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한 현대의학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의료계는 적어도 임상 분야에서 만큼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이런 발전의 배경에는 이땅의 선배의사들이 온몸으로 겪어낸 인고의 세월이 있었다.
 그 세월만큼, 그동안 베푼 인술의 포용력만큼 주름살이 깊어진 노장들.
 하지만 정년퇴임 전후의 의사의 삶을 화두로 소주잔을 비워낸 그들은 결코 무대 뒤로 물러난 조연이 아니었다. 모습은 노장이되 아직 품고 있는 뜻만큼은 20대의 청년과 다름없는 그들. 이미 퇴임을 한 교수도 퇴임을 앞둔 교수도 생을 다할 때까지 의술을 베풀겠다는 의지로 훈훈했던 소주토크. 경륜 가득한 그들의 고언이 어려운 의료계의 현실을 헤쳐가는 후학들에게 나침반이 되길 기대해본다. - 편집자


◇때 · 곳: 2007년 12월 11일
저녁 6시 30분
역삼동 소재 고래불

◇참석자 <무순>
▲선희식 선희식내과의원(가톨릭의대 2005년 8월 정년퇴임)
▲박응범 한솔병원 진료원장(이화의대 2004년 9월 정년퇴임)
▲노영무 부천세종병원 세종의학연구소장(고려의대 2007년 2월 정년퇴임)
▲유기양 한림의대 소아심장학과 교수(2008년 2월 정년퇴임 예정)
▲송정순 연세의대 명예교수(2007년 2월 명예퇴직)

◇사 회: 김현승 경기도립파주병원장
(연세의대 2007년 2월 정년퇴임, 현 대한심장학회 회장)



새 진료환경 적응 또다른 도전
환자 건강 돌보다 정작 내가 병든 줄 모르기도


 노영수 본지 발행인 추운 날씨에 이렇게 변변치 못한 자리에 흔쾌히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름만 들어도 후배의사들의 고개를 끄덕이게할 만큼 명망을 갖추시고, 진료실과 연구실에서 그리고 강단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환자들과 후학들을 이끌어 오신 분들이 어렵게 한자리에 모이셨습니다. 모시기 쉽지 않은 분들이 한 자리에 모인만큼 어려운 의료환경에 한줄기 희망을 보여줄 고견들은 물론, 의업을 천직으로 삼고 살아온 지난 날을 반추하며 이제 제2의 의사로의 삶을 사시는 선생님들의 의사의 정년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잔 소주에 올 한해 시름은 잊으시고 새해에도 우리 의료계의 존경받는 훌륭한 어른으로 변함없이 국민건강과 의학발전을 위해 애써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김현승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에 모인 분 중 유기양 교수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년퇴임 후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정년퇴임 전후"라는 화두도 중요하지만, 후학들에게도 도움되는 말씀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희식 교수님은 개원을 하셨는데, 개원 동기도 궁금하고 개원 후 힘든 부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선희식 사실 제가 의사면허를 딸때만 해도 개원의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죠. 용기도 있어야했지만 자금문제가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런 문제로 대학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긾 퇴임 후면 개원을 하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시골로 내려가서 조용하게 개원할까도 생각했는데, 집사람이 암에 걸린 후 아무래도 대학병원이 가까운 곳에 개원하는게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강남구 논현동에 개원을 했습니다.
 개원을 하고 나니 장단점이 분명해요. 장점은 일단 재미있다는 겁니다. 제 전공인 소화기외에도 당뇨, 고혈압 등을 앓는 환자들도 접하게되니 많은 것을 공부하기도 하면서 즐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혼자 일해야한다는 것은 적응이 쉽지 않습니다. 제가 주 40시간을 진료하는데, 직원들은 좋아 죽을지경이더라구요. 보통 개원의들이 대부분 40시간 이상은 근무하기 때문인가봅니다.
 
 김현승 맞습니다. 요즘 개원의들 야간 연장진료는 기본이고 토요일도 진료실을 지켜야하니 40시간은 많은건 아니네요. 노영무 교수님은 근황이 어떠십니까? 새로운 곳에서의 활동은 만족하시는지요?
 
