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질병의 인종간 또는 지역간 유병특성의 차이에 대한 보고들이 늘고 있다. 특히,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과 서양인 사이의 유병특성은 유전적 요인과 함께 환경적 차이가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일부 밝혀지고 있다. 아시아인 만성질환의 유병특성은 크게 두가지 갈래로 이해될 수 있다.

 첫째는 오랜 기간 이 지역 만의 독특한 생활습관이나 환경에 노출되는 과정에서 서양과 두드러지게 구별되는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경우, 유전적 요인이 개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는 최근의 동향으로 전통적 생활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질환의 특성 또한 점차 서구화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은 현재 기존의 전통적인 유병특성이 유지되는 동시에 서구화로 인한 변화가 공존하는 과도기 단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뇌혈관질환이 여전히 높은 유병률을 보이나 내적으로는 출혈성이 감소하고 허혈성뇌졸중이 증가하는 서구의 패턴을 따르고 있다.

 서양에 비해 비비만형 당뇨병이 여전히 많으나, 비만형 역시 증가하고 있다. 대장암 또한 한 부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던 용종이 대장 전반에서 발견되는 서구형으로 변화됐다. 이같은 유병특성의 변화과정을 고려한다면, 치료전략 역시 달라져야 할 것이다. 우선, 우리나라 만성질환 환자들의 유전적·환경적 요인에 의한 유병특성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서양과 차이를 보여 왔던 유병특성에 근거한 치료전략이 구사돼야 할 것이며, 기존 특성과 서구화 패턴이 공존하고 있는 만큼 개별 환자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 맞춤형 치료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질병의 인종적 다양성은 최근 신흥시장으로 부각중인 아시아 지역 연구결과가 급증하는 과정에서 일부 데이터가 축적되는 수준이다. 인종에 따른 치료전략의 전환을 이끌어 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질환특성에 대한 역학데이터를 비롯해 연구결과가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까지 여러 연구와 조사를 통해 알려진 한국인 만성질환의 유병특성을 살펴보고, 이에 근거한 치료전략에 대해 각 질환별로 전망해 본다.



뇌혈관질환 사망률 심장질환 앞서
고혈압 유병 특성이 가장 큰 원인


 지난해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06년 사망 및 사망원인 통계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요 사망원인은 암·뇌혈관질환·심장질환 순으로 나타났다. 이를 다시 단일질환별 사망률로 묶어보면, 뇌혈관질환이 인구 10만명당 61.4명으로 심장질환(41.5명)과 폐암(28.8명)을 앞선다.

 1996~2006년까지 10년간의 추이를 살펴봐도 여전히 뇌혈관질환이 주요 사망원인별 사망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간 두드러지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확인되는 우리나라 사망원인의 특성은 심혈관계질환 가운데 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심장질환을 앞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특징이다(Int J Clin Pract 2006; suppl. 150: 1~6).

 하지만, 서구 선진국의 사망원인은 이와는 정반대의 패턴을 보여 왔다. 전통적으로 심부전이나 심근경색 등의 심장질환이 더 높은 사망률을 보여 온 것이다. 이같은 차이는 서양인과 아시아인의 대표적 유병특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시아 지역의 전통적인 생활습관, 즉 환경적 요인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이 가운데 심혈관 질환의 주요 위험인자인 고혈압의 유병특성이 크게 기여한다는 지적이다. 고혈압 합병증으로 뇌졸중이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고혈압 자체로 인한 출혈성뇌졸중(뇌출혈)은 줄었으나 고혈압에 의한 동맥경화 촉진이 원인인 허혈성뇌졸중(뇌경색)은 증가하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고혈압 합병증은 뇌졸중으로 고혈압 환자에서 정상인보다 발생위험이 7배나 높다. 관상동맥질환 위험도는 3배에 해당한다. 2004년 학회의 고혈압 진료지침에서도 뇌졸중 발생의 인구기여위험도는 고혈압(35%)이 가장 중요한 인자로 꼽혔다.

 고혈압이 뇌혈관질환과 심장질환 모두에서 주요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는 점은 이 위험인자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질병극복의 성패가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Lancet 2002; 360: 1374-1360"에 발표된 "2000년 전세계 사망률: 고혈압과 여타 위험인자의 영향"에 관한 보고서는 "저·중·고소득 국가에 관계 없이 전세계적으로 고혈압에 의한 질병 및 사망부담이 가장 큰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고혈압의 심각성은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03년 현재 우리나라 30세 이상 인구의 고혈압 유병률은 27.9%로 1000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잠재적 고혈압 환자인 고혈압전단계가 30%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략 60%가 심혈관계질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히 수축기고혈압과 뇌졸중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축기와 이완기고혈압 모두 뇌출혈이나 뇌경색의 위험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에는 수축기혈압이 이완기혈압에 비해 심혈관계질환 발생에 더 중요하다고 한다. 관동의대 제일병원 순환기내과 박정배 교수는 좌심실 수축시 혈액이 방출되면서 동맥을 따라 맥압이 같이 전달되는데 대동맥과 경동맥을 거쳐 뇌혈관에 우선적으로 도달하는 만큼 수축기혈압이 높으면 뇌졸중의 위험도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혈압상승의 누적으로 인해 경직되고 탄성이 낮아진 뇌혈관이 심장수축시 터지기 쉽고(뇌출혈), 동맥경화가 진행된 혈관의 경우 혈관벽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혈전이 떨어져 나가 뇌경색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인 고혈압 환자들이 비만과 지질이상 등 대사이상을 동반하는 경우(대사증후군)가 많아 합병증 위험이 더 심각하다는 점도 지적한다.

