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악저지투쟁위 가동·의사반발 항의 집회 잇따라

정부 강행방침에 강경 투쟁
실무반도 탈퇴…복지부 "더 논의를"



 의료계가 "황금돼지해" 축하인사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정부의 의료법 전면개정 추진으로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1월 29일 발표예정이었던 의료법 전면개정 추진이 의협·치의협·한의협 등의 연기요청으로 2주간 늦춰졌지만 의협이 3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전면거부를 선언하자 복지부가 이 내용을 국민과 의료인들에게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며 지난 5일 공식 발표했다.

 34년만에 전면개정을 추진하는 의료법은 현재 89개조항을 132개로 확대하여 환자의 의료기관 이용편의 증진, 환자 안전관리강화, 의료기관에 대한 규제완화, 입법미비사항 신설, 의료인의 자질향상 및 중앙회 권한부여 등을 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 특히 의사들은 이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의협은 의료법개악저지투쟁위원회를 발족 가동에 들어갔고, 서울·인천시의사회는 6일 오후 진료를 거부하고 과천종합정부청사 앞에서 항의집회를 가졌다. 이 집회는 서울시의사회 경만호 회장의 삭발과 좌훈정 홍보이사의 할복·혈서로 반대목소리를 더욱 높였고 7일 광주·울산시의사회, 8일 부산시의사회에 이어 11일 전국의사들이 참여하는 과천집회까지 강경 투쟁을 이끄는 기폭제가 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의사-한의사-치과의사가 함께 환자를 진료할 수 있으며, 건강보험 적용이 배제되는 비급여 진료비용을 환자에게 고지해야 하고 이 비용을 할인, 환자를 유치할 수도 있게 된다. 의료인의 환자에 대한 질병·치료방법 설명의무 신설, 의사가 자신이 직접 진료했던 환자에 대해 의학적으로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 거동불편환자의 처방전 대리수령권 인정, 병원감염관리·당직의료인 기준·진료정보보호 강화 등 환자 안전관리 강화가 핵심이다.

 의료기관은 의료법인의 합병 허용 및 부대사업 범위 개선, 의료기관 명칭에 외국어 병행 사용 허용, 종합병원 인정기준 강화, 병원 및 종합병원 내에 다른 의사의 의원 개설을 허용하도록 했다. 입법 미비사항도 신설하여 의료행위의 개념 및 병상·요양병상 용어 정의, 유사의료행위 인정을 위한 법률 근거도 담았다.

 최대 논란이었던 보수교육은 매년 8시간에서 24시간으로 강화하고 일정기간 의료업에 종사하지 않은 의료인이 현업에 복귀하고자 할 경우에도 별도의 보수교육을 이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또 표준진료지침 제정근거를 신설하고 중앙회에 징계요청 권한도 주었다.

 이번 개정안은 6개 보건의료단체, 2개 시민단체 및 전문가(변호사·의대교수)가 10회에 걸친 검토회의를 통해 마련했지만 최종안은 아니며, 입법예고 전이나 이후, 국회에서의 조정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쟁점사항이 되는 부분도 합리적이고 타당한 논리를 제안하면 개정안 제출하기전 언제든지 수정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의협은 이번 개정안이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고 의사의 위상을 더 떨어뜨리는 일명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다며, 최악의 경우 2000년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료대란이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실무반의 탈퇴도 선언했다.

 한편에서는 개정안이 마련될 동안 의협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더나아가 의료법 개정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못한 것에 대한 불만도 많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의료연대회의등 시민단체도 반대에 나서고 있다. 다만 이들은 의료계에 수익사업을 허용토록 하는 내용이 많다며, 공공성 측면에서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복지부는 의료계의 요구조항 21개항이 반영됐고 10여개 조항(핵심쟁점 5개항)에서 큰 이견이 있다며 계속 논의를 거쳐 합의안을 도출하자는 입장인 반면 의협은 아예 이 내용을 전면 거부하고 의료계가 참여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도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돌하면서 복지부와 의협에 대해 미흡한 준비과정 등을 지적했다.



지난 6일 의료법개정 반대시위 참석을 위해 휴진한 한 의료기관에서 환자가 휴진안내문을 읽고 있다.




 의협은 핵심쟁점으로 목적조항에서 국민의료에 관한 것을 의료인·의료기관으로 규정하여 위상을 약화시키고 통제의도가 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 또 의료인의 행위에서 투약을 포함시키지 않아 투약권을 박탈시켰다는 점. 서울의대의 한교수는 "미국의 경우 의사도 투약할 수 있도록 돼있지만 의사가 할 경우 수가발생이 없어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표준진료지침 제정은 의료행위를 규격화하고 국가통제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으며, 간호사 업무에 간호진단을 포함시킨 것은 의사의 업무영역 침해며, 유사의료행위 근거마련은 유사의료행위를 양성화하여 불법의료로 인한 국민피해가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이들 쟁점들은 다른 단체들과 이해관계에 얽혀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난주 의사들은 다섯차례에 걸친 항의집회를 갖는 등 의료법 전면개정에 대해 반발을 확산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추진의지가 강하고 치협·한의사협회·간협등 의료인단체의 적극적 지원이 없고, 의료계의 또다른 축을 구축하고 있는 병원들도 미온적이어서 확산 가능성은 현재로선 미지수다. 병협의 경우 정부의 의료법 개정안이 광고규제 완화, 의사 프리랜서 허용, 병원내 의원 개설 허용, 부대사업 확대 등 경영개선 가능성이 높은 조항을 담고있어 8일 이사회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독소조항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면서도 의협과 어느 수위까지 행동을 같이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의-병협 회장단 회의에서도 공감대는 이뤘지만 명확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본지는 지난 5일자(370호 3면)에 이번 의료법 전면개정 추진은 의료법의 근간을 바로 세우고 미래 대한민국 의료를 밝혀야할 법안이 돼야 하며, 아직 시간은 있으므로 복지부는 관련단체와 더 폭넓은 논의를 통해 정부-국민-의료계가 상생하는 지혜를 발휘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이제 복지부도 쟁점 분야의 개념정의 등을 관련단체에 요구할 것만이 아니라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며,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약사법등 관련 법의 개정도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또 설명의무나 표준진료지침 마련 등은 의료법에 포함될 내용이 아니라는 한편의 지적에 대해서도 재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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