 노영무 개원에 대한 생각도 해봤지만, 솔직히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진료하던 스타일과 많이 틀릴까도 걱정했지요. 부천세종병원이 심장전문병원이다보니 진료나 연구, 교육 등 모든것이 전의 환경과 다를게 없습니다. 정년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고요. 장소만 바뀌었을뿐 그전과 똑같은 보람을 느끼며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습니다.
 
 김현승 제 경우는 영동세브란스에 있을 때와 지금의 근무환경에 차이가 많습니다. 인적자원도 그렇고 의료장비도 많이 열악한 편이라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죠. 지시만 내리면 되던 곳에 있다가 전공의도 없는 곳에서 근무하다보니 사실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노영무 교수님이 부럽습니다.
 
 박응범 저 같은 경우는 바뀐 환경에 잘 적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퇴임후에도 3년간 병원에 남아 진료를 했었는데, 바뀐 환경에 적응하려니 병이 다 났습니다. 한 달 일하고 한 달 쉬고를 반복하면서 갈등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환자는 날 필요로 하는데, 적응은 안되는 상황이죠.
 
 선희식 동감합니다. 한 곳에서 모든 걸 바쳐 일한 뒤에 새로운 곳에 나서려니 적응이 잘 안되죠.
 
 박응범 너무 힘들어하니까. 아내가 "정년퇴임 전 생각해야 할 101가지"라는 책을 선물해주더군요. 책에 의하면 정년 전에 3~5개월은 반드시 준비할 필요가 있다네요. 취미나 일은 어떻게 할건지, 돈 계산은 어떻게 할 건지, 뭘로 쓸건지, 자식문제는 어떻게 할 건지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어요. 진작에 준비 좀 할걸 하는 후회가 밀려듭니다. 지금은 제 자신이 그냥 공중에 던져진 느낌이 듭니다.
 최근에는 암 수술을 했습니다. 일본에서 골프치다가 힘들어서 CT를 찍었는데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을 많이 회복했습니다.
 

퇴직 후 할일 미리 생각해둬야
새로운 것 배우며 꿈꾸는 삶 늙음막는 바른길


 김현승 그래도 다들 행복해지시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개원이라는 꿈도 이루시고, 좋은 환경에서 환자 보고 계시고, 박응범 교수님은 건강을 회복하셨으니 말입니다. 정년이 아직 남아계신 유기양 교수님은 행복해지시려면 조금 기다리셔야겠습니다.(일동 웃음)
 저도 환경은 열악하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면이 있습니다. 제 고향이 파주 교하인데 도립병원장 공채때 가서 보니까 아직까지 지연의 힘은 대단한 것 같더라구요.

 정치인부터 해서 많은 사람들이 격려해주고 찾아와줘서 지연의 힘은 대단하구나라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나저나 송정순 교수님은 소위 "자유인"이 되셨는데, 후회는 없으십니까?
 
 송정순 정년이 7년 남은 상황에서 왜 갑자기 명예퇴직을 했냐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사실 제 계획대로 였으면 훨씬 일찍 명예퇴직을 했어야 했죠. 원래는 50세때 은퇴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시간도 빨리갔고, 주임교수도 맡아야한다고 하고 현실적인 문제도 있어서 55세로 계획을 늘려 잡았죠. 그러다가 갑자기 학회장을 맡는 바람에 욕심이 생겨서 조금 더 하게 됐습니다.
 게다가 아들, 딸 다 결혼을 일찍하는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어 미련없이 은퇴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도 2년 선배인 의사입니다. 20년 동안 비뇨기과 개원의를 하고 있었는데, 보험제도도 열악하고 그 외에 여러 가지 문제가 힘들었는지 혈압이 올라가더라구요. 그래서 마침 잘 됐다 싶어서 같이 은퇴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하고 싶은 영문학 공부도 하고 동양철학도 배우고 있습니다. 예전같이 머리에 쏙 들어오지는 않아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박응범 아까 말씀드렸던 "정년퇴직 전 생각해야할 101가지"라는 책에도 송정순 교수님 케이스가 있더라구요. 계획도 세워야 되지만,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제였습니다.
 
