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As...속 썩는 병원 <상>

팔때와는 달리 수리비로 고액 챙겨
"품질·AS확실…부담돼도 외제 구입"


 국내 의료기기 시장에 부실한 애프터서비스(AS)가 의료인들의 어려움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의료기기의 부실한 AS는 한마디로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틀리다"라는 말로 비유할 수 있다.

 최근 1500만원 상당의 국내 유명 R사의 엑스레이 기기를 사용하던 한 개원의는 조정기쪽에서 연기가 나 해당업체에 AS를 의뢰하면서 "조정기 전원만 올렸는데 불이 나는 경우는 처음 봤다"고 얘기했다. 이에 해당업체 직원은 "불이 날 수도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 후 AS비용 25만원을 먼저 지불해야만 수리하겠다고 배짱을 부렸다. 울며 겨자먹기로 비용을 지불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원은 고쳐졌지만 촬영은 되지 않았던 것.

 이에 해당업체는 콘덴서를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 조정기 수리비용 25만원과 콘덴서 교체비 104만원을 합쳐 129만원이 아닌 총 145만원을 지불하라는 업체의 논리는 "우리도 남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냐"였다. 해당 개원의는 불합리함을 주장했지만 환자들을 생각해 지불할 수 밖에 없었다.

 의료기기를 구입했으나 얼마 사용하지도 못하고 작동이 안돼 발을 동동 구르다가 어쩔 수 없이 고가의 AS비용을 지불했던 경험을 안 해본 의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의료기기가 고장나면 병원에서 입는 피해는 병원은 물론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부당하고 부실한 AS라 할지라도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으로 업체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개원의들이 지적하는 의료기기 AS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도한 AS비용 지출이다. 서울 광진구에서 내과를 개원중인 K원장은 지난해 하반기 3천만원대의 내시경과 초음파기기를 새로 도입했다. K원장은 "기존에 사용하던 내시경과 초음파기기의 잦은 고장과 환자를 진단하는데 있어 최대 결점이라고 할 수 있는 화질 문제로 다시 6천여 만원을 들여 새로운 장비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기존 내시경과 초음파 모두 국내산 제품이었는데 사소하지만 잦은 고장과 그에 따른 수리비 견적이 너무 많이 나왔다"며 "지난해 도입한 장비는 모두 외국산제품"이라고 설명했다.

 K 원장은 국내 제품이건, 외국회사 제품이건 수리비가 많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외국 제품의 경우 고장 발생률이 적고 화질 문제로 인한 진료 차질 등의 고민이 덜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기기 AS는 외제차를 구입해 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며 "개원의 입장에서 비슷한 가격대의 진단, 치료 장비로 AS비용도 고가로 투입된다고 가정했을 때 고장 발생률과 확실한 AS가 보장되는 외국 회사 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K원장은 외국회사나 국내사 모두 너무 과도한 AS비용을 산정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내시경 등 영상장비를 공급하고 있는 외국계 O사 관계자는 "국내에서 AS를 제대로 하고 있는 업체는 분야별 선두권 외국기업 밖에는 없다고 보면 된다"며 "대부분 업체는 고가의 의료기기를 팔아도 마케팅 비용 때문에 마진을 거의 남기지 못한다.

이들은 처음부터 AS비용으로 부족한 마진을 채울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30억대 장비와 시스템이 들어간 병원의 경우 많게는 매달 3천여만원의 유지보수비용을 뽑아내는 경우도 있다고.
 물론 최근 수리의 경향이 고장을 일으킨 부분만 수리하기 보단 문제가 발생한 모듈 전체를 교체하는 추세라 비용이 많이 청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고장률을 따져봤을 때 모듈 전체를 교환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끝으로 그는 "업체가 AS비용을 마진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유지보수를 위한 인력충원과 교육비용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의료기기 GMP제도 시행 등으로 국내 의료기기 AS도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수리비용은 차치하고 신속한 AS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제조사들이 반성해야할 문제다.

 이에 대해 업체 한 관계자는 "수입품의 경우 부품조달이 오래 걸리며 국내에서 AS가 안될 경우는 직접 외국본사로 제품을 보내 AS를 하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수리기간 동안 의료기관에서 운용할 대체기기를 무상 대여하거나 AS비용을 할인해주는 등의 후속조치를 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

 최근에는 제품 업그레이드 주기까지 빨라져 제품수명이 더욱 짧아졌다. 따라서 일찍 단종된 모델은 부품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경우도 있다.

 게다가 병원직원의 제품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업체에서 멀쩡한 부품을 교환하는 등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고긾 심지어 내부는 중국산 부품으로 채운 가짜제품도 나오고 있어 의사들의 의료기기 구입 및 유지보수에 더 많은 애로점을 안겨주고 있다.

 의료기기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업체들은 비록 의료인은 아니지만 자신들도 환자의 생명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국제 수준의 의료기기 전시회가 몇 차례 개최되고 있지만긾 정작 국내 의료기기 AS 현주소는 후진국 수준이다. 의료기기를 운용하는 의사도 무조건 저렴한 가격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긾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합리적인 의료기기 구매와 유지보수를 담보할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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