 전의 현실에서 요구되었던 플렉스너가 주장한 전통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현상일까? 지난 100여년의 시간 동안 우리의 의학지식과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급성장하였으며 사회도 다변화 시대를 맞이하였다.

 즉, 그 시대에 필요했던 교육은 현재 우리에게 있어선 적합하지 않은 전통 고수의 자세라는 것이다.

 때문에 21세기라는 시대에서 제 역할을 수행해 낼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사회적 요구와 변화를 수용하여 이에 적합한 형태의 교육과정의 개발이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렇다면, 의학교육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회적 변화와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가?

 우선 의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영국의 의학교육학자로 잘 알려진 Harden 교수가 제시한 다섯가지 기본 방향을 살펴본다.

 첫째, 그동안 의학교육은 교수자의 일방적인 주입으로 교육이 이루어졌지만 앞으로는 학생들 스스로 주도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구성해야 한다.

 둘째, 기존의 의학교육은 지식 습득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졌지만 앞으로는 임상적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특히 임상실습에 있어서 도제 교육의 형태로 이루어졌던 그간의 교육방식은 학생에 따라 임상 경험의 수준이 다를 수 있어 교육의 불평등이 초래되기도 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의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현재의 각각 분리된 형태로 가르치고 있는 과목들을 통합하여 교육함으로써 학생들이 전체적인 시각으로 환자와 사회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하다.

 넷째, 병원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지역사회 교육으로의 발전을 시도해야 한다.

 다섯째, 기존의 의학교육은 대부분 필수교육으로 이루어져 학생들의 적성과 관심분야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교육과정은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관심분야와 적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제시한 최근 의학교육의 세계적 추세에 기초하여 우리나라 의학교육 역시 다음과 같은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첫째, 교육방법면에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요소들을 더욱 강화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관련 자료와 정보를 찾아 주어진 임상적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평생학습 태도를 함양한다는 측면에서도 강조되는 부분이다.

 둘째, 교육내용면에서 기초·임상·인문사회의학 세 학문의 통합을 시도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기초와 임상을 분리하여 모든 과목을 나열식으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교육은 문제 상황이 주어졌을 때 해결을 위해 필요한 지식들을 연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길러 내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특히 인문사회의학은 학생에게 환자의 질병을 생물학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환자의 심리적 상태, 환자 가족과 환자가 위치하고 있는 사회적 지위 등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줄 수 있어 강조되고 있는 영역이다.

 교육내용에 있어 또 하나 강조해야할 영역은 의사소통 교육의 강화이다. 의사소통은 의사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능력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의사의 설명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사고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더라도 의사소통 능력이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의학교육 과정의 초기에서부터 효율적인 의사소통 능력의 함양을 위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평가면에서 지금까지 지식의 정도를 측정하는데 치중한 의학교육 평가는 점차 임상수행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실기 형태의 시험이 적극 도입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서의 수행능력을 평가할 경우 표준화 환자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넷째, 그동안의 교육과정은 학생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모든 과목을 필수로 수강하도록 구성되어 있었지만 앞으로는 학생들이 스스로의 관심분야와 적성을 고려하여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정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앞에서 제시한 의학교육의 방향성을 제대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과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우선 1차적으로 교육과정에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요구조사가 이루어져야하며 더불어 현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요구조사를 시행할 때에는 사회에서 바라는 의사상이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것부터 관련된 모든 분야에 소속된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이 추구하는 교육목적과 목표가 무엇인지를 검토하여, 이것이 교육과정에 반드시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목표는 대학이 학생들을 어떠한 의사상으로 성장시켜 사회에 배출해 낼 것인지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교육과정 개발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앞서 제시한 단계를 거쳐 교육과정의 틀을 마련했다면 어떠한 내용과 방법을 통해 교육과정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개발을 하여야 한다.

 이때 어떠한 교육내용을 언제 제시할 것인지, 그 제시 방법에 있어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하며 그에 따른 시간 배분을 해야 한다. 이후 개발한 과정을 어떤 방법으로 평가할 것인지 구체적인 평가 체제를 개발해야 하는데 평가에는 학생의 학업성취도 외에도 교육과정 자체에 대한 평가를 포함시켜 교육과정이 교육목표에 부합하여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부족한 부분과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제시한 모든 과정을 거쳐 하나의 완성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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