 송정순 의사로서 연구한다는 것에 대한 익숙함을 버리는 연습을 하고 늙어간다는 것에, 또 단순함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직업칸을 빈 칸으로 둘 수 있다는 것에 자유로움을 느껴요. 당당하게 가정주부라고 쓸 수 있는 게 좋습니다. 요리를 배우러 가서 "~씨"라는 칭호를 들을 때 아직 적응이 잘 안되는 건 사실이지만, 어떤 타이틀도 없이 자유인으로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노영무 일본에 한 할아버지가 이야기 한 게 있습니다. 자신은 늙지 않는 법을 안다고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면 늙지 않는다라고 말하더라구요. 어떻게 잘 늙어가는 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송정순 늙음에 대한 정의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To dream about lovely future". 존 스타인백이 한 말인데요, 늙는다는 것은 꿈을 꿀 수 없다는 의미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꿈꿔야 늙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박응범 제가 생각할 때 장수하려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살면 됩니다. 자식 걱정도 안하고, 일 걱정도 안하고.
 
 김현승 그게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일동 웃음)
 자, 이제 퇴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유기양 교수님 말씀을 들어봐야겠네요. 3개월 정도 남으셨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유기양 가끔 환자들이 찾아와서 "정년 얼마 안남으셨죠?"라고 물으면 서운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아직 정년이 아니라서 정년준비는 생각지도 않고 있던 차에, 선배님들 말씀을 들으니 철저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떠나야할 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아직 더 있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가끔 후배들이 날 쳐다보는 눈망울속에서 "이제 물러나셔야 되는데"하고 말하는 것 같아 무서운 적도 있었습니다.
 
 선희식 정년이 돼서 나가려고 하는데 환자들이 30년을 진료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집디다. 그런 말을 듣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개원했지만, 사실 개원하고 나니 유지비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걱정이 많이 됩니다.
 
 박응범 저도 돌아다보면 일만 알던 인생이었는데, 건강이 나빠진 다음에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건강이 안좋으니까 계획을 세울 수도 없고, 주위 환경도 변하더라구요. 최근 두 달간 일하는 걸 힘들어 하니까 주위에서 쉬라고 얘기하지만, 솔직히 아직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실 때 계획도 잡으시면 좋겠네요. 일의 보람을 찾는 것이든, 여생을 즐기시든, 의미있게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현승 의대교수 정년은 65세지만, 일반 회사를 다니는 주위의 친구들 중에는 일찍 정년을 맞은 친구들을 보게 됩니다.
 직장이 없어지니, 나갈데가 없어서 그런지 금방 늙더라구요. 그래서 주위에서는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라는 친구들이 있는가하면 아프면 즐길 수가 없으니 적당할 때 즐기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유기양 의협에서 정년퇴임 교수들이 계속 후학들을 위해서 뭔가를 남길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짜야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윤리교육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전보다 윤리의식이 부족해 보이는 후학들에게 정년퇴임한 교수들이 윤리교육을 담당하는 것도 검토했으면 합니다.
 
 김현승 퇴임하신 분들이 윤리교육을 담당한다는 유 교수님 말씀 신선하네요.
 
 박응범 저는 윤리강의를 위해 윤리학 책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옛날과 지금이 시대상황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윤리에 대한 부분은 옛날과 틀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윤리교육은 더욱 중요합니다.

후학 윤리교육 담당 어떨까
젊음 바친 현장서 얻은 귀중한 지혜 전하고파


 유기양 저 같은 경우는 윤리서적을 읽은 다음, 거기서 느낀 바를 적어놓은 노트만 해도 20여권 되는데 이걸 전할 기회나 대상이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후학들과 단절된다는 게 더욱 가슴 아픕니다.
 
 노영무 사실 후학들에게 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활동 그 자체로 모범이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즉 실생활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귀감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거죠.
 
