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학연구소, 의대·의학전문대학원 학생 1763명 대상 설문조사 진행
여학생은 성차별로 진로 선택에 제한 받아

[메디칼업저버 이현주 기자] 의대생들이 학교와 병원실습 현장에서 다양한 폭력과 성차별에 노출되면서 비슷한 연령대의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주관적 건강수준이 나쁘고 우울 증상을 더 많이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학생은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에 많이 노출돼 있었고, 여학생은 성차별로 전공과와 업무를 선택하는데 제한을 받고 있었다.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이 의대생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발표하고 있다.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이 의대생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발표하고 있다.

23일 개최된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은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 학생 총 1763명이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은 '폭력과 강요', '성희롱과 성차별' 로 구분해 진행됐다.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49.5%의 학생들이 수업이나 병원실습 중 언어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 회식 참석을 강요당한 적 있다고 응답한 학생들도 60% 이상이었고, 응답자의 47%가 음주 강요를 경험했고 31%는 춤이나 노래를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단체 기합을 받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16%, 물리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는 6.8%로, 의학교육과정에서 다양한 집합적 개인적 수준의 폭력이 가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난 1년 사이 경험한 성희롱에 대한 질문에는 언어적 성희롱이 25.2%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신체적, 시각적 성희롱 경험은 각각 11%였다. 특히 여학생의 37.4%가 언어적 성희롱에, 18.3%가 신체적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교육과정에서 성차별적 발언을 들은 학생은 56.6%로 절반이 넘었다. 여학생은 응답자 중 72.8%가 이 같은 경험을 했다고 밝혔으며 이는 남학생 보다 1.6배 높았다. 

문제는 전공과 업무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성별로 인해 전공과 업무 선택에 제한과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 중 여학생이 58.7%로 남학생 17.7%보다 3배 이상 높았다.

학년에 따라 폭력 또는 성희롱 주요 가해자가 차이를 보였는데, 병원실습을 시작한 본과 3,4학년 학생들에 대한 폭력, 성희롱의 주요 가해자는 교수→인턴과 레지던트→학생 순서인 반면 본과 1,2학년 학생에 대한 가해자는 학생→ 교수→인턴과 레지던트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대생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있었다. 전체 피해 경험 학생의 3.7%만이 대학 또는 병원에 신고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신고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는데,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고, 처리 경과에 대해 보고받지 못하거나 하교 당국과 다른 학생들이 가해자를 두둔하는 등 2차 가해와 보복이 이뤄졌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부당한 대우를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 응답자의 42.6%가 '신고해도 아무 소용없을 것'이라고 답했고, '문제가 공정하게 다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도 31.9%를 보였다. 응답자의 25%는 '신고결과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생기거나 '진로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서' 침묵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번 조사에 참여한 의대 재학생 중 23.7%가 우울증상을 경험하고, 20.3%가 자신의 주관적 건강 수준이 나쁘다고 보고했다. 

이 소장은 "의대생들 중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주관적 건강수준이 나쁘거나 매우 나쁘다고 보고하는 이들이 3배 이상 많았다"며 "건강염려증 때문일수도 있지만 교육과정에 자신의 건강을 증진, 보호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여학생들은 남학생에 비해 더 많은 성희롱과 차별에 직면하고 이로 인한 건강에도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며 "여학생의 취약성과 건강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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