 고혈압뿐 아니라 고혈압전단계부터 대사이상이 동반돼 동맥경화의 위험도가 높아지고, 이로 인한 심혈관계질환 사망률도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서구화된 생활패턴(비활동적인 생활습관, 고칼로리 식습관 등)과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구조가 이같은 고혈압 유병특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는 심혈관계질환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률 증가에 기여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노령화 진행 고혈압치료 장애

 한국은 이미 노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2003년 19%였던 우리나라 노령인구는 2023년에는 33%로 증가해 전체인구의 3분의 1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노령일수록 수축기혈압이 상승하고 고혈압 치료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고혈압은 연령대에 따라 젊은층은 이완기, 중년층은 이완기-수축기, 55세 이상의 노령층은 수축기혈압 상승에 의해 고혈압이 진행된다. 60세 이상 연령대에서는 고혈압 환자가 50% 이상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중 상당수가 단독 수축기고혈압이라는 것이다.

 수축기고혈압은 오랜 기간 혈압이 높은 상태로 방치돼 있어 혈관의 구조적·기능적 변화가 야기되고, 이로 인해 치료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ALLHAT" 등 대규모 임상시험에서는 이완기 또는 이완기-수축기고혈압의 평균 고혈압 조절률이 90%에 육박하지만, 수축기고혈압은 70%를 넘기 어려운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노령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한국에서 고혈압 치료가 그만큼 어려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짜게 먹는 식습관 개선해야

 소금 섭취량은 고혈압 빈도 및 뇌졸중 사망률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전통적으로 소금섭취가 많은 한국과 일본이 미국 등과 비교해 고혈압 발생률이 높다는 보고도 있다.

 일본의 경우 소금 섭취량의 차이가 있는 북부와 남부에서조차 고혈압 발생빈도가 차이를 보인다. 하루 6~10g 정도의 소금을 섭취하는 유럽지역에서도 섭취량과 뇌졸중 사이에 연관성이 뚜렷이 발견된다<그림>.

 박 교수는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북미·유럽에 비해 뇌졸중 발생비율이 월등히 높은 원인의 하나로 소금 섭취량의 증가를 꼽고 있다. 높은 소금 섭취량은 체내 수액량과 혈관경직도를 증가시키고 그만큼 심장 펌프기능의 부담을 초래한다. 혈관경직도가 높다는 것은 수축기혈압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심장수축시 혈관에 충격이 그대로 전달됨을 의미한다.

 특히, 고령이거나 비만일수록 소금에 대한 민감도가 증가해 혈압증가를 야기하는 상관관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청소년 비만이 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인구에서 소급 섭취를 줄이는 것이 고혈압 예방이나 치료개선의 최선책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소금과 심혈관 질환의 연관성에 대한 전향적인 조사가 이뤄진 바 없어 이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

질환 차원 비만치료 접근해야

 최근 우리나라는 식생활 습관의 서구화로 비만과 비활동적 성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미 비만을 미용이 아닌 질병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비만이 당뇨병과 고혈압의 가장 중요한 원인임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비만에 의해 고혈압이 발생할 경우, 대사증후군이 동반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비만은 고혈압과 당뇨병 뿐 아니라 지질이상·인슐린저항성 등의 원인이 돼 심혈관계질환 위험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집중관리의 대상이다.

높은 흡연율 심혈관 위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흡연율은 줄고는 있지만 여전히 50%대로 북미나 유럽(20~30%)과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지역에서 흡연과 고혈압은 뇌졸중의 가장 중요한 위험인자로 꼽히고 있다. 특히, 흡연 자체는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전생성을 증가시켜 심혈관계질환 위험을 높이고 고혈압 치료효과를 반감시킨다는 것이 박교수의 설명이다.

고혈압 전단계 전체인구 30%

 우리나라 고혈압 및 심혈관계질환 증가와 관련 핵심문제는 고혈압전단계 환자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미국 JNC-7 보고서가 지정한 고혈압전단계는 고혈압 발생위험이 높은 그룹(120~139/80~90mmHg)으로, 대한고혈압학회도 지침에 이 개념을 반영했다. 현재 우리나라 고혈압전단계 환자의 비율은 전체인구의 30%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고혈압전단계에서 대사증후군 동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 대사증후군은 복부비만·혈압증가·지질이상·고혈당 등이 동시에 발현되는 것으로, 혈압은 130/85mmHg를 기준선으로 잡고 있다. 고혈압전단계 환자가 대사증후군으로 분류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사증후군의 정의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위험인자가 동시에 발현될 경우 심혈관계질환 위험도가 곱셈효과의 방식으로 증가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고혈압전단계에서부터 적극적인 혈압조절이 요구된다.

그림. 소금 섭취에 따른 고혈압 빈도와 뇌졸중 사망률







우리나라와 일본 등 전통적으로 짜게 먹는 나라에서 고혈압의 빈도는 싱겁게 먹는 나라보다 높고, 6~10그람의 소금을 섭취하는 유럽의 대부분 국가에서도 소금 섭취에 따른 뇌졸중의 사망률 사이의 연관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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