 김현승 저도 동감입니다. 연구, 강좌를 여는 것보다 실생활에서 모범이 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유기양 요즘 후배들은 귀찮은 일을 잘 안하려고 하는 등 가장 기본적인 것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 같은 것 말이죠. 하지만 전공의 지원비율 때문에 꾸짖지도 못하는 현실이에요. 자기 자식이고, 자기 부모라고 생각하면 결코 그렇게 환자를 대할 수 없는데 말이죠. 새삼 윤리교육의 강화가 절실하다고 얘기하는 건 이런 이유입니다.
 아울러 의사 시험에서 간혹 낙방하는 후배들에 대한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 번 떨어진 후배들은 큰 상처를 받게 되죠. 상처받은 사람이 누구를 고칠수 있겠습니까? 이들을 위한 대선배들의 특별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김현승 대학에 계실때는 느끼지 못했던 제도적 문제도 다들 절감하셨을거라 생각됩니다.
 
 선희식 사실 개원을 하면서 어시스트없이 혼자 초음파, 내시경 모두 준비해야하고, 장비도 모두 결정하고 구매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에 대해 마음의 각오는 했었지만, 삭감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참 난감합니다. 요즘은 컴퓨터가 알아서 문제점을 지적해주니 편리하기도 하지만 매우 비인간적인 면도 있죠. 편리함이 제도를 보완하고는 있지만, 진료실의 실제 상황을 모르니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차라리 문제점도 지적하고 오류도 바로 잡았으면 좋겠어요. 지적은 기계가 하고, 내용상의 잘못은 사람이 고치라는 식이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노영무 중소병원에 있다보니 제도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대학병원과 중소병원을 비교했을 때, 같은 재료로 같은 치료를 해도 대학병원은 돈을 더 많이 받는 경우가 있어요. 선택진료제도 여기에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박응범 생각과 현실의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전공 쏠림현상 같은 것도 정부차원의 보완이 필요합니다.
 또한 선진국의 경우에는 도시에 의료기관을 하나 지어도 10년에서 15년의 시간을 들여서 시스템을 구상하고 짓습니다.
 이는 병원 분포를 효율적으로 해 대학병원이나 동네병원이 모두 제 역할을 하면서 큰 어려움 없게 하기 위한 건데요. 이런 점을 좀 배워야할 것 같습니다.
 
 노영무 캐나다의 경우에 의사들의 실력은 좋지만 의료시스템은 좋지 않습니다.

 김현승 맞아요. 선진국이라고 해서 의료시스템까지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제 친구말에 따르면 뉴욕 맨하탄에서 외래예약잡는데 1주, 검사받는데 1주, 분야가 맞는지 알아보는데 1주가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30분만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닌 거죠.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저렴하고 신속한 편입니다. 게다가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미국이 100이라면 우리나라의 임상수준은 98정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환자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는게 현실이죠.
 
 노영무 아마 외국에 나가서 진료를 받아본 사람이 없어서일 겁니다.
 
 김현승 사회주의식으로 시스템이 변해가면 영국처럼 될 것 같습니다. 싱가포르 수상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밤에 부인의 CT촬영을 위해서 병원을 찾았었지만 계속 기다리다가 결국 아침에야 찍게 되자 본국에서 의료진을 불러서 진료받으면서 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영국이 좋다, 미국이 좋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기초의학은 아니지만 임상의학만큼은 우리나라가 세계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들의 80% 이상이 의료급여 환자입니다.
 술 마시지 말라는데 술 마시고 입원실에서 난동 부리는 경우도 허다하고, 퇴원지시도 따르지 않죠. 공공의료기관으로서 환자와 대립하는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긾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서는 환자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마저 그들을 받아주지 않으면 누가 그들을 받아주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을 고려해야하니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공공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정립해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제를 바꾸겠습니다. 정년기한은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무래도 의사는 30대 중후반이 되어야 사회에 나오는 격이니 오히려 정년이 연장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선희식 미국 같은 경우 정년은 없지요. 계약을 연장하는 식인데, 이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가능성이 없다면긾 지금 정년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더 이르면 억울할 것 같고, 더 늦으면 용기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시스템이라면 뒤를 돌아다보고, 계획도 세우기에 적당하죠.
 
