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말을 기준으로 국내 제약산업은 생산액 기준 총 11조 4천억원의 규모에 이르고 있다.
 또 한국제약협회 자료에 따르면 2006년 12월을 기준으로 제약협회 소속 회원사는 199개에 이른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선말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의약업史에서 최초로 설립된 제약회사는 어디였을까?

 한국제약협회 연보에 따르면 매약(賣藥)의 형태로 대한제국 시절인 1897년 민병호가 최초로 신약인 구급위장약 활명수와 인소환 등을 선보인 것을 제약 판매의 시초이자 그가 서울 순화동에 세운 동화약방(동화약품의 전신)을 최초로 보고 있다.

 이후 한의학과 한약을 새로운 약의 형태로 만들어 팔기 시작하고 특히 일본에서의 약방(약국) 개념을 도입해 1899년 이경봉이 설립한 제생당약방과 이응선의 화평당약방 등 다수가 설립되기 시작한다.

 한독약품창업 18주년을 기념해 출판된 홍현호의 "한국약업사(1972년)"에 따르면 이경봉의 제생당약방은 소화신약, 청심보명단을 시작으로 길거리에서 말솜씨로 선전을 하여 인기를 끌어 큰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용각산, 건위고장환, 오따위산, 중장탕, 건뇌환, 대학목약 등도 국내에 들여왔다. 화평당약방의 이응선은 팔보단, 자양환, 태양조경환, 급체쾌통산 등 40여종의 가정 상비약을 판매했다고 한다. 특히 이응선은 당시 일반 판매와 함께 새로운 영업 방식으로 지방유지, 면사무소 등을 상대로 대금인환(代金引換)과 통신판매의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최초 제약법인 "조선매약주식회사"

 이후 1912년 3월 조선총독부가 약사법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약품영업취체규칙 세칙과 매약이수출입취급규칙을 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법인화된 제약업체가 등장하게 된다. 한국약업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긴 제약업의 법인체는 이석모와 한의사, 한약업자들이 공동 출자해 1913년 3월 설립된 조선매약주식회사이다.

 조선매약주식회사는 자본금 5만원(현재 가치로 수억원에 이른다)에 주식 대금으로 3만5천원이었으며, 대주주와 소주주들로 주주가 구성됐다. 조선매약의 주요 제품으로는 영신환, 포룡환, 우황청심환 등이었으며, 영신환은 당시 오래 두어도 곰팡이가 잘 나지 않고 말랑말랑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1919년 한국약업사 첫 M&A

 그러나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던 창립자 이석모는 주주들의 뜻을 모아 국내 제약업계 최초의 인수·합병을 화평당 설립자 이응선에게 제안한다. 한국약업사에서 서술된 인수 합병 과정에서의 두사람의 대화를 간단히 소개한다. "우리 매약제조업계에서 법인조직으로 된 업체는 조선매약주식회사 하나뿐이오. 그런데 우리들의 경영방법이 졸렬해서 우리회사는 지금 경영난에 빠져 허덕이고 있소. 좀 붙들어주지 못하겠오(이석모)", "우리 적당한 날을 택해 귀사의 업적을 조사해 봅시다. 그런 연후에 내가 나서 재기할 가망이 있어 보이면 그때 손을 대보겠소(이응선)", "어디 손을 대봅시다. 그런데 주주들의 태도는 어떴읍니까. 소유주식을 팔려고들 하나요(이응선)", "대주주, 소주주 할것 없이 모두 팔려고 하지요(이석모)" 이렇게 국내 제약업계 최초의 M&A가 1919년 실현됐다.

 이후 일제시대 자본금 10만원 이상으로 설립된 유한양행을 시작으로 금강제약, 삼성제약, 동아제약 등이 본격적인 제약업에 뛰어들면서 현재의 한국제약산업에 이르고 있다.

 이경봉이 설립한 제생당의 당시 히트제품은 청심보명단이었다. 이경봉의 아들인 이일동은 짧막한 광고로 당시 대중들에게 청심보명단을 각인시켰으며, 지금으로는 획기적인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한국약업사에 서술된 "청심보명단"의 당시 광고는 파라솔을 쓴 어머니와 앉아서 꽃을 꺽는 아이 그림을 곁들인 약광고이고 광고문구는 다음과 같다.

 ·어머니: 복히야 그꽃을 왜 따느냐? ·딸: 어머니 이꽃에 향취가 대단해요 ·어머니: 그럼 그보다 더 향기로운 것을 사주랴 ·딸: 그것이 무엇이야요. 그런 것을 사주셔요. ·어머니: 청심보명단이란다. 가서 사줏게 이러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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