 노영무 저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공무원으로 65세면 괜찮은 거죠. 특히 의사는 건강하면 계속 일할 수 있고, 자기계발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후학을 위해서도 65세가 적당한 듯 보입니다.


내 가족 치료한다 생각으로 임해야
의사위상 추락 한탄만 말고 "Do Your Best"


 박응범 직업 특성상,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하면 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 시스템을 따라하지 말고 우리나라의 통념과 실정에 맞추는 게 좋아요.
 
 유기양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년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현승 다른 사람들은 의사의 정년이 다른 직업군보다 길어서 좋겠다고 말하죠. 하지만 다른 직업들은 4년제 대학 졸업한 다음 군대 나와서 취직할 수 있지만, 의사는 의대졸업하고 군의관도 지나서 35~40세가 되어야 시작입니다. 다른 직업군에 비해서 시작이 늦죠.
 그리고 전문직업군이기 때문에 정년이 다른 직업군보다 늦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년 후는 개인의 판단인 것 같네요.
 
 송정순 25년 동안 교직생활을 한 것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은 있는 것 같습니다.
 객관적으로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내가 꼭 이 자리에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적으로 봐도 정년퇴임제도는 손해가 아닙니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게 국가적으로는 훨씬 이득이란 얘기지요. 물론 후배에 대한 걱정과 아쉬움은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도 간혹 "나라면 저렇게 안했을텐데"하면서 안타까워할때가 있습니다.

 김현승 그것이 연륜이고 경륜입니다. 젊음과 패기가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후학들에게 도움되는 한마디씩 하시면서 얘기를 마쳤으면 합니다.

 노영무 의사에 대한 선망은 여전합니다. 매스컴의 말처럼 의사의 위상이 떨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위치에서 연구와 진료에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Do your best!"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희식 개원을 하면서 이제 대학병원에 있을적 만큼 사회적인 존경심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워낙 매스컴에서 의사들의 부정적인 면만 들춰낸 탓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환자들이 의사를 나쁘게만 보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개원을 하니 오히려 환자와 소통하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환자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진료를 할 때 환자를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했으면 합니다. 기본적인 얘기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환자와 조금이라도 커뮤니케이션을 더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턴, 레지던트 시절에 1, 2일 정도 환자역할을 해보는 프로그램 같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박응범 의술은 인술입니다. 제가 의사가 되던 때부터 윤리의식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윤리를 중시하는 의사가 되고 나서, 전문성을 키우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합니다.
 
 유기양 병원은 은행이나 우체국이 아닙니다. 병원에서 번호표를 뽑고 진료를 받고 이런 서비스는 눈높이를 대중의 수준에만 따라간다는 얘깁니다. 번호표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요. 친절은 실력에서 나옵니다. 즉 공부해야 합니다. 자기분야는 물론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나중에 자연스럽게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현승 우리나라가 최고의 의료 수준을 가지고 있음에도 걸맞는 대접을 못받는 것은 매스컴의 영향도 있지만, 가끔 건방져 보이는 의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늘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생각하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제가 경기도립의료원 회의때 저희 병원 모토를 발표한 적 있습니다.
 병 잘 고치는 병원, 친절한 병원, 이용하기 편한 병원, 깨끗한 병원, 설명 잘 해주는 병원이 그것이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병 잘 고치는 병원보다는 환자를 잘 보는 병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합니다. 의사도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죠. 하지만 평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만 그 실수가 허용되는 것입니다. 평소 행실이 좋지 않으면 환자들이 공격적으로 대하기 마련입니다. 제발 겸손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첫눈. 한파는 아니지만 제법 매서운 바람이 불던 연말저녁 날 4시간 가까이 격의 없이 잔을 돌린 노장들. 그들의 입에선 연신 공부하던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현실의 어려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진솔한 마음들이 섞여 나왔다.
 마지막 토스로 새해 건강을 서로 기원하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를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은 마치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친 기색보다는 의사로서 보람을 가득안고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당당함과 열정이 느껴졌다.
 건강들 하세요.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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